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통해 세상을 봅니다. 안녕하세요. 맛있는 이야기 ‘미담(味談)’입니다. 인간이 불을 집어든 날, 첫 셰프가 탄생했습니다. 100만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들은 음식에 문화를 담았습니다. 미식을 좇는 가장 오래된 예술가, 셰프들의 이야기입니다.

한식공간 조희숙 셰프 인터뷰

“기후위기, 식재료 고갈 일으킬 것”

“주방의 무책임, 환경파괴 가속시켜”

“한식 세계화 위한 사명 앞으로도 계속 ”

한식공간 조희숙 셰프. 인스타그램
한식공간 조희숙 셰프. 인스타그램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절망적 목적지를 모르는 것마냥, 우리는 그곳을 향해 전력 질주하고 있다.

심각한 기후 위기로 한국에서 계절이 사라지고 있다. 며칠 전 만개한 벚꽃 위로 차가운 눈이 쏟아져 내렸다. 눈이 내리고 이틀 뒤에는 낮 기온이 27℃로 치솟았다. 올해 여름은 사상 최고의 폭염이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폭염은 매년 신기록을 갱신할 것이다. 지독히도 더운 여름이 무려 5개월 이상 이어질 수도 있다. 봄과 가을은 짧아지고, 따뜻하고 건조한 겨울만이 이어질 뿐이다.

계절의 변화는 밥상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계절감 있는 재료가 강정이라던, 한식의 근간마저 무너지고 있다. 수온의 증가로 한국의 대표 어종인 고등어, 오징어, 명태 등이 급감했다. 봄나물과 배추, 무 등 농작물도 한반도에서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과거 흔히 먹던 고등어구이, 오징어볶음, 온갖 산나물은 고급 한식집에서만 먹을 수 있는 요리가 될지 모른다. 지금보다 훨씬 많은 식량을 해외에 의존하는 암울한 미래는 결코 망상이 아니다.

“산처럼 쌓이는 라텍스 장갑과 버려지는 식재료들…무책임한 미식계 반성하라”

인터뷰 중인 조희숙 셰프. 채상우 기자
인터뷰 중인 조희숙 셰프. 채상우 기자

한국 미식계의 큰 산인 ‘한식공간’의 조희숙 셰프는 결국에는 김치마저 중국산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더는 국산 배추로 김치를 만들기 어려운 환경이 도래할 것이라는 암담한 미래를 내다본 것이다. 그럼에도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할 미식계가 오히려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허례허식과 겉치레에 광적으로 집착해 스스로의 목에 올가미가 채워지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주방에서 많이 사용하는 중국산 ‘라텍스 장갑’만 연간 320억개 이상 생산되고 있고 국내에서 한 해에 버려지는 농산물만 500t에 달한다. 그 심각성은 이미 우리가 상상하는 수준을 초월했다.

“기후 위기로 배추 생산이 급감한다면, 김치를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지 몰라요. 김치를 중국에 뺏기는 셈이죠. 그런데도 요리하는 사람들조차 그런 문제를 외면하고 있어요. 주방에서 무분별하게 버려지는 식재료와 쓰레기통에 산처럼 쌓이는 라텍스 장갑과 비닐 랩들을 보면 충격을 금할 수 없어요. 주방에서 직원 1명이 하루에 수십 장의 라텍스 장갑을 쓰고 있어요. 모양이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농산물만 1년에 수십만 톤에 달해요. 최고급 식재료 조차 모양을 낸다며, 주방에서 상당 부분 버려지고 있는 상황이에요.”

주방에서 사용되는 라텍스 장갑. 게티이미지뱅크
주방에서 사용되는 라텍스 장갑. 게티이미지뱅크

기후 위기로 인한 식재료 고갈은 미식의 양극화도 초래한다. 식재료 값의 상승으로 미식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미식은 부유층만의 향유물이 되고, 대다수는 지금보다도 더 낮은 수준의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봤던 온갖 호화로운 요리를 먹는 앞칸 사람과 벌레로 만든 블럭으로 연명을 하는 꼬리칸의 극명한 분리가 현실에서 이뤄지는 셈이다.

“이런 식으로 가게 되면, 지금 우리가 흔히 먹는 식재료도 나중에는 귀해질 거에요. 당연히 미식도 양극화로 갈 수밖에 없어요. 돈 있는 사람들은 비싸고 좋은 것을 먹을 수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식재료가 없으니 지금보다도 더 못한 식사를 할 수밖에요.”

조희숙 셰프는 주방에서 라텍스 장갑을 사용하지 않는다. 비닐 랩마저 깨끗하게 씻어 말린 뒤 재활용을 한다. 식재료는 소실되는 걸 최소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예컨대, 나물을 하고 남은 두꺼운 줄기 부분은 따로 장아찌를 담는다거나 채수를 낼 때 사용하는 식이다. 그는 이런 작은 실천이 큰 변화의 씨앗이 될 거라 믿는다.

“우리 모두의 의식 개선이 반드시 이뤄져야 할 문제에요. 언제부터 라텍스 장갑이 필수품이 됐을까요. 라텍스 장갑 대신 자주 손을 씻어 위생을 관리하면 되지 않을까요. 예쁜 모양으로 잘라낸 식재료가 아닌, 남아있어 자연스러운 식재료의 모습도 미식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의 변화가 필요해요. 건강한 지구, 우리 아이들이 오랜 시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요.”

