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에 한 번쯤 마주하게 될 상속, 점점 늘어나는 장기부부 이혼. 우리 자산과 살림에 미치는 영향이 큰 이벤트들입니다. LG·SK·스마일게이트 등 세기의 소송전을 통해, 가족의 재구성이 자산에 미치는 영향을 짚어 봅니다. 내가 투자하는 기업의 경영이슈가 될 수도 있겠네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에서 55세 이상이 가진 자산이 110조달러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사상 최대 규모의 상속과 증여가 예정돼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도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자료에 따르면 상속재산분할 사건은 2014년 771건에서 2025년 3612건으로 약 4.7배가 됐다.

한국의 2025년 이혼은 8만8000건으로 전년보다 3.3% 감소했다. 그런데 부부 모두 60세 이상인 이혼이 1만3743건으로 전체의 15.6%를 차지했다. 특히 혼인기간 30년 이상 이혼이 전체의 17.7%로 가장 큰 집단이 됐다. 자산 축적기간이 긴 부부의 이혼 비중이 커지는 만큼 재산분할도 많아질 가능성이 높다.

가족이 재구성되면 그 영향은 자산에도 미친다. 일반 가정을 넘어 기업 단위로 가면 그 영향이 일반 투자자에게까지 미칠 수 있다. 남의 집안 일이 내 자산에 영향을 주는 이벤트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최근 기업인 집안의 굵직한 소송들이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세기의 이혼이라 불리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및 재산분할 소송, LG그룹 구광모 회장과 가족 간 상속분쟁 및 파양 소송, 그리고 게임업계 대부인 권혁빈 스마일게이트 창업자와 이화진 씨의 이혼 및 재산분할 소송 등이다.

*챗GPT의 도움으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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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의 출발 유언장 …상속재산분할협의는 꼼꼼히

LG그룹은 창업 이래 장자 승계가 이뤄졌고 집안의 결정에 따라 후계자에게 회사 지분을 모아줬다. 하지만 현행 법체계에서 후계자라고 해서 자동으로 전부 또는 더 많은 재산을 물려받는 것은 아니다. 물론 유언으로 후계자에게 지분을 집중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다른 상속인의 권리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배우자와 자녀에게는 유류분 청구권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 승계에서는 유언뿐 아니라 다른 상속인과의 조율, 생전 지분정리와 상속재원 마련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 많은 기업들이 사전 후계구도 구축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이런 점에서 LG그룹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04년 구광모 회장이 구본무 회장의 양자가 되면서 LG그룹 후계구도는 분명해졌다. 하지만 지분 이동은 이뤄지지 않았다. 구본무 회장은 법적으로 효력 있는 유언장을 남기지 않은 채 2018년 세상을 떠났다. 남은 직계가족들이 상속재산분할협의로 구본무 회장이 가진 ㈜LG 지분 11.28% 가운데 8.76%를 구 회장에게 배분했다.

상속재산분할협의는 공동상속인 전원이 동의하면 법정상속 비율과 다르게 재산을 나눌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다. 특정 상속인에게 기업 지분을 몰아주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상속이 개시되기 전에 이를 법적으로 확정해둘 수는 없다. 유언으로 기본 틀을 짜고 생전에 가족들과 충분히 조율해 두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그런데 2023년 구본무 회장의 부인인 김영식 여사와 두 딸이 상속재산분할협의에 문제가 있었다며 ‘상속재산을 법정비율대로 다시 나누자’며 상속회복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올 2월 1심 재판부는 상속재산분할협의서가 유효하게 작성됐고 기망행위도 없었다며 구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세 모녀는 항소했다. 최종 판단은 더 지켜봐야 하지만 현재 이 가족의 분열은 꽤 심각해 보인다.

유류분 청구권 막을 수 있는 상속권상실·파양 소송

2024년 김 여사는 구광모 회장을 상대로 파양 소송까지 냈다. 설령 김 여사가 구 회장과 파양하더라도 이미 성립한 구본무-구광모 부자관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문제는 김 여사가 보유한 ㈜LG 지분 4.37%다.

