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반니 도메니코 티에폴로, 트로이로 향하는 트로이 목마 행렬(일부 확대), 1760년경, 캔버스에 유채, 39x67cm, 내셔널 갤러리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조반니 도메니코 티에폴로, 트로이로 향하는 트로이 목마 행렬(일부 확대), 1760년경, 캔버스에 유채, 39x67cm, 내셔널 갤러리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219. 신화편

아킬레우스도, 大아이아스도 죽었다

트로이 성벽은 여전히 높고 견고했다

어느덧 주인공이 된 오디세우스의 꾀

그리스 연합군이 남긴 ‘목마’의 정체

편집자 주

그리스 로마 신화를 〈후암동 미술관〉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보듯 감상하세요. 기사는 여러 참고 문헌 기반에 흐름상 약간의 변형·생략, 일부 상상력을 더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쓰였습니다. ■기자 구독■을 누르시면 매 주말 풍성한 미술 이야기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좋아요’와 댓글은 콘텐츠 제작과 유통에 큰 힘이 됩니다.

※다시 인사드립니다. 가장 먼저 하고 싶던 이야기, 가장 마무리하고 싶던 시리즈로 찾아갑니다. 이번 기사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오디세이》가 다루는 내용의 직전 상황을 다루기도 합니다.

◆지난 이야기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군이 맞붙은 트로이 전쟁도 어느덧 10년째.

 

그리스 연합군의 최고 영웅 아킬레우스와 트로이군 총사령관 헥토르가 일대일로 맞붙는다. 결과는 아킬레우스의 승리.

 

트로이 왕이자 헥토르의 아버지인 프리아모스는 깊이 슬퍼한다.

 

늦은 밤 아킬레우스가 있는 천막을 몰래 찾은 그는 시신만이라도 돌려달라고 눈물로 호소한다. 아킬레우스는 그 모습에 감동해 부탁을 들어준다. 다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당신子 내가 죽였는데” 父는 살인귀 손에 입을 맞췄다…둘다 펑펑 운 사연(2025. 3. 3. 기사 참고)>

목마만 덩그러니…

트로이는 축배를 들었다

조반니 도메니코 티에폴로, 트로이로 향하는 트로이 목마 행렬, 1760년경, 캔버스에 유채, 39x67cm, 내셔널 갤러리[Web Gallery of Art,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조반니 도메니코 티에폴로, 트로이로 향하는 트로이 목마 행렬, 1760년경, 캔버스에 유채, 39x67cm, 내셔널 갤러리[Web Gallery of Art,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

“이것은 무엇인가?”

“신에게 바치는 목마입니다.”

 

“어떤 신을 위한 것인가?”

“아테나 여신에게, 우리 군의 무사 귀환을 바라며 바쳤습니다.”

 

“이토록 크게 만든 이유가 있는가?”

“예언자 칼카스는 트로이군에게 이 목마를 빼앗기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트로이 성문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거대하게 만든 겁니다.”

 

“자네 이름은?”

“시논… 시논입니다. 그리스 연합군의 오디세우스 밑에 있었습니다. 그의 미움을 샀기에 이곳에 남겨졌습니다.”

놈의 말을 전부 믿어야 하는가.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트로이를 노린 그리스 연합군의 배와 군사가 흔적 없이 사라진 일. 이것만큼은 확실했다. 전쟁도 어느덧 10년 차였다. 양측 다 지쳐 있었다. 수많은 영웅이 죽었다. 이보다도 훨씬 많은 병사가 숨졌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도, 트로이 성만은 변함없이 높았다.

