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사관이 대위에게 “지휘관 엉망이다” 비난
1·2심 유죄 선고했지만…대법원서 파기환송
“전파성·확산성·지속성 가진 공연한 방법이어야”
[헤럴드경제=양근혁 기자] 군인이 상관을 비난하는 말을 했더라도, 단순히 불특정 다수가 발언을 들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이유만으로는 군형법상 상관모욕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군형법이 상관모욕죄의 요건으로 정하고 있는 ‘공연한 방법’은 문서 게시나 연설처럼 전파성과 지속성을 가진 방식에 준하는 수준이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1999년 12월부터 유지해 온 기존 판례를 26년 만에 변경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22일 상관모욕 혐의로 기소된 해군 부사관(상사) A씨 상고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법원(고등군사법원)과 동등한 관할 법원인 서울고법으로 이송했다. 국회에서 2021년 9월 개정돼 2022년 7월부터 시행된 군사법원법에 따라 원심법원이던 고등군사법원이 폐지되면서 그와 동등한 관할 법원인 서울고법으로 이송했다고 대법원은 설명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군형법 제64조 제2항의 ‘그 밖의 공연한 방법’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였다. 해당 조항은 ‘문서·도화 또는 우상을 공시하거나 연설 또는 그 밖의 공연한 방법’으로 상관을 모욕한 경우를 상관모욕죄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A씨는 2019년 10월 해군 함정이 기지로 입항하던 중 조타실에서 상관인 대위에게 여러 차례 항해 관련 의견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하사 등 군인 3명이 있는 자리에서 “여기 지휘관 엉망이다. 권고도 듣지 않는다”고 말하며 착용하고 있던 헤드셋을 책상에 집어 던진 혐의(상관모욕)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A씨의 행위가 상관모욕에 해당한다고 인정해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이후 2심도 1심의 판단을 유지했다.
하지만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군형법 조항의 문언과 입법형식 등을 고려하면 상관모욕죄가 성립하기 위해선 단순히 여러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상황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문서·도화 또는 우상을 공시하거나 연설’에 해당하거나, 그와 비슷한 정도의 전파성과 확산성, 지속성을 가진 공연한 방법으로 모욕이 이뤄져야 한다고 짚었다.
전원합의체는 “군형법 제64조 제2항은 ‘공연히’가 아니라 ‘공연한 방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며 “‘공연한 방법’을 단순히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로 해석하는 것은 형벌법규를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확장해석하는 것으로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서 게시나 연설에 상응하는 공연한 방법으로 상관을 모욕한 경우에는 높은 전파성과 지속성으로 인해 상관의 사회적 평가뿐 아니라 군 조직의 위계질서와 지휘체계까지 훼손될 위험이 있다”며 “군형법이 공연한 방법을 별도로 요구한 이유도 이러한 중대한 법익 침해를 처벌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원합의체는 A씨의 행위가 ‘공연한 방법’으로 상관을 모욕한 수준에 이르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군인 3명은 각자의 업무를 수행하다 우연히 발언을 들었을 뿐이고, A씨가 여러 군인을 상대로 공개적으로 발언하거나 반복·지속적으로 확산될 방식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이 같은 판단에 따라 “군형법 제64조 제2항 상관모욕죄는 문서·도화 또는 우상을 공시하거나 연설하는 것 또는 이에 상응하는 정도의 공연한 방법으로 상관을 모욕한 경우에만 성립한다”고 판시하고, 기존에 단순한 공연성만 인정되면 상관모욕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던 1999년 12월 대법원 판결 등 종전 판례를 변경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문언을 엄격하게 해석해 처벌범위를 합리적으로 제한하는 취지의 판결”이라며 이날 선고의 의의를 설명했다.
y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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