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엔 세종공장 물류창고. 어른키의 수배가 넘는 거대한 하이렉 선반에서 정확히 필요한 양 만큼의 책을 꺼내 묶는 집책 작업은 생각보다 높은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미래엔 세종공장은 이 문제를 AI 자동화로 해결키로 했다. 도입은 약 1년 후인 내년 이맘때로 예상하고 있다. 집책 작업을 하던 직원은 다른 부서로 전근 된다. [홍석희 기자]
미래엔 세종공장 물류창고. 어른키의 수배가 넘는 거대한 하이렉 선반에서 정확히 필요한 양 만큼의 책을 꺼내 묶는 집책 작업은 생각보다 높은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미래엔 세종공장은 이 문제를 AI 자동화로 해결키로 했다. 도입은 약 1년 후인 내년 이맘때로 예상하고 있다. 집책 작업을 하던 직원은 다른 부서로 전근 된다. [홍석희 기자]

국내 최대 단일 교과서 공장, 스마트공장 2단계 진입 추진

사람이 끌던 집책·포장, 자율주행 로봇이 대체하도록 설계

야간근무 없애는 ‘담보제’…최근 설비에만 100억 투자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내판리. 경부선 철길과 나란히 뻗은 부지 7만3000평의 미래엔 세종공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왼편에 서 있는 ‘교과서박물관’이었다. 2층에 건평 300평이 안돼 보이는 건물이었지만 고풍스러운 인상이었다. 두번째로 눈에 띄는 것은 ‘공장’ 같지 않은 넓디 넓은 축구장이었다. 손종천 세종공장 공장장은 “저희 공장 와보니 인상이 다른 공장들과는 좀 다르지요?”라고 말했다. 공장 전면에 국제 규격 규모의 천연 잔디 축구장을 갖춘 공장은 많지 않다.

한 때 550명이 일하던 세종공장에서 근무하는 현재의 인원은 150명이다. 그런데도 생산 능력은 오히려 늘었다. 그 간극을 메운 것이 ‘자동화’이고, 지금 이 공장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는 목표가 ‘AI’다. 이 공장이 정부 스마트공장 지원사업에 참여한 것은 2021년부터다. 생산관리시스템(MES)과 공정 모니터링 시스템(POP)을 도입한 1단계 사업으로, 시간당 생산량은 8.7% 늘고 기록 관리 업무 시간은 83.3% 단축됐다. 미래엔 세종공장은 2024년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스마트공장 우수사례’로 선정돼 공로상을 받았다.

미래엔 세종공장에 설치된 로봇팔 [홍석희 기자]
미래엔 세종공장에 설치된 로봇팔 [홍석희 기자]
미래엔 최근 연도별 매출 및 영업손익
미래엔 최근 연도별 매출 및 영업손익

▶올해 AI 2단계 격상… 정부 지원 사업자로 선정=올해 목표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 ‘AI 2단계’ 승격이다. 핵심은 물류 자동화다. 교과서는 한 번에 대량으로 찍어 전국 100여 곳 공급소로 내보내면 되지만, 참고서 등은 주문에 맞춰 소량씩 책을 골라 묶는 ‘집책’ 과정을 거친다. 지금까지 이 작업은 사람의 몫이었다. 작업자가 주문서를 받아 창고를 돌며 대차를 끌고 책을 찾아 실은 뒤, 밴딩하고 포장해 총판·서점으로 보내는 방식이었다. 이 작업은 보기엔 단순하나 매우 높은 전문성이 요구 되는 작업이다.

현장 관계자는 “인쇄 연도, 판본 등으로 수천가지나 되는 책들 가운데 필요한 책만을 필요한 양만큼 정확히 골라 이를 분류하는 작업은 수년간 해온 전문성이 없으면 하기 힘든 작업”이라며 “이 부분을 해소 하는 것이 가장 우선 진행돼야 할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작업을 하시던 분들은 어디로 가시게 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현장 관계자는 “미래엔은 사람을 자르지 않는 회사로 유명하다. 그분들은 다른 곳으로 배치된다. 기계가 할 일과 사람이 할일을 구분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도입예정인 것은 자율주행 소형 물류로봇이다. 관계자가 보여준 시뮬레이션 영상에선, 로봇이 작업 지시를 받으면 스스로 위치를 찾아가 로봇 팔로 책을 꺼내 담아 돌아왔다. 관계자는 “사람이 바코드로 위치를 찾아 일하던 방식은 숙련자가 아니면 오히려 더뎠다”며 “신입이 늘수록 힘들어지는 구조여서 아예 로봇이 집책과 포장을 하도록 설계를 크게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사업비는 정부 지원금 16억여원에 미래엔 측이 일부 투자를 더해 진행된다.