그래. 그렇다면…. 물론, 그리스 연합군에는 아직 역전의 용사가 여럿 남아 있었다. 하지만 사기는 나날이 떨어져 바닥을 기었을 것이다. 반란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을 터였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야반도주하듯 꽁무니를 빼지 않았을까. 돌아가야 하는 먼 길, 신의 가호를 염원하는 제물만 둔 채로. “트로이인이여, 이 목마를 불태우십시오. 상대는 그리스인입니다. 그들이라면 선물을 들었다고 해도 경계해야 합니다.” 분위기가 풀어지려는 그때, 누군가 다급히 외쳤다. 모두가 목마를 전리품으로 챙기자는 쪽으로 뜻을 모으는 와중이었다. 그는 트로이 신관 라오콘이었다. 이 노인은 직접 창까지 쥐었다. 목마의 복부를 향해 보란 듯 이를 찔러넣기까지 했다. 그러자 빈속이 울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언뜻 인간의 신음처럼 들리기도 했다. “보십시오. 무언가 수상합…” 그런데 이 순간,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웬 거대한 물뱀 두 마리가 바다에서 올라왔다. 놈들은 망설임 없이 라오콘과 그의 두 아들을 덮쳤다. 몸을 칭칭 감은 후 독기를 내뿜었다. 셋은 어떻게 할 틈도 없이 숨이 막혀 사망했다. “신이 신성한 목마를 해한 라오콘을 응징했다!” 그러자 인파 틈에서 이러한 함성이 나올 수밖에.

조제프 드니 오드바에르, 트로이 목마의 입성, 종이에 흑연 등, 66.4x102cm [christies.com,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조제프 드니 오드바에르, 트로이 목마의 입성, 종이에 흑연 등, 66.4x102cm [christies.com,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트로이를 지키고 떠난 전사, 헥토르를 위하여!”

이날 밤 트로이인들은 광장과 골목, 집과 식당 등 모든 곳에서 축제를 벌였다. 술통은 굴러다니다 못해 두둥실 떠다니는 듯보였다. 이들은 잔을 맞대며 트로이 최고 영웅 헥토르를 기렸다. 물론, 그만큼 그리스 연합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은 거듭 조롱했다. 그들 편에 선 괴력 장수였던 메넬라오스 디오메데스를 야유하고, 특히나 온갖 술수로 조국을 괴롭혔던 오디세우스를 저주했다. 힘겹게 끌고 온 목마는 도시 한가운데 단상에 올렸다. 이를 챙겨오기 위해 성문 일부를 헐긴 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앞으로는 평화의 시대가 올 터였다. 사실 트로이인들은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리라고 믿고 있었다. 결정적 계기가 있었다. 그것은 그리스 연합군이 품었던 최악의 악몽, 반인반신 아킬레우스의 죽음이었다. 압도적 무력의 아킬레우스가 눈을 감았다는 소식. 트로이 사람들은 그날에도 축배를 들었었다. 이후로는 전쟁과 상관없이 보다 편하게 밤잠을 이뤘다. 성문이 뚫릴 걱정도, 성벽이 무너질 염려도 접어둘 수 있었다. 즉, 이들이 목마에 대한 경계심을 푼 결정적 계기는 시논의 증언도, 거대 뱀의 등장 따위도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믿음이었다. 트로이 전쟁은 10년의 인내심 싸움이었다. 우리는 그 시간을 버텼다는 믿음, 그들은 버티지 않았다는 믿음, 더 정확히는, 아킬레우스가 없는 그들은 차마 버틸 수 없었으리라는 믿음.

‘아킬레스건’ 뚫리다

영웅의 헛되고 어이없는 죽음

페테르 파울 루벤스, 아킬레우스의 죽음, 1635년경, 캔버스에 유채, 107.1x109.2cm, 앙투안 자일레른 컬렉션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페테르 파울 루벤스, 아킬레우스의 죽음, 1635년경, 캔버스에 유채, 107.1x109.2cm, 앙투안 자일레른 컬렉션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몇몇 전승에 따르면 그리스 연합군의 가장 빛나는 별, 아킬레우스의 최후는 허무했다.

