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고용법 개정에도 무허가 가설건축물만 제재 대상
합법 가설건축물은 숙소 사용 가능…폭염·냉방 기준은 여전히 공백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정부가 외국인 노동자에게 불법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하지 못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했지만, 폭염 속 ‘찜통 숙소’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정 외국인고용법은 건축법상 적법한 건축물인지 여부를 중심으로 규제를 강화했지만, 폭염과 혹한을 견딜 수 있는 주거 성능까지 담보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불법’만 핀셋 규제… 조건 갖춘 가설건축물은 여전히 숙소로 활용
4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6월 공포된 외국인고용법 개정안은 사업주가 외국인 노동자에게 제공하는 숙소가 건축물대장 또는 가설건축물대장상 주거 용도에 적합하고, 근로기준법 제100조에 따른 기숙사 기준을 충족하도록 규정했다.
그동안 제재가 어려웠던 무허가·불법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하는 행위를 막고, 지방자치단체가 주거환경 개선사업을 추진할 경우 국가가 행정·재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 이번 개정의 핵심이다. 다만 개정법은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7년 6월부터 시행된다.
노동부는 올해부터 농업 분야 이주노동자 주거환경 개선 지원사업을 신설해 일반건축물로 숙소를 전환하는 사업주에게 최대 1800만원의 개·보수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김해와 사천에서는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이주노동자 공공기숙사 건립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이번 개정은 ‘불법 가설건축물’을 퇴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가설건축물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부 관계자는 “가설건축물 자체를 모두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며 “허가를 받아 적법하게 설치된 가설건축물이고 근로기준법 제100조상 기숙사 기준을 충족하면 숙소로 사용하는 데 제재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개정은 불법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 취지”라며 “합법적인 가설건축물까지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결국 사업주가 건축법에 따라 가설건축물을 적법하게 신고하고, 근로기준법상 기숙사 기준을 충족하면 외국인 노동자 숙소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온도·단열 기준 없는 근로기준법… ‘적법 가설건축물’의 치명적 함정
문제는 ‘적법한 숙소’와 ‘안전한 숙소’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언론이 취재한 농촌 이주노동자 숙소는 이런 제도의 빈틈을 그대로 보여준다.
서울신문은 경기 포천시의 한 농가의 비닐하우스 숙소 내부 온도가 38.9도까지 오른 사례를 보도했다. 한겨레신문도 차광막 안쪽 표면 온도가 46.7도까지 치솟은 경기 포천시 소홀읍 숙소를 취재하면서, 에어컨이 설치돼 있음에도 노동자들이 “틀어도 덥다. 의미가 없다”고 호소했다고 전했다.
비닐하우스 외피 안에 컨테이너형 방을 설치한 구조에서는 냉방기를 가동해도 외피와 벽체에 축적된 열이 빠져나가지 않아 냉방 효과가 크게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 현장의 설명이다.
반대로 겨울에는 단열 성능이 낮아 혹한에 그대로 노출될 가능성도 있다. 실제 2020년 12월 경기 포천에서는 캄보디아 출신 외국인 노동자가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진 사건이 발생하면서 농촌 외국인 노동자 숙소 문제가 사회적 논란이 된 바 있다.
현행 법체계는 이런 극한 기후에 대한 대응 기준을 별도로 두고 있지 않다.
외국인고용법 제22조의2는 사용자가 제공하는 숙소가 근로기준법 제100조의 기숙사 기준과 건축법상 적법한 주거 용도를 충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100조 역시 기숙사의 구조와 설비, 설치 장소, 주거환경, 면적 등을 규정하고 있지만, 폭염이나 혹한에 대비한 단열 성능이나 냉·난방 성능, 실내온도 유지 기준은 명시하지 않고 있다.
결국 건축법상 적법하게 신고되고 기숙사 기준을 갖춘 숙소라도 폭염에는 ‘찜통 숙소’, 겨울에는 ‘냉동 숙소’가 될 가능성을 현행 법체계만으로는 걸러내기 어렵다는 의미다.
노동부 관계자는 “합법적으로 신고된 가설건축물은 근로기준법 제100조상 기준에 적합한지를 보게 된다”며 “불법 가설건축물은 제재 대상이지만, 적법한 가설건축물은 해당 기준을 충족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후위기가 일상이 된 만큼 건축물의 적법성 여부를 넘어 실제 거주 성능까지 제도에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노동계 관계자는 “불법 숙소를 없애는 것과 사람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숙소를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라며 “근로기준법상 기숙사 기준에 폭염과 혹한에 대응할 수 있는 단열·냉방·난방 성능 등 사계절 주거 기준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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