인쇄 라인에서는 컨베이어를 따라 초등 영어 교과서 낱장이 쉼 없이 흘러갔다. 눈에 띄는 것은 곳곳에 달린 카메라와 감지 장치였다. 관계자는 “우리에겐 ‘불량률’이라는 용어 자체가 없다”고 했다. 정본을 스캔해 둔 카메라가 작업 중인 인쇄물과 실시간으로 대조해 페이지가 바뀌거나 뒤집힌 것을 걸러내고, 이후 공정에서는 중량 감지기가 이를 걸러낸다.

현장 관계자는 “단 한 장의 종이만 더 들어가더라도 기계가 무게를 체크해 이를 오판본으로 인식한다. 무게로 치면 0.01그램 정도의 차이지만 이를 걸러낸다”고 말했다. 하루 최대 30만부, 성수기엔 40만부가 쏟아지는 규모의 공장에서 이런 다중 안전장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설명도 있었다.

미래엔 세종공장에서 인쇄되고 있는 참고서 [미래엔]
미래엔 세종공장에서 인쇄되고 있는 참고서 [미래엔]

▶항바이러스·무습수, 남들이 안 하는 인쇄=기술 측면에서 미래엔 세종공장이 내세우는 차별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항바이러스 인쇄다. 항바이러스 물질을 지면에 고르게 도포하는 방식으로, 특히 책을 입에 대는 습관이 있는 초등 저학년 교과서에 적용된다. 관계자는 “코로나19를 계기로 니즈가 시작됐고, 물질을 지면에 고르게 입히는 기술을 1년 넘게 시험해 특허를 취득했다”고 말했다. 다른 하나는 물을 쓰지 않는 무습수 인쇄다. 인쇄 과정에서 습수액에 들어가는 알코올·톨루엔 같은 유기용제를 배제한 방식으로, 이른바 ‘새 책 증후군’ 논란 당시 유해물질이 검출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는 게 회사 설명이다.

이 공장은 수능 시험지도 찍는다. 관계자는 “1986년부터 수능·모의고사 등 시험지를 생산하고 있다”며 “보안구역에서 평가원과 보안요원이 상주해 작업한다”고 했다. 취재 당시에도 공장 한켠 보안구역에선 9월 모의고사 인쇄가 진행 중이었다.

교과서 산업은 구조적 역풍을 맞고 있다. 학령인구가 빠르게 줄고, 디지털 전환 압력도 크다.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한 AI 디지털교과서는 2025년 3월 초3·4학년과 중1, 고1의 영어·수학·정보 교과에 처음 도입됐지만,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여당이 이를 교육자료로 격하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사실상 후퇴했다. 감사원도 2025년 12월 시범운영 없이 부실하게 도입됐다고 지적했다. 종이 교과서의 수명이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관계자는 “종이 교과서는 디지털이 확산돼도 살아남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AI 교과서 개발도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사업으로는 종이 포장 분야를 키우고 있다. 그는 “인쇄 시장은 축소되지만 K뷰티·K푸드 확산으로 종이 패키징 시장은 계속 커지고 있다”고 했다.

공장 안쪽에는 회사의 이력이 응축된 공간도 있었다. 특허와 인증서를 나란히 전시한 ‘미래엔, 혁신을 이끌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고, 공장 전체를 축소한 정교한 모형도 공장을 방문한 사람을 처음으로 맞이하는 조형물이다.

직원 복지도 고령화에 맞췄다. 간호사가 상주하는 힐링센터를 운영해 건강검진 결과에 따른 사후 관리를 챙기고, 사내 스크린골프장도 열었다. 대부분 성남 시절부터 근무한 직원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이 공장에서, 복지는 인력을 붙잡는 현실적 수단이기도 하다.