죽음을 맞이하기 얼마 전 아킬레우스는 트로이의 한 행사를 본 적이 있었다. 그것은 자기 손으로 죽인 트로이군 총사령관 헥토르의 장례식이었다. 둘도 없는 친구 파트로클로스를 죽였던 헥토르에 대한 원한이야 여전했다. 다만 신과 가족, 병사와 국민 모두가 그를 아끼고 사랑했던 점을 알고선 놀라기도 했다. 이는 아무리 원수라고 해도 존경할 만한 부분이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최소한의 예를 갖춘 것이었다.

그날 아킬레우스는 우연히 여인을 봤다.

그녀헥토르의 관을 끌어안고 울고 있었다. 헥토르의 여동생 중 한 명, 폴릭세네였다. 아킬레우스의 몸에 전율이 일었다. 눈치 없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감정은 사랑이었다. 끝내 아킬레우스는 몰래 폴릭세네의 뒤뜰을 찾기에 이르렀다. 그뿐인가. “평생 내 손을 잡는다면, 내가 직접 트로이에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약속까지 했다. “우리, 아폴론 신전에서 다시 봐요. 그곳에서 다시 맹세해주세요.” 폴릭세네는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말했다.

그리고 얼마 후, 설렘을 안고 신전으로 온 아킬레우스를 기다린 건… 폴릭세네가 아닌, 그녀의 또 다른 친오빠 파리스였다. 활잡이 파리스는 아킬레우스의 약점을 알고 있었다. 발뒤꿈치 바로 밑, 일명 ‘아킬레스건’이었다. 이는 헥토르를 아꼈던 태양의 신 아폴론이 직접 알려준 내용이었다. 사실 폴릭세네는 아킬레우스에게 조금의 마음도 없었다. 폴릭세네 눈에 이 남자는 그녀가 가장 존경했던 혈육, 헥토르를 죽이고 희롱한 살인마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파리스에게 자초지종을 말한 것이었다. 그가 곧장 암살을 준비할 수 있도록. 과연 명궁은 명궁이었다. 파리스가 쏜 독화살은 아킬레우스의 급소를 꿰뚫었다. 그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쓰러졌다.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아킬레우스의 근 10년 무용담을 되짚어보면, 놀라울 만큼 헛되고 어이없는 마지막이었다. 다만, 다른 전승을 보면 아폴론이 직접 활을 들고 아킬레우스를 죽였다는 설도 있다. 여기에는 대(大)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 등이 그의 시신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졌다는 이야기가 따라온다. 그런가 하면 폴릭세네는 진심으로 아킬레우스에게 호감을 느꼈지만, 이를 눈치챈 파리스가 자기 혼자 일을 치렀다는 말도 있긴 하다.

총사령관 헥토르는 물론,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 퀴크노스, 전쟁의 신 아레스를 아버지로 둔 아마존족 여왕 펜테실레이아,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낳은 에티오피아 왕 멤논 등 트로이 편의 일당백을 수없이 죽인 아킬레우스의 죽음. 이는 트로이의 왕족과 시민, 장수와 병사 모두가 염원한 소식이었다. “그리스 연합군은 이제 겁쟁이들밖에 없다!” 트로이 내 축제 분위기가 펼쳐질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아킬레우스 무장 놓고 다투다

‘2인자’ 大아이아스도 죽었다

아고스티노 마수치, 아킬레우스의 무장을 둘러싼 대(大)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의 다툼, 18세기경, 캔버스에 유채 [Artcurial Worldwide,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아고스티노 마수치, 아킬레우스의 무장을 둘러싼 대(大)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의 다툼, 18세기경, 캔버스에 유채 [Artcurial Worldwide,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이뿐인가.

