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완 르 뒥 감독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10대 임신·싱글대디가 돼도 “괜찮아”

프랑스 사회의 육아 분위기 엿볼 수 있어

영화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스틸컷. 딸 로자와 아빠 에티엔의 모습
영화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스틸컷. 딸 로자와 아빠 에티엔의 모습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영화와 드라마 같은 화면 속 세상을 보고 그 사회가 정말로 그럴 것이라고 온전히 믿을 때 아차 하는 순간이 온다. 예컨대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한국 사람들이 모두 잘생긴 배우나 아이돌처럼 생겼을 거라는 착각 같은 것 말이다.

외모만 그런가. 극 중 사람들이 행동하고, 생각하고, 반응하는 것 모두 현실에선 ‘에이~누가 저래?’라는 반응이 종종 나온다. 하지만 그 ‘허구의 세계’에도 그 사회에서 상상할 수 있는 한계가 주어지기에, 한국 영화와 프랑스 영화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양국의 사회 분위기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26일 개봉하는 프랑스 영화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10대 임신과 싱글대디에 대한 인식, 그리고 프랑스 사회가 육아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잘 그려낸다. 이 밝은 영화에 어둡고 불쾌한 현실적 단면들은 모두 소거됐다고 하더라도 상상의 여지가 그만큼 나아갈 수 있다는 건 그만큼 프랑스 사회가 이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대하기 때문이리라.

영화에선 고등학생 때 시위 현장에서 만난 에티엔(나우엘 페레즈 비스카야트 분)과 발레리(메르세데스 다시)가 사랑에 빠져 미성년일 때 딸 로자(셀레스트 브룬켈)를 낳는다. 둘이서 아이를 키우기는 역부족이라 생각한 젊은 부부는 로자를 데리고 에티엔의 부모님 집에 합가한다. 바로 그날 에티엔과 로자만 먼저 들여보내고 발레리는 ‘주차’를 하고 오겠다며 차에서 내리지 않는다, 그리고…. 발레리는 그대로 떠났다.

순식간에 싱글대디가 된 에티엔. 하지만 하늘이 무너지진 않는다. 에티엔의 부모님은 아들이 성인이 되기 전에 애를 낳아온 것도, 와이프가 떠난 것도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그럴 수도 있다”, “걔는 다시 돌아올 거야. 누구나 방황의 시절은 있어”라며 말이다. 주변에서 호들갑을 떨거나 동정의 시선으로 대하지 않으니 ‘정말 별일 아니고, 하늘이 두 쪽 나는 일이 아니구나’라며 수긍하게 된다.

그럼에도 에티엔은 극 중에서 “나에게 스무살은 없었어”라고 말할 정도로 로자를 키우는 데에 청춘을 아낌없이 쓴다. 덕분에 발레리의 금발 머리를 닮은 로자는 아빠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품에서 티 없이 큰다. 아주 어릴 때부터 이젤 앞에 앉은 꼬마 화가의 붓 터치는 거침없이 나아간다. ‘물음표 살인마’처럼 에티엔에게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질문하는 로자는 엄마에 관한 질문도 거침없다. 기억 속에 엄마 얼굴이 전혀 남아있지 않아도, 그게 왜 상처받을 일인지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말이다.

프랑스 일간지 ‘르 몽드’ 기자 출신인 에르완 르 뒥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엄마가 너무나도 이른 시기에 남편과 딸을 버린 것이 너무 비극적으로 비치지 않기를 바랐다”며 “그래서 왜 발레리가 떠났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그건 그녀의 자유로운 선택일 뿐, 그녀의 선택이 나머지 두 사람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길 바라지 않았다”고 밝혀왔다.

두 사람이 그들만의 삶을 단단하게 채워나가도록 주의를 기울인 뒥 감독은 에티엔에게는 ‘축구’, 로자에게는 ‘그림’을 삶의 열정과 위안으로 설정했다. 19살에 꼬마 아빠가 된 에티엔은 이제 18살이 된 로자와 함께 있으면 아빠라기 보다는 늦둥이 동생을 둔 큰 오빠 같은 이미지다. 정말로 두 사람은 서로에 기대 함께 성장해 왔다.

에티엔은 로자가 아주 어렸을 때 포대기에 싸서 축구 코치 수업을 들어갔다. 칭얼거리는 아기가 수업을 방해해도 주변 사람들은 눈치를 주거나 불쾌한 티를 내지 않는다. 놀랍게도 수염이 수북한 아저씨들이 다같이 자장가를 불러주며 아이를 달랜다. 물론 이러한 장면은 아무리 어린아이에게 우호적인 프랑스라 하더라도 약간의 과장이 섞여 있다. 뒥 감독은 “현실에 마법 같은 필터를 입히는 방식을 찾고 있었다”고 언급했다.

이 밖에도 영화는 정말로 ‘프렌치 스타일’이다. 에티엔의 여자 친구 엘렌, 로자의 남자 친구 유세프와 함께 네 명이 복작거리게 둘러앉아 식사를 함께하는 부엌. 딸은 아빠의 여자 친구에게서 아빠가 밤마다 그녀의 품에서 울며 잔다는 비밀을 듣는다. 그날 밤 화장실 앞에선 아빠가 딸의 남자 친구와 자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9만km 떨어진 한국의 관객들 입장에선 깜짝 놀랄 만한 관계성이다.

프랑스 사회의 현실적인 모습 가운데서 어두운 부분은 도려낸 영화. 그럼에도 한국 관객들에게 충분한 환기가 될 수 있는 작품이다.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감독 에르완 르 뒥·출연 나우엘 페레즈 비스카야트, 셀레스트 브룬켈/ 2월2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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