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서 관세협상을 총괄 지휘하는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 21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상호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시점인 내달 1일 이전에 각국과 신속히 무역 합의를 하는 것보다 ‘질 높은 합의’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미국이 중시하는 것은 관세협상의 질이지 합의의 타이밍이 아니라는 것을 대놓고 강조한 것이다. 데드라인까지 열흘 남은 시한에 쫓겨 적당히 타협하는 일은 없을 테니 제대로 된 협상안을 가져오라는 압박 메시지를 각국에 타전한 것이다. 관세 줄다리기에서 시간은 자신들 편이니 속도전 보다는 지구전을 펴며 더 나은 제안을 제시하는 상대국부터 협상을 매듭짓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베선트 장관은 질 높은 합의의 실례로 최근 무역합의를 이룬 인도네시아를 들면서 “그들은 총 5차례 합의안(초안)을 가져 왔는데, 첫 제안이 매우 좋았지만 (미국이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면서) 다시 (수정안을) 들고 왔다. 제안은 점점 좋아졌고, 결국 환상적인 합의(인도네시아 상호관세를 32%에서 19%로 인하 하고 미국산 수입품의 관세 및 비관세 장벽 전면 해제)에 이르렀다”고 했다. 반면 7차례나 협상을 벌였지만 건건이 퇴짜를 놓은 일본의 경우는 이와 대비되는 사례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25%의 상호관세 및 자동차 관세를 맞은 일본은 대미투자 및 에너지 수입 확대 등을 협상카드로 내걸고 있다. 우리나라와 경제·안보상 닮은 꼴 국가가 지구전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관세협상도 버거운데 미국은 이참에 한국의 비관세 장벽도 허물겠다며 공세를 펴고 있다. 엎친데 덮친격이다. 미국은 농산물 분야에서 쌀 수입 쿼터 확대, 30개월령 이상 소고기 수입, 사과 등 농산물 검역 기준 완화를 들고 나왔다. 또 디지털 통상 분야에서 고정밀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 허용, 미국 플랫폼 기업 규제 금지 등을 요구하고 있다.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은 “지금 손해를 보더라도 미래를 위해 (미국에) 줄 건 좀 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는데 농산물 개방의 민감성에 자칫하다간 대내갈등이 증폭될 우려가 크다. 제2의 광우병 사태로 번지지 않도록 과학적 근거와 소비자 후생, 산업간 형평성 등을 모두 고려한 최적의 전략을 세워야 한다.

앞으로 며칠간은 한국 경제의 운명이 달렸을 정도로 중요하다. 국가안보실장과 경제부총리가 미국의 안보·경제 라인과 본격 협의에 나서고 한미의원연맹 소속 의원들도 관세 협상 지원에 나선다. 미국이 무역합의의 질을 들고 나온 만큼 관세와 비관세, 주한미군분담금 및 국방비 증액 등 전방위의 ‘올코트 프레싱’에 대비한 전술·전략을 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