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인섭 티엑스알로보틱스 대표 中 ‘WRC’ 참관기

산업 아닌 문화로 접근할 ‘K-로봇문화’ 대전환 절실

시기놓친 육성은 투자아닌 낭비 대외협력 과감해야

엄인섭 티엑스알로보틱스 대표
엄인섭 티엑스알로보틱스 대표

심각한 질문 하나를 던지지 않을 수 없다. ‘한국 로봇산업은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난 19∼2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 최대 로봇축제 ‘2026 월드 로봇컨퍼런스(WRC)’ 현장. 중국전자학회(CIE)와 세계로봇협력기구(WRCO)가 공동 주최한 이 행사는 단순 기술전시를 넘어 포럼·전시·경진대회를 아우르는 대형 융합플랫폼으로 자리잡았다. 현장에서 확인한 글로벌 로봇산업은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혁신을 거듭하고 있었다.

인상 깊었던 것은 휴머노이드의 눈부신 발전. 걷거나 물건을 옮기는 단계를 지나 감정인식과 상호작용 기능을 탑재한 서비스형 휴머노이드가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왔다. 휴머노이드는 범용기술 단계를 넘어 가정·공장·물류·서비스 등 산업별 실용화 단계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산업용로봇은 초정밀 조립과 용접·가공 자동화 영역에서 미세공정을 한층 빠르고 정교하게 수행했다. AMR과 AGV 중심의 스마트 물류시스템은 휴머노이드와 결합한 하이브리드 AMR로 진화하며 물류 자동화 완성도를 더 높였다. 수술·재활·간호·고령자 케어를 아우르는 의료·헬스케어로봇 역시 일상 깊숙이 들어오는 중이다. 나아가 액추에이터, 센서, 머신비전 등 하드웨어를 구동하는 전방위 에코시스템까지 한자리에서 확인됐다.

1240여 기업들이 전시한 세계 최고 로봇기술들을 현장에서 목격했다.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위기감을 넘어 심경이 복잡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한국 로봇산업이 생존하고 도약하기 위해 현장에서 느낀 바를 네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산업이 아닌 문화로서의 로봇’ 저변확대. 국민적 관심과 친숙함으로 다가가야 한단 소리다. 전시장 입구 줄에서부터 느낀 것은 어린이부터 고령층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로봇에 대한 관심이었다. WRC는 산업행사가 아니라 온 국민이 즐기는 ‘축제의 장’에 가까웠다. 업계 종사자의 관심에 의지하는 우리완 달리 사회 전체가 로봇기술에 관심을 갖고 애정을 쏟는 문화적 기반이 확인됐다. 대중이 로봇을 일상에서 체험하고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K-로봇문화’의 형성이 필요함을 일깨운다. 로봇개와 산책하고 음악을 들으며 휴머노이드와 함께 웃고 즐기는 문화는 미래적 풍경이 아니다. 이미 국외에서는 현실이다.

둘째, 숫자가 아니라 지식과 역량을 갖춘 인재의 양성. 우리나라도 AI·로봇·반도체 등 분야별 로드맵을 수립해 이행하고 있다. 진정한 성과를 내려면 인력양성의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 정부지원을 받는 학교·연구기관·기업의 자율성은 보장하되 실질성과가 뒷받침돼야 로봇생태계 전체의 성장을 이끄는 선순환구조를 만들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두 갈래의 인재가 필요하다. 하나는 ROS2·리눅스 기반 로봇 운영체제 구동과 제어알고리즘 구현, 휴머노이드에 맞는 고밀도 메카트로닉스 설계, 다관절로봇의 키네마틱스·다이내믹스 해석, 열관리 및 내구성 구조설계를 아우르는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융합인력이다. 다른 하나는 강화학습 기반 동작제어, 시각언어모델·거대언어모델 기반 판단과 멀티모달 인식, 피지컬AI 역학모델링을 다루는 AI 전문인력이다. 로봇과 AI는 어느 한쪽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 관계다. 두 인재군이 하나의 플랫폼에서 함께 연구하고 성장하도록 묶어내야만 한다.

셋째, 글로벌 협력네트워크의 과감한 확장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국내 로봇정책은 개발에 지나치게 무게가 실려 있다. 핵심 소재·부품·모듈·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글로벌 기관과 협력에는 다소 소극적이다. 선진국과 격차가 존재하는 현시점에서 미국·중국·일본 등의 선도 기관 및 기업과의 다각적 협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정부 또한 글로벌 공급망에 적극 참여하고 해외기관과 협력하는 국내 기업에 더욱 파격적인 지원과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 국내 기업 육성도 중요하지만 시기를 놓친 육성은 투자가 아니라 낭비다. 글로벌 협력과 기술·산업의 확장, 규모의 경제 도달이야말로 지금 우리 로봇산업에 가장 필요한 과제다.

넷째, 현장친화적 ‘한국형 휴머노이드’의 도입전략도 요구된다. 휴머노이드를 제조현장에 곧바로 전면 투입하기에는 기술·비용 면에서 아직 한계가 있다. 현실적 대안은 기존 자동화설비와 휴머노이드를 융합해 일부 산업용로봇의 임무를 단계적으로 대체하게 해야 한다. 여기서 축적한 현장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율형 휴머노이드’로 진화시키는 것이다. 단일작업에서 복합작업으로, 나아가 현장상황을 스스로 판단하는 ‘제조특화 휴머노이드’로 넓혀가야 한다.

타국의 로봇굴기에 대해 절망할 필요는 없다. 휴머노이드 원천시장에서는 일부 나라에 뒤처져 있을지 몰라도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 기반과 MES(제조실행시스템)·WMS(창고관리시스템) 같은 우수한 공정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 강점이 휴머노이드와 연동되면 경쟁력은 강력해진다. 실제 한국의 제조업 로봇밀도는 노동자 1만명당 1220대로 세계 1위(IFR, World Robotics 2025)다. 활용 역량만큼은 세계 최고란 뜻이다.

휴머노이드가 제조현장과 가정, 서비스산업에 자리잡기까지는 아직 몇 년이 더 필요해 보인다. 바꿔 말하면, 한국이 로봇경쟁력을 입증할 시간이 아직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늦어져서는 안 된다.

로봇은 이제 미래기술이 아니다.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성장동력이다. 정부의 명확한 정책방향, 기업의 과감한 도전과 협력, 국민적 관심은 대한민국을 로봇강국으로 만들 수 있다.


freiheit@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