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서 출생한 재일한국인 2세

1990년 일본야구 명예의전당 헌액

23년간 2752경기서 안타 ‘3085개’

韓야구발전 공로 무궁화장 등 수여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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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프로야구(NPB)의 전설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86세.

10일 TBS 등 일본 주요 언론에 따르면, 장훈은 전날 오후 5시쯤 일본 도쿄의 한 병원에서 숨졌다.

1940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재일한국인 2세로 태어난 고인은 어린 시절 원자폭탄 피폭을 경험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선수의 꿈을 키웠다. 다만 어릴 적 오른손을 크게 다쳐 왼손으로 공을 던지고 쳤다.

신장 1m81㎝의 당시로선 큰 키와 타고난 정확도를 앞세워 1959년 도에이 플라이어즈(현 니혼햄 파이터즈) 유니폼을 입고 데뷔했다.

입단과 함께 퍼시픽리그 신인상을 수상한 고인은 197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이후 롯데 오리온스를 거치면서 1981년까지 총 23시즌을 뛰었다.

그가 남긴 기록은 압도적이다. 은퇴하기 전까지 23년간 2752경기에서 타율 0.319 504홈런의 기록을 남겼다. 통산 경기와 타율은 역대 3위, 홈런은 7위다. 특히 3085개의 안타를 기록한 그는 일본 프로야구 사상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하게 일본 리그에서만 3000안타를 달성한 선수다.

1962년에는 퍼시픽리그 MVP를 수상하며 도에이의 첫 일본시리즈 우승에도 힘을 보탰다. 7차례 타격왕을 차지했으며, 1990년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은퇴 후에는 야구 해설가로서 거침없는 논평으로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칭을 얻는 등 선수 시절 못지않은 존재감을 보여줬다.

오타니 쇼헤이(32·LA 다저스)의 투타 겸업과 메이저리그 진출에도 끊임없이 쓴소리를 던져 한때 ‘오타니 저격수’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오타니가 부상했을 때는 “내가 좋아하는 선수이기 때문에 걱정된다”며 빠른 회복을 바라는 등 후배를 향한 애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고인은 일본 야구의 전설이었지만, 한국 야구와도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갔다. 현역 시절 여러 차례 일본 국적을 거절하고 오랫동안 한국인으로 남아 존경을 받았다. 다만 말년에 일본으로 최종 귀화했다.

또 한국 프로야구 발전에도 힘을 보탰다. 1983년 KBO 리그에 등장해 불멸의 한 시즌 30승을 작성한 장명부가 삼미 슈퍼스타즈 유니폼을 입은 것은 장훈의 주선이 있어 가능했다.

고인은 한국 야구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0년 대한민국 체육훈장 맹호장, 200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조용직 기자


yjc@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