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력+속도…세계 최대 ‘화장품 ODM’ 우뚝
단순 생산 넘어 제형개발·기능 검증까지 맡아
글로벌 에어쿠션 시장 석권…누적 9억개 생산
AI스마트 조색·마이크로바이옴 기술력 최고
美·日·동남아서 유럽까지…‘K-뷰티’ 선봉장
세상에는 기업이 참 많습니다. 다들 무얼 하는 회사일까요. 쪼개지고 합쳐지고 간판을 새로 다는 회사도 계속 생겨납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도, 수년을 하던 사업을 접기도 합니다. 다이내믹한 기업의 산업 이야기를 현장 취재, 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쉽게 전달해드립니다.
미국과 일본, 동남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K-뷰티 열풍이 거세다. 국내 브랜드를 비롯해 전 세계 유명 화장품 브랜드 뒤에는 숨겨진 이름이 있다. 화장품 브랜드 뒤에서 제품을 연구·개발하고 생산하는 ODM(제조자개발생산) 기업 ‘코스맥스’다. 코스맥스는 일반 소비자에게는 다소 낯선 이름일 수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보이지 않는 챔피언’으로 통한다. 국내외 5000여개 고객사를 확보하고 있으며 세계 최대 화장품 ODM 기업으로 통한다. 지난해 매출은 2조3988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제품 생산 능력은 연간 35억개에 달한다. ODM은 브랜드 회사의 주문을 받아 제품을 생산하는 OEM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개념이다. 브랜드가 요구하는 제품을 만드는 수준을 넘어 원료 선정부터 제형 개발, 기능 검증, 생산까지 모두 맡는다. 이젠 ODM 기업이 제품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다.
쿠션파운데이션 생산 누적 9억개…전 세계 러브콜
“한국 여성들은 수정 화장을 하루에도 3~4번 하지만 미국·중국 여성들에겐 수정 화장이란 개념이 없습니다. 한 번에 8시간을 유지하는 두터움이 필요합니다. 이 디테일을 잡아내는 것이 결국 경쟁력입니다.”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에 자리 잡은 코스맥스 연구개발(R&I) 센터는 규모가 7층에 달한다. 각 층마다 스킨케어, 파우더, 조향, 색조 등에 대해 심층적인 연구를 진행한다. 연구 복도에는 다양한 제형의 샘플들이 빼곡히 놓여 있었다. 에센스와 크림, 립, 쿠션, 자외선 차단 제품은 물론 아직 출시되지 않은 시제품도 눈에 띄었다. 연구원들은 고객사가 원하는 기능과 사용감, 발림성, 지속력 등을 구현하기 위해 수없이 배합을 바꾸며 실험을 반복하고 있었다.
특히 코스맥스는 글로벌 유명 브랜드의 ‘에어쿠션’ 시장을 꽉 잡고 있다. 코스맥스는 전 세계 여성들의 피부 특성에 맞게 ‘쿠션 파운데이션’의 색부터 제형까지 연구하고 개발했다. 얼굴이 한 가지 색으로 균일한 한국 여성들과 달리 동남아시아, 히스패닉계 여성들은 얼굴에도 다양한 ‘톤’을 갖고 있다. 코스맥스는 이 같은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다.
강승현 코스맥스 R&I Unit 원장은 “꼭 최초로 만드는 것이 혁신이 아니다”라며 “세계 시장에서 쿠션을 꽃 피운 것은 코스맥스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에스티로더 등 글로벌 대형 브랜드의 쿠션은 코스맥스에서 만들고 있다. 이어 그는 라며 “미국, 중국, 유럽 고객들이 원하는 속성을 브랜드사들은 알고 있고, 그 회사들과 티키타카를 하면서 속성을 맞추고 따라갔더니 그 시장을 석권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2013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코스맥스가 판매한 쿠션파운데이션은 9억개에 달한다.
연구개발에 총력…‘K-뷰티’ 성장세 타고 ‘날개’
1990년대만 해도 국내 화장품 시장은 브랜드사가 직접 연구소와 생산시설을 갖춰야 하는 구조였다. 창업자인 이경수 회장은 유럽과 일본에서 ODM 모델의 가능성을 확인했고, 국내에서는 생소했던 사업 모델에 도전했다. 1993년 자체 연구소를 세우며 연구개발 중심 기업으로 방향을 잡았다. 당시 연 매출은 100억원 수준에 불과했지만 투자만큼은 아끼지 않았다.
이후 로드숍 브랜드의 성장과 K-뷰티 확산 흐름을 타며 회사는 커지기 시작했다. 특히 코스맥스는 일찌감치 글로벌 시장을 공략에 나서면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2004년 국내 ODM 기업 중 최초로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 로레알을 비롯한 글로벌 빅 브랜드와 협업을 하면서 2015년에는 매출 5333억원을 기록하며 ODM 업계 1위로 올라섰다. 코스맥스의 직접 수출액은 지난해 기준 1억9619만달러(약 3037억원)를 기록했고, 직·간접 수출국은 130여개에 달한다.
