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퇴근 후 20·30대의 발길이 향하는 곳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 호프집이나 주점에서 시간을 보내던 젊은 층이 최근에는 캐릭터 굿즈를 뽑는 가챠숍이나 피규어 매장으로 이동하면서 자영업 상권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12일 국세청의 ‘100대 생활업종 사업자 현황’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전국 장난감가게는 3996개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달 3323개보다 673개 늘어난 수치로, 1년 사이 20.3% 증가했다.
전달인 5월 말 3929개와 비교해도 한 달 만에 67개 늘었다. 최근 한 달 기준으로 보면 하루 두 곳꼴로 새 장난감가게가 문을 연 셈이다. 국세청은 장난감가게 증가세가 피규어 매장과 가챠숍 확산과 맞물린 것으로 분석했다.
반면 술집은 빠르게 줄고 있다. 같은 기간 전국 호프주점은 2만1705개에서 1만9730개로 1975개 감소했다. 감소율은 9.1%다. 선술집 등이 포함된 간이주점도 8648개에서 7853개로 795개 줄어 9.2% 감소했다.
젊은 층이 많이 찾는 서울 주요 상권에서는 이 같은 흐름이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홍대 상권이 있는 서울 마포구의 장난감가게는 지난해 49곳에서 올해 70곳으로 42.9% 급증했다. 같은 기간 마포구 호프주점은 271곳에서 252곳으로 7.0% 줄었고, 간이주점은 212곳에서 187곳으로 11.8% 감소했다.
술집이 줄어든 자리를 가챠숍과 피규어 매장 등 취향 소비를 겨냥한 점포들이 채우고 있는 것이다.
장난감가게 증가의 배경에는 완구 시장의 소비층 변화가 있다. 과거 장난감의 주된 소비자가 어린이였다면, 최근에는 애니메이션과 게임, 캐릭터에 관심이 많은 성인 소비자들이 시장에 대거 유입되고 있다.
가챠는 보통 2000~7000원가량을 내고 캡슐 속 캐릭터 상품을 무작위로 뽑는 방식이다. 원하는 캐릭터가 나올 때까지 여러 차례 뽑거나, 중복 상품을 친구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교환하는 문화도 확산하고 있다. 피규어 역시 어린이용 완구를 넘어 성인의 수집품이자 취향을 드러내는 소비재로 자리 잡았다.
이 같은 변화는 일본에서 먼저 두드러졌다. 코트라에 따르면 일본 가챠 시장의 주요 소비층은 어린이에서 10~30대 여성, 직장인, 캐릭터 팬덤 등으로 확대됐다. 좋아하는 캐릭터를 작은 굿즈로 수집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인증하는 문화가 퍼지면서 가챠는 ‘아이들의 장난감’에서 ‘자기표현형 소비’로 성격이 바뀌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청년 고용 여건이 불안정하고 외식비와 주거비 부담이 커지면서, 한 번에 큰돈을 쓰는 술자리보다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만족감을 얻는 ‘작은 사치’가 2030세대 사이에서 확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음주 관련 지표도 변화를 보여준다. 질병관리청의 ‘2025 지역사회건강조사’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20대 남성의 고위험음주율은 17.8%에서 10.4%로 41.6% 감소했다. 전 연령대 가운데 감소 폭이 가장 컸다.
주류 소비 둔화는 수입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1~2월 위스키 수입 중량은 2880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4012t보다 28.2% 줄었다. 같은 기간 와인 수입 중량도 2% 감소했다. 지난해 전체 주류 수입액은 12억7374만달러로 2년 전 14억7196만달러보다 13.5% 줄었다.
주류업체 실적도 부진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롯데칠성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672억원으로 전년보다 9.6% 감소했고, 하이트진로의 영업이익은 2081억원에서 1723억원으로 17.2% 줄었다.
전문가들은 술 중심의 회식·여가 문화가 약해지고, 개인 취향을 드러내는 소비가 확대되면서 상권 구조도 함께 바뀌고 있다고 본다. 친구나 동료와 오랜 시간 술집에 머무르기보다 퇴근길에 잠시 가챠숍에 들러 캐릭터 굿즈를 뽑거나 피규어를 구경하는 식의 소비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자영업 시장의 업종 재편으로 이어지고 있다. 소비자들이 ‘얼마나 오래 머무느냐’보다 ‘어떤 경험을 남기느냐’를 중시하면서, 젊은 층을 겨냥한 상권의 경쟁력도 술자리 중심에서 취향과 체험 중심으로 옮겨가는 모습이다.
rainbo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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