그리스 연합군의 악재는 멈추지 않았다. 아킬레우스에 이어 이번에는 그에 버금가는 유일한 장수, 아이아스마저 잃고 만 것이다. 고대 아테네 시인 소포클레스의 비극 『아이아스』 등에 따르면 그리스 연합군은 숨진 아킬레우스의 무장을 누가 챙길지를 놓고 충돌한다. 좁혀진 후보는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 그러나 아이아스는 오디세우스의 말재간을 이기지 못한다. 결국 경쟁에서 지고 만다. 굴욕감에 젖은 그는 다른 장수들이 오디세우스 편만 들었다고 여겨 복수를 다짐한다. 계획은 간결하고, 잔혹했다.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 등 주요 지휘관을 직접 죽이기로 한 것이다. 그는 실제로 칼을 빼들었다. 아가멤논부터 뒤를 치고 암살하듯 날을 깊이 찔러넣었다. “나를 무시한 대가라오.” 끝으로 오디세우스의 진지까지 급습하려는 순간, 갑자기 다른 세상이 보였다. 눈을 비벼보니 그는 병영 내 동물 우리에 있었다. 뒤집어쓴 건 인간 아닌 양의 피였다. 사실, 모든 건 아테나가 심은 환각이었다. 실제로 그가 죽인 건 아가멤논이 아닌, 양 몇 마리가 전부였다. 뒤늦게 정신이 든 그는 수치심을 떨칠 수 없었다. 그대로 자결한 건 이 때문이었다. 트로이군 입장으로는 생각하지도 못한, 아킬레우스의 죽음과도 견줄 만한 기쁨이었다.

레오나르트 브라메르, 대(大)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의 갈등, 1625~1630년경, 구리판에 유채, 30.5x40cm, 프린센호프 국립 박물관[Web Gallery of Art,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레오나르트 브라메르, 대(大)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의 갈등, 1625~1630년경, 구리판에 유채, 30.5x40cm, 프린센호프 국립 박물관[Web Gallery of Art,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그리스 연합군은 근 10년간 아킬레우스와 아이아스를 앞세워 트로이 전쟁 내 근소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이제 이들이었다. 아가멤논은 그리스 연합군의 모든 장수와 병사를 불러 회의를 열었다. 전쟁을 이어가자는 의견과 당장 돌아갈 때라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붙었다. “제가 신에게 받은 예언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예언자 칼카스가 나섰다. 순간 침묵이 깔렸다. 그럴 만했다. 그의 말은 지금껏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으니. 칼카스는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 성을 점령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읊었다. 그것은….

아킬레우스의 아들,

헤라클레스의 제자를 데려오다

프랑수아-그자비에 파브르, 필록테테스에게서 헤라클레스의 화살을 빼앗는 네오프톨레모스와 오디세우스, 1800년경, 캔버스에 유채, 289x453cm, 몽펠리에 파브르 미술관[andrewhopkinsart.blogspot.ca,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프랑수아-그자비에 파브르, 필록테테스에게서 헤라클레스의 화살을 빼앗는 네오프톨레모스와 오디세우스, 1800년경, 캔버스에 유채, 289x453cm, 몽펠리에 파브르 미술관[andrewhopkinsart.blogspot.ca,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그러니까,

제가 그 전장에 가야 한다는 말인가요?

네오프톨레모스가 물었다. 오디세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아버지도 지키지 못한 당신들을 어떻게 믿을 수 있죠?” 네오프톨레모스가 따지듯 되물었다. 그는 아직 소년이었다. 변성기도 제대로 오지 않은 나이였다. 다만, 창검술과 전차 운전 실력은 이미 귀신 같았다. …과연 아킬레우스의 아들다운 미모와 재능이군. 이는 오디세우스의 혼잣말이었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직접 응징해야 하지 않겠나?” 오디세우스가 입을 열었다. “우리를 도우러 가는 게 아니라, 그들과 싸우러 간다고 생각해 주면 좋겠군.” 네오프톨레모스를 흔든 건 이 말이었다. 오디세우스는 분위기를 읽었다. 곧장 밀어붙였다. 아버지의 무장과 전공 모두 주겠다고 약속했다. 메넬라오스와 헬레네의 딸인 헤르미오네와의 결혼, 이에 따른 막대한 지참금까지 약속했다. 네오프톨레모스는 어느덧 오디세우스와 함께 배에 올라타 있었다.