국민학교 3학년 때부터 느낀 ‘요리의 보람’, 韓 미식계 큰 산을 만들다

조희숙 셰프와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 인스타그램
조희숙 셰프와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 인스타그램

조희숙 셰프는 ‘셰프들의 스승’, ‘한식의 대모’로 불린다. 미슐랭 3스타 강민구, 안성재 셰프를 비롯해 수 많은 미슐랭 스타들이 조희숙 셰프를 거쳤다. 수 많은 셰프들이 입을 모아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친 스승으로 조희숙 셰프를 꼽을 만큼, 미식계에서 그의 영향은 지대하다. 조희숙 셰프는 2019년 미슐랭 별의 영예를 안았으며, 이듬해 2020년에는 세계적 권위를 가진 ‘아시아 최고 여성 셰프’에 선정됐다. 포브스 선정 여성 리더 5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조희숙 셰프가 운영하는 한식공간은 2020년, 2021년 ‘아시아 베스트 레스토랑 50선’에 선정됐다.

조희숙 셰프와 모수의 안성재 셰프. 인스타그램
조희숙 셰프와 모수의 안성재 셰프. 인스타그램

중학교 가정교사 출신인 조희숙 셰프는 교편에서 내려와 1983년 세종호텔 한식당 ‘은하수’에서 요리사로 새 인생을 시작했다. 선생님에서 요리사로의 변신은 당시로는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요리사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던 시기였다. 주변에서는 해선 안 될 선택을 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미식을 추구하며 식당을 차리는 사람이 많지 않던 시절이었어요. ‘할 줄 아는 것 없는데 식당이나 차려볼까’하고 개업을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죠. 그러다 보니 요리사에 대한 인식은 바닥이었어요. 쉽게 말해 ‘능력 없는 부류’로 취급하곤 했어요. 교사를 하다가 요리를 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만류도 했었죠. 하지만, 저는 요리를 하고 싶어 그 길을 택했어요. 특별한 경우였지요. 처음 요리를 한 건 국민학교 3학년 무렵이었던 거 같아요. 맞벌이 하시는 부모 아래 맏딸이어서 음식을 도맡아 하게 됐어요. 태생적으로 제가 한 요리를 누가 먹고 좋아하는 모습이 좋았던 거 같아요. 그래서 요리를 시작하게 됐어요.”

이후 조희숙 셰프는 노보텔 앰배서더,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 신라호텔의 한식당을 거친 뒤 2005년 미국 워싱턴 주재 한국대사관저의 총주방장을 맡았다. 2017년 한식 연구소 ‘한식공방’을 열었다. 2019년에는 한식 다이닝 레스토랑인 ’한식공간‘을 인수해 오너 셰프로 요리를 하고 있다.

“한식만의 매력, 그대로 세계에 인정받아야”

조희숙 셰프. 채상우 기자
조희숙 셰프. 채상우 기자

조희숙 셰프는 40년 이상 한식에 매진한 자신의 요리 인생을 한 마디로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다만,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한식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2007년부터 한식의 전통과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는 비영리 문화단체, ‘아름지기’ 연구 전문위원으로 있으며, 한식 문화 연구소이자 레스토랑인 ‘온지음’의 기틀을 다지기도 했다. 수많은 셰프들에게 한식을 가르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조희숙 셰프는 한식이 세계화가 되기 위해서는 한식 본연의 색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식이 처음 정부 주도로 세계화가 추진됐을 때, 포인트를 잘못 잡았어요. 모양과 형식을 양식에 따서 코스 형식으로 나갔는데, 외국인들 입장에서는 매력이 없던 요리였던 거죠. 양식의 기준에 맞춰 한식을 억지로 끼워 넣으니, 제대로 된 한식의 맛을 느낄 수도 수준 높은 양식의 매력도 갖추지 못한 거에요. 가장 쉬운 길을 택하려 했던 게 원인이었어요. 빨리 성과를 내고자, 서양인들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거에요. 미식가들이 원한 건 진짜 한식이었어요. 한식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맛과 향에서 그들은 미식을 느꼈어요. 조금은 느릴 수있지만, 한식의 세계화는 길게 보고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본연의 맛으로 인정받을 때야말로 진정한 한식의 세계화가 광범위하게 이뤄질 수 있지 않을까요.”

조희숙 셰프의 김부각을 곁들인 탕평채. 한식 본연의 색과 맛을 살린 그의 요리 철학이 돋보인다. 인스타그램
조희숙 셰프의 김부각을 곁들인 탕평채. 한식 본연의 색과 맛을 살린 그의 요리 철학이 돋보인다. 인스타그램

조희숙 셰프는 한식이 세계적 미식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이 앞으로도 계속 그런 맛있는 한식을 오래 오래 즐길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조희숙 셰프 스스로 예견한 끔찍한 미래가 제발 오지 않기를, 절망이 아닌 희망을 향해 우리가 나아가기를, 그는 오늘도 애타는 마음으로 기원한다.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