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금대출 빗장 풀린 수분양자 안도

기존 주택 매수자 ‘대출 절벽’ 여전

“상환 능력에 맞는 대출 열어달라”

전문가 ‘수평적 형평성’ 필요 지적

“실거주 검증 깐깐히 해야” 주문도

서울 남산 N서울타워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주택가 모습. [헤럴드DB]
서울 남산 N서울타워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주택가 모습. [헤럴드DB]

[헤럴드경제=김은희·서상혁·정호원 기자] 은행권이 잔금대출을 앞둔 실수요자의 어려움을 해소해 달라는 금융당국의 요청에 대출 문을 잇따라 열어주면서 시장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자금 경색 위기에 몰렸던 수분양자들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지만 기존 주택 매수자들 사이에서는 수분양자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정부 규제 범위 안에서 주택 매매 계획을 세웠는데도 은행의 대출 제한으로 자금줄이 막힌 것은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금융당국이 청년, 신혼부부, 생애최초 등 실수요자를 대상으로는 핀셋 지원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가운데 실수요자를 어떻게 규정하고 어디까지 지원하느냐를 두고 해석의 간극이 적잖을 것으로 보인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은행이 경기도 수원에 있는 매교역 팰루시드에 추가 잔금대출 한도를 배정한 데에는 최근 열린 부동산 정책 국민 대토론회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한 입주 예정자가 가계대출 총량 규제로 잔금대출이 막혀 계약을 포기할 위기라고 호소하자 이재명 대통령은 이미 확정된 분양 계약자의 애로에 공감하며 금융당국에 보완책 마련을 주문했다.

이에 금융위는 은행권에 유연한 잔금대출 운용을 당부했고, 주요 은행은 각각 1000억원 안팎의 대출 한도를 추가 배정하거나 이를 검토하고 있다. 잔금을 치르지 못해 연체 이자를 부담하거나 입주가 무산될 위기에 놓였던 수분양자들은 당장의 자금난을 덜게 됐다.

그러나 기존 주택을 매수하려는 실수요자들은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수분양자의 자금난을 터주는 정책 방향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동일한 자금 경색에 직면한 자신들은 사실상 방치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총량 규제를 완화해 갚을 수 있는 여력만큼은 대출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한다.

수분양자는 입주 시점에 대출 규제가 강화되더라도 분양 당시 입주자모집공고를 기준으로 대출 조건을 적용받는 경과규정의 보호를 받는다. 현행 규제가 적용되는 기존 주택 매수자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한도와 조건을 적용받는 셈이다.

여기에 총량 관리로 대출 문이 닫히자 당국이 직접 나서 물꼬를 터준 반면 강화된 대출 규제를 적용받고 있는 기존 주택 매수자들은 창구에서 외면받고 있다.

물론 규제가 강화되는 상황에서도 주택 매수를 결정한 책임은 스스로 감수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적어도 정부 규제를 준수하는 선에선 누구든 상환 능력에 맞게 대출받을 수 있도록 자금줄을 열어둬야 한다는 게 이들의 호소다.

기존 주택을 매도한 뒤 이달 초 신규 주택 매매 계약을 체결한 40대 한모 씨는 “토지거래허가를 신청할 당시만 해도 가능하다고 상담받았던 대출이 현재는 불확실하다는 답변을 금융기관으로부터 받았다”며 “주택가격 상승을 막기 위한 대출 규제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금융기관이 예고도 없이 한도를 줄이면서 예정된 잔금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혹여나 계약금과 중도금을 날리고 거리로 내몰리는 것은 아닐지 걱정된다”고 밝혔다.

실제 금융당국도 내부적으로 이같은 형평성 논란을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당국은 최근 5대(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은행 부행장 회의에서 잔금대출과 관련한 구체적인 지원 규모는 외부에 밝히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더해 형평성 논란을 제기하는 민원이 일지 않도록 은행에 각별한 관리를 요청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의 잔금대출 규제 완화 움직임에 대해, 규제 발표 전 이미 주택 구매에 나선 실수요자의 피해를 줄이고 정책 설계 단계에서 미처 예상하지 못한 예외적 상황을 사후에라도 점검·보완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이번 검토가 일부 사례에 대한 일회성 구제에 그쳐서는 안 되며, 유사한 처지에 놓인 차주 전반으로 완화 조치를 넓혀야 한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특정 유형에만 우대가 집중될 경우 대출 시장 내 형평성 논란이 불거지고 정책의 일관성마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부동산 규제가 지역별로 달리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같은 것은 같게 다뤄야 한다는 ‘수평적 형평성’은 지켜져야 한다”며 “일부 사례에 한정해 잔금대출을 풀어주기보다 유사한 사례에는 모두 잔금대출을 허용하는 식의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대출 총량 규제 등의 기존 기조를 유지하되 핀셋지원을 통해 서민·청년 등 실수요자의 애로를 해소해 나갈 방침이다. 이에 따라 지원 대상과 범위를 어떻게 하느냐가 남은 과제로 꼽힌다.

특히 잔금대출 완화 과정에서 실거주 여부를 가려내는 세밀한 검증 장치가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집단대출이라고 해도 분양 계약자가 실제 거주하는지 여부를 확인해야 정부가 애초 부동산 정책을 만든 의도대로 투기 세력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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