피에르 카바넬, 렘노스 섬에 버려진 필록테테스, 캔버스에 유채, 154x244cm, 폴 발레리 미술관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피에르 카바넬, 렘노스 섬에 버려진 필록테테스, 캔버스에 유채, 154x244cm, 폴 발레리 미술관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잠시 자리를 비웠던 배는 다시 트로이 전쟁터로 향하고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돌아가는 도중 항해를 한 차례 멈췄다. 그곳은 렘노스 섬이었다. 거기에는 필록테테스가 있었다. 그는 영웅 중 영웅, 헤라클레스의 활과 화살을 직접 물려받은 장수였다. 필록테테스는 원래 그리스 연합군의 출정 당시 주력 궁사 중 한 명으로 존재감을 보였다. 다만 항해 도중 부상을 입었는데, 신체 부위가 썩으며 악취가 진동해 이 섬에 버려진 상황이었다(심지어 이는 오디세우스가 주도한 일이었다). 필록테테스 또한 처음에는 오디세우스의 합류 요청을 거부했다. 이곳에서 근 10년간을 외롭게 살았으니 당연히 그럴 법 했다. 하지만 그날 밤, 필록테테스가 떠받든 헤라클레스의 환영이 등장해 참전을 권했다. 이러니 마지못해 배에 탈 수밖에 없었다. 앞 세대 최고 영웅 헤라클레스의 제자. 그리고, 동시대 최고 영웅 아킬레우스의 아들. 그리스 연합군은 이처럼 걸출한 두 인물로 사기를 높일 수 있었다.

빈센초 자코멜리, 팔라디움을 숨겨 달아나는 디오메데스, 1839, 캔버스에 유채, 113x85cm,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Didier Descouens,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빈센초 자코멜리, 팔라디움을 숨겨 달아나는 디오메데스, 1839, 캔버스에 유채, 113x85cm,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Didier Descouens,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그런 한편,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는 트로이 성에 몰래 들어가 신물(神物) 팔라디온(아테나의 조각상)을 훔치는 데도 성공했다. 잠입 중 헬레네와 마주하는 아찔한 위기에 놓였지만, 그녀는 무슨 생각인지 앞장서 둘을 숨겨줬다. 그런 한편, 그리스 연합군은 따로 결사대를 꾸려 엘리스(지금의 피사로 추정)에서 펠롭스의 유해를 챙겨왔다. 펠롭스는 아가멤논의 할아버지뻘까지 올라가는 옛 인물이었다.

1. 펠롭스의 뼈를 갖고 오시오.

2. 아킬레우스의 아들을 데려오시오.

3. 헤라클레스의 활과 화살을 챙겨 오시오.

4. 트로이에 있는 팔라디온을 들고 오시오.

5. 트로이 성곽 대문의 천장을 파괴하시오.

예언자 칼카스가 내건 그리스 연합군의 승리 조건은 이것이었다. 이 퍼즐을 오디세우스 주도로 차곡차곡 맞춰간 것이었다.

일부 전승에 따르면 칼카스가 아닌 트로이 왕자 중 한 명인 헬레노스가 이를 예언했다고도 한다. 당시 헬레노스는 트로이 신관 일도 겸했는데, 그런 만큼 예언 능력도 출중했다고 한다. 오디세우스가 그를 우연히 성 밖에서 생포(파리스가 죽은 후 헬레네를 아내로 들일 우선순위를 놓고, 또 다른 형 데이포보스와 다투다 홧김에 뛰쳐나갔다는 설이 있다….)하고, 회유와 협박 끝에 이 내용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파리스마저 죽었지만…

트로이 성벽은 여전히 견고했다

크리스토프-토마 드조르주, 파리스의 치료를 거부하는 오이노네, 1816, 클레르몽페랑 로제키요 미술관 [Google,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크리스토프-토마 드조르주, 파리스의 치료를 거부하는 오이노네, 1816, 클레르몽페랑 로제키요 미술관 [Google,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이제 전장 속 주인공은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였다.