코스맥스의 성장세는 실적에서도 확인된다. 코스맥스의 매출은 2021년 1조5915억원에서 2022년 1조6001억원으로 소폭 증가한 뒤 2023년 1조7775억원, 2024년 2조1661억원, 지난해 2조3988억원으로 매년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영업이익도 2021년 915억원에서 2022년 733억원으로 잠시 주춤했지만, 2023년 1157억원, 2024년 1754억원, 지난해 1958억원으로 회복하며 수익성까지 개선됐다
글로벌 생산 기지도 꾸준히 늘리고 있다. 한국과 중국을 비롯해 미국·인도네시아·태국·이탈리아 등 전 세계 공장 수만 19곳에 달한다. 코스맥스는 인도와 중동 등 신흥 시장 개척에도 나섰다. 국가별 피부 특성과 기후, 소비 성향, 규제 기준이 모두 다른 만큼 현지 맞춤형 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 전략이다. 올해는 인도 영업법인을 본격적으로 가동했고 이탈리아 ODM 기업 케미노바 지분을 인수하며 유럽 생산 거점도 확보했다. 연구 인력도 지속해서 늘리고 있다. 현재 코스맥스 그룹의 연구개발 인력은 1100명이 넘는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 미국, 일본, 인도네시아, 태국 등 각국 연구소가 현지 소비자 취향에 맞는 제품을 개발한다.
이 같은 연구개발 능력을 쌓은 덕분에 코스맥스는 ‘속도’ 경쟁력을 갖췄다. 세계 시장에서 유행이 생기면 이를 분석해 제품으로 구현하는 시간이 결국 경쟁력이 된다는 것이다. 최근 뷰티 시장에서는 브랜드보다 제품력이 더 중요해지면서 ODM 기업이 사실상 상품기획자 역할까지 맡고 있다. 브랜드사가 시장 트렌드와 콘셉트를 제시하면 코스맥스는 원료 선정부터 제형 개발, 품질 검증, 대량 생산까지 전 과정을 책임진다. 세계 시장에서 ‘K-뷰티는 빠르다’라는 평가를 받는 배경에도 이러한 ODM 생태계가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강 원장은 “글로벌 브랜드들은 제품 하나를 출시하는 데 2년 가까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라며 “시장 조사를 철저히 하는 장점은 있지만,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는 K-뷰티 시장에서는 속도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코스맥스는 그보다 훨씬 짧은 기간 안에 고객사가 원하는 제품을 구현해 낸다”며 “빠르게, 그리고 과감하게 시장이 원하는 제품을 내놓는 것이 가장 큰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마이크로바이옴’ 기술 세계 최고…신제품 8000여개 생산
코스맥스는 이처럼 30여년간 키운 연구·개발력을 기반으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연구개발 인력만 1100명에 달한다. 쿠션파운데이션, CC크림, 젤타입 아이라이너, 립틴트, 4중 기능성 화장품 등 연간 신제품 8000여개의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코스맥스가 가장 내세우는 기술은 ‘마이크로바이옴’ 분야다. 2019년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바이옴 화장품 상용화에 성공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쉽게 말해 유산균과 같은 개념이다. 유산균이 인체 면역력을 높여주는 것처럼 피부 미생물도 같은 기능을 한다. 코스맥스는 특정 미생물과 피부세포를 같이 배양했더니 피부에 좋은 인자들이 나오는 걸 규명하고, 이를 활용한 소재를 개발하고 화장품에 탑재하기 시작했다. 마이크로바이옴 기술력을 통해 만들어내는 여러 유용한 성분들은 피붓결 개선, 주름 개선 등에 도움을 준다.
연구 성과는 외부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코스맥스는 지난해 세계화장품학회(IFSCC)에서 한국 기업 최초로 기초연구 부문 본상을 수상했다. 세계 최초로 모낭 오가노이드를 활용해 스트레스에 따른 새치 발생 메커니즘을 규명한 연구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IFSCC는 화장품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회로 꼽히는 만큼 기술력을 객관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가 크다. 코스맥스는 현재까지 국내외 특허 2000여건을 출원하고 800여건을 등록했으며, 피부 마이크로바이옴과 바이오 소재 분야를 중심으로 연구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뷰티업계에서도 화두인 인공지능(AI) 기술 연구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코스맥스는 2021년 판교 R&I센터에 AI 연구소를 개설하고, 기초·색조·향료 등 카테고리별로 AI 기술을 순차 이식해 왔다. 기초 부문에서는 ‘텍스처 표준 측정 기술’을 확보했다. 사람의 개입 없이 사용감을 정량화할 수 있어 소비자 피부 유형별 처방 설계에 직접 활용된다. 색조 분야에서는 색상값을 데이터로 변환해 처방 초기 단계부터 최종 색상을 예측하는 색조 부문에서는 ‘스마트 조색 AI 시스템’을 구축했다. 8600여 종의 분자-향기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자 구조만으로 향취를 예측하는 ‘AI 향기 예측 알고리즘’도 자체 개발했다.
강 원장은 “세계 최고의 브랜드와 함께 일하려면 연구소도 세계 최고 수준이어야 한다”며 “매출과 생산량뿐 아니라 논문과 특허, 기초 연구 성과까지 인정받는 세계 1등 연구소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부애리 기자
b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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