법적으로 모자관계가 유지되면 구 회장은 김 여사 재산의 상속인이 된다. 김 여사가 회사 지분을 두 친딸에게만 물려준다는 유언을 남기더라도 구 회장은 유류분을 청구해 자신의 몫에 해당하는 재산가액을 받을 수 있다. 유언이 상속의 방향을 정할 수는 있어도 상속인의 권리를 완전히 지워버릴 수는 없는 셈이다.

현행법에서 상속권을 없애는 대표적인 방법은 상속권 상실제도다. 양자의 경우 파양이라는 방법도 있다. 상속권 상실과 파양은 서로 다른 제도지만 부양의무의 중대한 위반이나 심히 부당한 대우 등 요구되는 사유에 겹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상속권 상실은 피상속인이 공정증서 유언으로 상속권 박탈 의사를 남기고 사후 유언집행자가 법원에 청구하는 방법도 있지만, 어느 경우든 법원의 판단이 필요하다.

관계가 사실상 파탄났더라도 법률상 관계를 끝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구광모 회장 입장에서는 파양되지 않아야 김 여사 재산에 대한 상속인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상속 분쟁으로 인화(人和)의 ㈜LG 지배구조 흔들까?

구광모 회장이 구본무 회장의 양자가 됐지만 친부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과의 부자관계에는 법적으로 영향이 없다. 일반입양은 친생 가족과의 친족관계를 끊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 회장은 구본능 회장의 재산에 대해서도 상속받을 권리를 갖는다.

구본능 회장에게는 재혼한 배우자와 그 사이에서 낳은 딸이 있다. 희성그룹 지분 등 다른 재산은 배우자나 딸에게 물려줄 수 있지만 LG가의 장자승계 전통을 감안하면, 그룹 경영권과 직결되는 ㈜LG 지분 3.17%는 이미 LG 총수가 된 친아들 구광모 회장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김 여사와 두 딸의 ㈜LG 지분은 8.15%다. 구광모-구본능 부자의 19.77%에 한참 못 미친다. 두 소송에서 모두 패하지 않는 한 구광모 회장의 경영권에 결정적인 영향이 생길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다만 김 여사와 두 딸이 현재의 특수관계인 공동보유 관계를 해소하고 독립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한다면 최대주주 측 지분율은 35% 안팎으로 낮아질 수 있다.

*챗GPT의 도움으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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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가사·양육, 장기혼인 재산분할 비율 높아

스마일게이트 권혁빈 창업자의 재산분할 건은 SK그룹 사례와 비교하면 이해가 더 쉽다.

최근 판결 흐름을 보면 장기간 혼인에서 배우자의 가사·양육 등 기여가 폭넓게 인정될 경우 3분의 1 이상의 분할비율이 인정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보인다.

최태원-노소영 소송은 분할비율이 약 67% 대 33%로 정해졌다. 노씨 측의 직접적인 경영기여가 인정되지 않았음에도 나온 숫자다. 권혁빈-이화진 소송의 1심 판결은 65% 대 35%다. 이씨 측의 창업 초기 역할과 가사·양육 등 기여가 인정됐지만 35%인 점이 눈길을 끈다.

참고로 미국에서도 헤지펀드 ‘투 시그마(Two Sigma)’ 공동창업자 존 오버덱과 부인 로라의 이혼재판이 현재 뉴저지에서 진행 중이다. 존 오버덱은 7억2300만달러에 합의할 것을 제안했지만 로라 측은 남편이 보유한 투 시그마 지분 가치가 약 62억달러라며 그중 35%, 약 21억7000만달러를 요구하고 있다. 두 사람은 2002년 결혼했고 세 자녀를 뒀다. 로라는 전업주부다.

분할비율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주식의 가치평가 시점이다. 재판상 이혼에서는 원칙적으로 사실심 변론종결 시점의 재산상태와 가액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

최태원-노소영 파기환송심에서는 이후 SK 주가가 크게 올랐지만 SK 주식가액은 2024년 4월 당시 항소심 변론종결일을 기준으로 산정됐다. 시장가격이 없는 비상장사는 재무제표를 기반으로 상속·증여세법상 평가와 현금흐름할인법(DCF) 등에 따라 기업가치를 평가한다. 그 해 실적과 재무상황이 어땠는지가 중요하다.