네오프톨레모스의 전차는 트로이군 진영을 유리창 깨듯 조각냈다. 아킬레우스의 환생처럼 보이기도 한 그는 새로운 공포이자 악몽이었다. 필록테테스의 화살도 빗나감이 없었다. 가장 큰 수확은 파리스의 목숨이었다. 필록테테스 대 파리스. 각 진영 최고의 활잡이가 맞붙은 대결이었다. 헤라클레스가 준 독화살은 인간의 살갗을 찢었지만, 인간이 빚은 청동 화살은 맥없이 허공만 가를 뿐이었다. 파리스의 몸에 독이 퍼졌다. 파리스는 헬레네를 만나기 전 함께 산 옛 아내를 떠올렸다. 오이노네. 그녀는 약초에 능한 님프이지 않은가. 파리스는 전장에서 빠져나왔다. 오이노네가 머무는 들판을 찾아 호소했다. “제발 이 상처를 해독해 달라”고. 오이노네는 거절했다. 언젠가 “상처를 입으면 찾아오라”고 한 건 맞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나를 잊지도 말고, 버리지도 않았을 때”에야 유효한 말이었다. …근 10년을 감감무소식이었는데, 이제서야? 파리스는 쫓겨났다. 그리고, 궁전으로 돌아가는 중 사망했다.

그리스 연합군의 기세가 세워진 창만큼 올랐다. 다만, 단지 그뿐이었다.

이보다도 더 높이 올라가 있는 게 있었다. 과거 포세이돈과 아폴론 등 신들이 직접 쌓아올렸다는 그것. 트로이의 모든 시민이 신만큼, 먼저 떠난 헥토르만큼 믿고 의지하는 그것. 하늘을 찌를 듯 위세를 자랑하는 트로이 성벽이었다. 다섯 가지 예언 중 이루지 못한 단 하나가 있었다. 이 또한 ‘트로이 성곽 대문의 천장을 파괴하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으며, 그들은 버틸 수 없으리라는 트로이인의 믿음. 이에 부응하려는 듯 성곽은 결코 부서지지도, 무너지지도 않았다. 성문을 걸어 잠근 트로이의 시간 끌기 전략. 10년간의 트로이 전쟁은 그렇게 트로이의 승리로 끝날 듯보였다. 오디세우스. 그리스 연합군에 이 사내가 없었다면. 그는 살아남은 이 중 가장 위험한 인물이었다. 아가멤논이나 메넬라오스, 네오프톨레모스나 필록테테스보다 더.

모든 것은 계획대로

오디세우스의 계략 통했다

조반니 도메니코 티에폴로, 트로이 목마의 건조, 1773~1774년경, 캔버스에 유채, 224.2x391.2cm,워즈워스 애서늄 미술관 [Wadsworth Atheneum,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조반니 도메니코 티에폴로, 트로이 목마의 건조, 1773~1774년경, 캔버스에 유채, 224.2x391.2cm,워즈워스 애서늄 미술관 [Wadsworth Atheneum,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동트기 직전 가장 깊은 새벽. “트로이가 이겼다”는 함성은 그제야 잦아들었다.

승리의 축배에 취한 트로이인 모두가 널브러져 잠을 청했다. 전쟁이 끝났다는 데 따른 기쁨, 적이 남긴 제물까지 들였다는 통쾌함이 도시의 감각을 마비시켰다.