미래엔 세종공장 1층 눈에 잘 띄는 현장에 부품자재창고가 설비돼 있다. 이 곳에는 공장 설비에 필요한 거의 모든 부품들이 빼곡하게 그리고 잘 정리 정돈 돼 있었다. 이는 수리 시간을 단축하는 필수 노하우다. 손종천 공장장은 부품창고를 만드는데에만 7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홍석희 기자]
미래엔 세종공장 1층 눈에 잘 띄는 현장에 부품자재창고가 설비돼 있다. 이 곳에는 공장 설비에 필요한 거의 모든 부품들이 빼곡하게 그리고 잘 정리 정돈 돼 있었다. 이는 수리 시간을 단축하는 필수 노하우다. 손종천 공장장은 부품창고를 만드는데에만 7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홍석희 기자]
미래엔 주요 연혁
미래엔 주요 연혁

▶한국 최대 교과서 생산공장의 비밀…부품자재창고=미래엔 세종공장에는 부품 자재 창고가 1층 핵심부에 설치돼 있다. 이곳엔 공장에 설치돼 있는 모든 기계 설비들이 고장 났을 때 즉각 사용할 수 있는 교환용 부품이 빼곡하게 전시돼 있다. 분류도 엄정하게 돼있다. 완성된 부품창고는 겉만 봤을 땐 ‘잘 정리해 놨네’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창고를 만드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작업이다. 업력이 70년이나 된 공장은 오래전에 설치된 설비와 현대식 설비가 함께 설치돼 있는데 그때 그때 필요 부품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이를 정리 하는 것은 찾는 것 보다 더 어려운 일이기 일쑤다.

손 공장장은 “부품 자재창고에 들어와 있는 부품들 가격만 해도 다 합하면 20억원을 될 것이다. 이것을 정리하는 데에만 꼬박 7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기자가 돌아본 대부분의 공장은 부품과 자재는 창고 같은 곳에 보관된다. 설비가 정상 작동할 땐 필요 없지만 고장이 나거나 섰을 때엔 즉시 인력이 투입돼야 한다. 공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인데, 설비가 멈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손실(로스)가 누적되는 것이다.

손 공장장은 “부품 자재는 공장에서 가장 후미진 아무도 모르는 곳에 방치되기 일쑤였다. 문제는 부품이 있어도 찾지를 못하면 다시 사야 하고 그러려면 시간이 또 차일피일 미뤄진다. 기계는 서있고 부품만 기다리게 된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아예 공장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차례차례 다 쌓아놨다. 과거엔 이걸 개인이 다 관리를 했었는데 못찾는 게 많았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다녀본 공장들 가운데 부품자재창고를 공장 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둔 곳은 미래엔이 유일했다.

세종공장 현장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을 하나만 꼽자면 창업정신이다. 미래엔의 창립자 김기오 선생은 ‘창업 정신’으로 “최우량 교과서를 최저 가격으로 최단 시일에 생산 공급한다”고 썼다. 미래엔의 창업정신 ‘최단 시일 공급’을 가능케 하는 장치 가운데엔 ‘부품자재창고’를 후미진 창고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끌어올린 것 역시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생각됐다.

미래엔 창업자 김기오 선생이 남긴 ‘창업정신’. 1948년에 창립된 미래엔은 한국전쟁이 진행되던 1950년에도 인쇄설비를 부산으로 가져가 교과서를 제작했다. 전쟁이 일어났더라도 아이들 교육은 반드시 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전쟁 중에도 교과서를 찍어낼 수 있었던 배경이다. [홍석희 기자]
미래엔 창업자 김기오 선생이 남긴 ‘창업정신’. 1948년에 창립된 미래엔은 한국전쟁이 진행되던 1950년에도 인쇄설비를 부산으로 가져가 교과서를 제작했다. 전쟁이 일어났더라도 아이들 교육은 반드시 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전쟁 중에도 교과서를 찍어낼 수 있었던 배경이다. [홍석희 기자]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마친 손종천 공장장이 미래엔 세종공장에 세워진 ‘미래엔’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홍석희 기자]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마친 손종천 공장장이 미래엔 세종공장에 세워진 ‘미래엔’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홍석희 기자]
그회사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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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