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戰 고립후 국제 위상회복 추진

뒤에선 이란 초음속 순항미사일 ‘멘토’

올여름까지 계속된 ‘이중 행보’ 논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이후 국제사회의 강도 높은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발판 삼아 ‘정상 국가’로의 전환을 노리는 와중에도, 미국의 적국인 이란의 전략 미사일 개발을 비밀리에 적극 지원하는 등 이중적인 행보를 이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1일(현지시간) 러시아가 ‘C430L’이라는 이름의 비밀 프로그램을 가동해 이란의 첨단 초음속 순항 미사일 개발을 지원해 왔다고 보도했다. FT는 러시아에서 유출된 서신과 관계자들의 여행 기록 및 군사 특허 분석 등을 통해 이 같은 정황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C430L 프로그램은 이란이 램제트 추진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도록 기술을 지원하는 것이다. 램제트 추진 시스템은 순항 미사일이 음속의 몇 배 속도로 비행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엔진이다. 영국의 무기 추적기관인 분쟁군비연구소의 수석 분석가 파비안 힌츠는 “이는 이란인들이 수십 년 동안 획득하려 했던, 전략적으로 매우 민감한 군사기술”이라며 “해당 기술이 러시아로부터 이전된 것으로 보이며, 이는 러시아 최고위층의 정치적 승인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이라 말했다.

이란의 초음속 순항 미사일 개발을 돕는 이 프로젝트는 러시아의 국영 무기 수출업체인 로소보론엑스포르트가 주선했고, 국영 방산업체인 NPO마쉬노스트로예니아 등이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NPO마쉬노스트로예니아는 지난해까지 이란의 엔지니어들과 서신을 주고받으면서 연료 시스템, 연소 안정성, 공기 흡입구 및 엔진 노즐 변경사항 등에 대해 노하우를 전수했다. 램제트 추진 시스템 전문가인 설계 부서장 등 엔지니어들이 수차례 테헤란을 방문하기도 했다. 로소보론에스포르트는 지난해 24명의 엔지니어를 이란에 직접 보내 상황을 점검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지난 6월에도 로소보론엑스포르트는 이란에 서한을 보내 다음 단계 작업을 논의했다.

해당 미사일이 실전 배치됐다는 증거는 아직 없지만, 이란은 램제트 추진 시스템 제작에 성공했고 비행테스트를 마쳤다고 전해진다. 전 미 중앙정보국(CIA) 소속 이란 담당 군사분석가인 짐 램슨은 “이같은 미사일은 걸프 해역을 지키고 있는 미 해군 함정을 위협할 수 있는, 질적으로 새로운 전략 무기”라고 분석했다.

FT는 러시아의 이란 미사일 개발 지원 프로그램이 올여름까지 계속됐다고 보도했다. 최근 러시아가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힘입어 국제사회에서 정상 국가의 지위를 회복하려는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감안하면, 이중적 행보라 할 수 있다.

러시아는 1일 막을 연 G20 재무장관 회의에 미국의 초청을 받아 안톤 실루아노프 재무장관이 참석했다.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3자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며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

최근까지 이어진 러시아의 이중적 행보에 대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란 전쟁으로 확대하고, 미국을 이에 끌어들이려는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파리 시앙스포대 교수인 니콜 그라예프스키는 이 비밀 램제트 프로그램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확대하고 미국을 다른 전구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면서 “러시아는 이 지역(이란 전쟁)의 레드라인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도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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