그런데 그 순간, 작은 그림자가 은밀하게 움직였다. 이는 도시 한가운데 선 대형 목마 앞에서 멈췄다. 똑똑. 그가 겉면을 쳤다. 똑똑똑. 몇 초 후 재차 노크하듯 두드렸다. “…시논인가?” 쉰 소리가 들렸다. 이는 오디세우스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목마의 아랫배에서 울리고 있었다. “모두 잠들었습니다.” 시논이 말하자, 목마는 갑자기 지진대 위에 선 듯 흔들거렸다. 한가운데가 쩍하며 갈라지곤, 이내 밧줄 몇 가닥이 떨어졌다. 그런 뒤 목마가 줄줄이 쏟아내는 우락부락한 덩어리. 줄을 타고 내려오는 그것의 정체는 오디세우스였다. 메넬라오스와 디오메데스였다. 네오프톨레모스와 예언자 칼카스였다. 그리스 연합군이 추리고 추린, 20~30여명의 정예 군단이었다. 기어코 한 소대급의 병력이 완전 무장 차림으로 상륙한 것이었다. 난공불락과도 같던, 트로이 성곽의 천장은 목마의 머리로 허문 상황이었다.

앙리폴 모트, 트로이의 목마, 1874, 캔버스에 유채, 96x147cm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앙리폴 모트, 트로이의 목마, 1874, 캔버스에 유채, 96x147cm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사실, 모든 건 오디세우스의 계략이었다.

앞서 오디세우스는 그리스 연합군 내 손재주가 좋은 이들을 모았다. 이들을 시켜 대형 목마를 만들었다. 단단하지만 속은 텅 빈 기묘한 조형물이었다. 오디세우스는 본인을 포함, 가장 힘세고 날랜 장수를 추려 목마 안에 숨겼다. “하룻밤 새 도망친 척 병사를 모두 배에 태우십시오.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섬 뒤편에 매복한 후, 트로이 성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면 재상륙해 진격하십시오.” 오디세우스는 목마에 들어가기 전, 총사령관 아가멤논에게 이러한 당부를 했다. “저희가 어떻게든 성문을 열어보겠습니다.” 이 말과 함께였다. 끝으로 오디세우스는 그의 귀 밝은 사촌 시논을 불렀다. 이 왜소한 병사에게 목마를 만든 진짜 목적과 용도를 알렸다. 다만 일부 전승에 따르면 오디세우스는 시논을 완전히 믿지 못해 그 또한 속인 뒤 일부러 추방했다는 말도 있다. 시논이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으로 보고, 본인 스스로가 ‘보고 엿들었다’고 믿는 모든 것을 트로이군에 술술 풀어낼 수 있도록.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는 거짓인지도 모른 채로.

제우스의 법칙이 짓밟힌 날

인류는 불신사회를 맞이했다

후안 데 라 코르테, 트로이의 목마, 17세기경, 캔버스에 유채, 154x218cm, 프라도 미술관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후안 데 라 코르테, 트로이의 목마, 17세기경, 캔버스에 유채, 154x218cm, 프라도 미술관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그때 학살과 비극을 대체 무슨 수로 다 말하겠습니까.

 

우리가 겪은 고통을 어떤 눈물로 다 씻을 수 있겠습니까. 긴 세월 번영을 누린 유서 깊은 도시는 무너졌고, 길거리와 집안은 물론 신성한 신전 문턱에 이르기까지, 숨이 끊어진 수많은 시신이 곳곳에 널려 있었습니다.”

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 일부 발췌

밤과 잠, 꿈과 술 사이를 가르며 내달린 그리스 연합군의 정예 군단은 트로이 성문을 쉽게 열었다.

열린 문 앞에는 총사령관 아가멤논이 있었다. 미케네와 라케다이몬, 프티오티스와 이타카 등 그리스 연합군 소속 각 국가의 병사들 또한 빼곡하게 모여 있었다. 이들은 투구를 바로 썼다. 검을 뽑고, 창을 세웠다. 10년 세월의 한풀이를 하듯 짐승처럼 진격했다. 잡히는 모든 것을 베고, 찔렀다. 보이는 모든 것을 희롱하고, 불태웠다. 믿음이 깨진 그날 밤 트로이는, 트로이 성은, 트로이인은 무엇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죽었다. 힘없이 붙잡히고, 맥없이 도망쳤다. 그래. 차라리 단칼에 죽을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네오프톨레모스는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를 죽였다. 메넬라오스는 파리스가 죽은 후 헬레네의 새로운 남편이 된 데이포보스를 살해했다. 트로이의 수많은 왕자와 공주가 죽거나 붙잡혔다. 트로이의 옛 총사령관 헥토르의 어린 아들은 성벽 아래로 떨어졌다.

