느슨한 임원 대대적 솎아내기, 상식밖 과감한 발탁, 미래동력 지역전문가 육성
[헤럴드경제=김영상 기자]삼성의 인재경영 뿌리는 깊다.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인재를 널리 구했다. 1987년 바통을 이어받은 이건희 회장 역시 인재를 소중히 했다. 그는 취임사에서 “특히 삼성이 50년의 맥을 이어 온 엄격한 신상필벌과 학연, 지연, 혈연을 철저히 배제한 공정한 인사의 전통은 영원 불변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밝혀두는 바”라고 선언했다.
주목되는 것은 인재경영을 한층 진화시켜 삼성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이 회장은 2001년 “앞으로 나 자신의 업무 절반 이상을 핵심 인력 확보에 둘 것”이라고 했다. ‘인재가 기업의 미래’라는 확신과 그것의 실천을 통해 삼성은 쑥쑥 커 나갔다. 이 회장은 인재의 적재적소 활용, 능력위주의 과감한 발탁, 파격적인 미래재원 육성 등을 통해 인재경영의 틀을 완성해갔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선 이 회장의 ‘3대 충격요법’이 실행됐다.
▶느슨한 임원을 솎아라=1993년 그 유명한 ‘마누라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나왔다. 직후 삼성에선 은근슬쩍 조직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학력중시 사고의 파괴가 본격화됐다. 물론 이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다.
삼성은 당시 임원 800여명 중 1차에 50여명씩, 순차적으로 총 4차례 200여명을 용인교육장으로 보냈다. 일종의 정신 재무장 프로그램이었고, 교육 결과가 좋지 않으면 퇴출시키겠다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다는 점에서 해당 임원들은 충격을 받았다.
교육기간은 다 달랐지만, 대체로 3개월 교육을 받은 뒤 미국이나 일본, 유럽 등지로 보내졌다. 외국행은 교육은 아니었다. 외국에 나가서 마음대로 여행하되 일주일 씩 자신의 거처만 보고하게 했다. 보고서를 낼 필요도 없고, 무엇을 연구하라는 지시도 없었다. 임원들은 그것에 더 당황했다.
삼성봉사단장을 역임한 이해진 전 삼성BP화학 사장도 이때 교육장에 보내진 사람 중 하나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그럴듯한 스펙 하나로 ‘나 아니면 누가 이 일을 할까’라고 자만하고, 루틴(일상적)한 일을 잘 처리하면 된다는 고정관념화된 임원들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죠. 그런 임원들이 자리를 꿰차고 있는 한, 삼성에 창조적 발상은 없다는 위기감에서 나온 능력 중심을 향한 일대 혁신이 아니었던가 합니다.”
암튼 이 프로젝트에 탈락한 많은 임원들이 솎아내 졌지만, 일부 복귀한 임원들은 더 강해졌고 창조적 발상이 그들로부터 쏟아져 나왔다.
▶파격적으로 발탁하라=1994년 삼성에선 주목받지 못했던 한 사람이 무선사업부 이사로 전격 발탁된다. 훗날 ‘애니콜 신화’의 주인공, 이기태 전 부회장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전 부회장이 무선사업부 책임자로 발탁될 것이라고 생각한 이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전까지 새로운 유망 사업을 맡는 사람은 거의 완벽한 스펙을 갖춘 임원들이었거든요. 평범한 지방 고등학고, 지방대 출신이 전격 발탁되리라곤 예상치 못했어요. 뒤에서 수근거리는 일도 많았습니다.”(삼성 퇴직 임원)
당시 이 이사는 “몇개월 안에 ‘손안에 쥐는 전화기를 선보이겠다”고 공언했고, 애니콜을 공개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95년 3월 론칭한 애니콜 품질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그는 구미공장 전 직원이 보는 앞에서 문제의 휴대전화 15만대를 쌓아 놓고 불을 질렀다. 자그마치 500억원어치. 그는 직원들에게 “최고의 품질이 아니면 만들지 말라”고 외쳤다. 품질에 관해 최고의 자존심을 갖춘 ‘명품 애니콜’은 이같은 이기태의 상식을 파괴한, 아니 목숨을 건 열정의 산물에서 나올 수 있었다.
아마 스펙에 치우쳐 당시 이 이사 같은 큰 일 낼 것 같은 ‘특이한 열정의 소유자’를 외면했다면, 지금의 스마트강자 삼성은 없었을 것이라는 데 삼성인 대다수는 동의한다.
▶지역전문가 만들어라=이 회장은 취임때부터 지역전문가 제도에 큰 애착을 느꼈다. 삼성의 글로벌화를 위해선 ‘젊은 삼성인’을 해외 각지로 보내 전문가로 키워야 한다는 확고한 철학이 바탕이 됐다. 회장의 지시라 드러내고 반대는 못했지만 임원들은 내심 꺼려했다. 젊은 사원들에 대한 특혜라고 여겼다. 월급과 체제비, 일을 안하는 기회비용까지 합치면 1인당 들어가는 3억원이라는 돈도 부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회장의 뜻은 달랐다. 미래 삼성을 이끌어갈 젊은인재들에 대한 선(先)투자는 전혀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너와 임원의 다른 점이 바로 이 차이였다.
주목되는 것은 지역전문가 제도는 100% 능력위주의 선발이었다는 점이다. 인맥과 학벌은 통하지 않았다. 외국어 능력과 연수 계획안이 가장 중요했다.
“제가 시험에서 떨어져본 기억이 없는데 덜컥 지역전문가 신청을 했다가 떨어진 거예요. 하도 속상해 다음해 신청했고, 죽어라고 공부해 선발된 기억이 있습니다.”(삼성전자 부장)
이 회장은 초창기 지역전문가로 파견되는 인력에 대해선 직접 챙길 정도로 지역전문가 제도 정착에 열정을 보였다. 지금까지 양성된 지역전문가는 4000여명. 이들은 삼성의 글로벌화에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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