이혼 소송을 언제 시작하고, 그 소송이 언제 끝나느냐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만들 수 있다.

분할 받을 땐 실물자산 보다 현금정산이 유리

그런데 비율이나 평가시점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재산분할 방식이다.

최태원-노소영 소송에서는 현금분할이 선택됐다. 노씨 측이 현금을 요구했고 법원도 SK 주식이 경영권과 지배권의 근거라는 점 등을 고려해 현금으로 정산하도록 했다. 반면 권혁빈-이화진 소송 1심 재판부는 스마일게이트 주식 자체를 나누라고 판결했다. 스마일게이트가 비상장사라는 점도 중요한 차이다.

분할을 받는 쪽에서는 일반적으로 현금정산이 깔끔하다. 정상적인 이혼 재산분할 자체에는 원칙적으로 증여세나 양도소득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현금으로 재산분할금을 받으면 그 돈을 다시 처분할 필요도 없다.

반대로 현금을 지급해야 하는 사람은 상당한 비용을 부담할 수 있다. 최태원 회장이 노씨에게 9440억원을 지급하려면 보유 주식을 팔거나 배당 등으로 현금을 마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세금은 최 회장 몫이다. 일반 금융소득 종합과세 최고세율을 단순 적용해 배당만으로 세후 9440억원을 만들려면 세전으로 1조9000억원 가까운 배당소득이 필요하다. 주식을 판다면 매각대금 전체가 아니라 양도차익에 세금이 붙고 세율도 이보다 낮지만 역시 상당한 세금이 발생한다.

즉 현금분할은 받는 사람에게는 가장 깔끔한 방법이지만, 지급자에게는 가장 비싼 방법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주식을 현물로 받으면 당장은 거액의 세금을 부담하지 않지만 주식에 잠재된 세금까지 함께 넘겨받는 셈이 된다. 재산분할로 받은 자산을 나중에 처분할 때는 원칙적으로 분할해 준 배우자가 당초 그 자산을 취득한 가격을 기준으로 양도차익을 계산하기 때문이다.

이씨가 스마일게이트 주식을 받아 나중에 처분한다면 권 창업자가 해당 주식을 취득한 가격이 세금 계산의 출발점이 된다. 창업 당시 낮은 가격에 취득한 주식이라면 그동안 누적된 막대한 평가차익까지 따라오는 셈이다. 여기에 비상장주식은 당장 시장에서 팔기도 어렵다.

경영권 관련 지분이라면 주식으로도 받을만

다만 주식으로 받을 경우 경영권까지 확보할 수 있다면 계산은 달라진다.

이씨가 1심에서 요구했던 것도 스마일게이트 지분 50%였다. 청구의 근거는 자신도 공동창업자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법원이 현금이 아니라 주식 현물분할을 택하고 나니 50%라는 숫자의 경제적 의미는 더욱 커졌다.

35%도 정관 변경이나 합병 등 특별결의를 저지할 수 있는 강력한 지분이다. 하지만 50%라면 어느 한쪽도 독자적으로 회사를 지배하기 어려운 사실상의 공동지배 또는 교착구조가 된다. 제3자에게 지분을 팔 때의 협상력도 35% 소수지분과는 크게 다르다.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논의할 여지도 생긴다.

결국 가족의 재구성은 재산의 재구성이다. 기업을 가진 가족이라면 더 그렇다. 회사의 소유구조와 경영권, 일반 주주의 자산가치까지 움직이는 변수가 된다. 상속에서는 누구에게 어떤 재산을 넘길 것인지, 이혼에서는 공동으로 만든 재산을 얼마로 평가해 언제, 무엇으로 나눌 것인지가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가족관계는 끝나도 주주관계가 새로 시작될 수도 있다.


ky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