쥘 조제프 르페브르, 프리아모스의 죽음, 1861, 캔버스에 유채, 114x146cm [VladoubidoOodate,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쥘 조제프 르페브르, 프리아모스의 죽음, 1861, 캔버스에 유채, 114x146cm [VladoubidoOodate,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끝으로 인류가 지금껏 지켜온 제우스의 법칙, ‘낯선 이가 오면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는 식으로 축약할 수 있는 이 ‘크세니아(Xenia)’ 또한 완전히 짓밟히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는 포로 시논을 일찌감치 손님으로 받아들였다.

그에게 옷과 음식을 주고, 평생의 안전과 미래도 보장했다.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것은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접대의 관습으로 이어져 왔으니. 이제 이처럼 대접을 받았으면, 손님 또한 신의를 배신하지 말아야 했다. 이 또한 교육의 영역이라고 볼 수 없었다. 졸리면 잠을 자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듯 그저 당연한 수순이자 약속이었다. 그러나 시논은 이를 어겼다. 정확히는, 프리아모스가 시논을 손님으로 받아주는 일까지도 내다본 오디세우스가 시논을 사주해 이를 어기게끔 만들었다. 그렇게 인류는 말과 맹세를 더는 믿을 수 없는 불신 사회로 접어들었다. 또 다른 판도라의 항아리가 열린 셈이다.

물론, 10년 전 파리스 또한 메넬라오스의 환대를 등지고 헬레네의 손을 잡은 바 있다. 다만, 그때는 신의 ‘직접적인’ 개입이 있었으니 완전히 동일선상에 두기에는 무리가 있을 터였다.

『일리아스』에 이어,

『오디세이』로

루이 드 코레리·프란스 프랑켄 1세, 불타는 트로이를 탈출하는 아이네아스와 그의 가족, 1590~1610년경, 패널에 유채, 50x75cm [bonhams.com,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루이 드 코레리·프란스 프랑켄 1세, 불타는 트로이를 탈출하는 아이네아스와 그의 가족, 1590~1610년경, 패널에 유채, 50x75cm [bonhams.com,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기나긴 전쟁은 막을 내렸다.

헬레네는 메넬라오스에게 돌아갔다. 아가멤논은 트로이 공주 카산드라를, 네오프톨레모스는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를 포로로 차지했다. 이 밖에도 트로이 왕비 헤카베 등 살아남은 트로이인 상당수는 전리품이 돼 배로 끌려갈 운명이었다. 그리스 연합군은 돌아갈 채비를 했다. 몇몇 영웅은 남았지만, 대부분은 다시 배에 올라 출항에 나섰다. 그리고 익히 알려진 대로, 특히나 한 영웅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 또 10년이나 온갖 경험을 하게 된다. 파리스에서 헬레네, 헥토르에서 아킬레우스, 그리고 돌고 돌아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주인공 역할을 한 사내, 오디세우스. 애석하게도 그의 고생은 이제 시작이었다.

호메로스는 트로이 전쟁의 절정기를 담은 『일리아스』에 이어 오디세우스의 귀환 여정을 또 한 권의 이야기로 엮는다. 그것이 『오디세이』다.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참고 자료

호메로스, 일리아스, 숲

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 숲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을유문화사

스티븐 프라이, 스티븐 프라이의 그리스 신화 : 트로이 전쟁, 현암사

Sophocles, Aias, Legare Street Press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오디세우스와 세이렌들, 1891, 캔버스에 유채, 100.6x202cm, 빅토리아 국립 미술관 [Google Art Project Home,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오디세우스와 세이렌들, 1891, 캔버스에 유채, 100.6x202cm, 빅토리아 국립 미술관 [Google Art Project Home,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yul@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