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 파업 전운에 기업들 진퇴양난
대체인력 등 회사 대응 수단도 없어
소송·교섭나선 기업들 각개전투 진땀
재계가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임단협)에 돌입한 가운데 올해는 사용자 범위 및 노동쟁의 대상 확대를 골자로 한 노란봉투법(노조법 개정안) 시행 영향으로 역대급 하투(夏鬪)가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원청 노조 뿐 아니라 노봉법으로 협상 지위가 강화된 하청 노조들까지 연이어 교섭 결렬을 선언하며 파업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기업들은 처음 겪어보는 복잡다단해진 노사 협상 국면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파업을 감수하며 노조를 대상으로 소송에 나설지, 요구안 수용을 염두하고 교섭 테이블에 앉을지 갈림길에 서 있다. 이런 가운데 실적에 치명적인 생산 차질을 최소화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다. ▶관련기사 12면
29일 업계에 따르면 노동위원회로부터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받은 다수 하청 노조는 올해 파업 태세를 갖추고 있다. 한화오션 하청노조를 시작으로 민주노총 산하 포스코 하청노조는 이미 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을 신청해 파업권을 확보했다. HD현대중공업 하청노조, 건설 업계 하청 노동자들이 소속된 플랜트건설노조도 조정 신청을 예고한 상태다.
노사 하투가 벌어지는 여름을 앞두고 재계에선 올해 노조 파업 규모가 예년보다 격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하청 비중이 많은 제조 업계는 생산 차질이 더욱 커질 수 있다. 노조 파업으로 빈 자리에 회사가 외부 인력을 투입하는 것을 금지하는 이른바 ‘대체근로 금지조항’이 하청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송연창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기존에 회사들은 하청이 노조를 벌이면 다른 하청을 임시로 고용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왔다”며 “하청이 파업을 벌이는 게 올해가 처음은 아니지만, 올해는 이런 대응 수단이 없다는 게 치명적”이라고 설명했다.
노조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낮춘 노봉법 조항도 올해 파업 규모를 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노봉법은 파업으로 회사가 손해를 입었더라도, ‘부득이한 이유’에 의한 파업이라면 노조가 손해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봉법이 사실상 파업 억제 수단을 무력한 상태라, 노조 입장에선 파업을 안 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하투를 앞둔 기업들 대응은 엇갈리고 있다. 노동위원회 판단에 불복해 노조를 상대로 소송 절차까지 밟거나, 아니면 전면 파업을 우려해 교섭에 나서는 식이다. 한화오션의 경우 노조와 본격적인 소송전에 나섰다. 한화오션은 사내 급식업체 웰리브에 대한 사용자성을 인정한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에 불복해 서울행정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과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이는 재계에서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원청의 사용자성과 관련 전면 소송에 나선 첫 사례다.
한화오션의 경우 노조의 압박 수위도 만만치 않아 올해 하투에서 강대강 대치를 벌일 것으로 보인다. 한화오션 하청노조는 이달 초 경남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원청과의 교섭과 관련, 조정 중지 결정을 받아 파업권을 확보했다. 조정 중지란 단체교섭 때 노사 입장 차가 클 때 노동위원회가 판단해 교섭을 종료하고 노조에 파업권을 부여하는 조치다. 한화오션 하청노조는 원청에 10차례 단체교섭을 요구했지만 회사가 응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포스코는 노조와 교섭에 착수해 파업 위기를 누그러뜨리고 있다. 올해 원청을 비롯 하청노조 3곳(한국노총 산하 금속노련·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플랜트건설노조)과 교섭을 해야 하는 포스코는 각각 노조와 상견례에 나서고 있다. 포스코 원청노조는 원청과 회사와 6차례 교섭에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며 27일 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 조정을 신청했다. 포스코 민주노총 하청노조는 이달 초 노동위원회로부터 이미 조정 중지 결정을 받은 상태다.
송 변호사는 “기업 입장에선 노조 파업을 감수하면서까지 (사용자성 인정 불복) 소송에 나설지, 아니면 울며 겨자먹기로 허청과의 교섭 테이블에 앉을지, 두 가지 선택지를 사실상 강요당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원청 사용자성 판단에 대한 불확실한 기준이 노사 분쟁이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지순 교수는 “노동위원회가 사용자성 판단 기준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어, 노사 간 법적 분쟁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혜원·권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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