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企業=氣UP’으로 첫발…올해 10주년
코로나·공급망·반도체·AI 산업 변곡점마다 해법 모색
최태원·글로벌 석학·혁신기업 경영진 무대 올라
로봇·AI 콘텐츠 더해 포럼 문턱 낮춰
10년째 화두는 ‘추격자 넘어 세계시장 설계자로’
[헤럴드경제=정경수 기자] “수용자가 아닌 ‘설계자’로 변화 주도에 나설 때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2022년 헤럴드 기업포럼에서 한국 기업에 던진 주문이다. 남이 만든 시장과 질서를 따라가는 데 머물지 말고 한국 기업이 새로운 판을 짜는 주체가 돼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최 회장은 당시 “한국은 전세계를 리딩할 어젠다를 제시해서 주도해야 한다”며 “그냥 선진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를 리딩하는 선진국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우리 역할이 커져 새로운 룰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4년 뒤 10주년을 맞은 올해 헤럴드 기업포럼의 주제는 ‘비욘드 팔로어, 선도 경제로의 전환’이다. 지난 10년간 기업포럼이 짚어온 한국 산업의 고민이 응축된 주제다.
규제와 일자리 문제를 풀며 성장 기반을 다져온 한국 경제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코로나19를 거쳐 반도체·배터리·로봇·인공지능(AI)을 핵심 성장동력으로 키웠고, 이제는 피지컬 AI와 우주산업에서 세계 시장을 선도할 해법을 찾는 단계로 올라섰다.
산업을 리딩해야 한다는 화두는 AI 시대 국가 차원의 전략과 인프라 구축이라는 과제로 구체화됐고, 2026년 현재도 한국 산업의 성패를 가를 핵심 과제로 남아 있다.
‘企業’이자 ‘氣UP’…출발부터 주인공은 기업
한국 경제의 주인공은 언제나 기업이었다. 2017년 첫 포럼의 이름부터 ‘헤경 氣UP포럼’이었다. 기업(企業)과 같은 소리의 ‘氣UP’에는 기업의 기(氣)를 살려야 한국 경제도 힘을 낼 수 있다는 뜻을 담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였던 당시 포럼에서는 정부의 시장 개입과 규제, 노동시장, 일자리, 4차 산업혁명을 놓고 거침없는 주문이 쏟아졌다. 김동연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새 정부 경제정책은 기업과 함께해야 성공한다”고 강조했다. 2018년 포럼에서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한국 경제가 성장엔진을 바꿔야 하는 ‘역사적 전환점’에 놓였다”고 진단했다.
포럼은 기업에 듣기 좋은 말만 건네는 자리는 아니었다.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기업의 목소리와 시장 질서를 위한 정부 역할이 같은 무대에서 부딪혔고, 노동시장 개혁과 성과급, 미·중 통상갈등, 제조업 경쟁력 약화 같은 민감한 현안도 테이블 위에 올랐다. 2019년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했을 때에는 제조업 세대교체와 에너지 전환, 인구절벽까지 논의를 확장했다.
매년 주제는 달랐지만 한 가지 원칙은 이어졌다. 기업이 위기를 넘는 데 필요한 질문을 피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 색깔은 코로나19가 덮친 2020년 더 뚜렷해졌다. 사람들이 모이기조차 어려웠던 시기 포럼을 접는 대신 세계 석학과 기업인을 연결해 기업이 참고할 ‘좌표’를 제시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에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지낸 제이슨 퍼먼 하버드대 교수에게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정부와 기업의 대응’을 물었고, 토마 필리폰 뉴욕대 교수, 크리스토프 앙드레 OECD 한국경제 담당관, 에어비앤비의 마이크 오길 아시아태평양 정책총괄 등을 실시간으로 연결했다.
백악관 경제책사부터 NASA·美에너지장관까지
지난 10년 포럼의 무게는 연사들의 면면에서도 드러난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와 김동연 경제부총리, 이낙연 국무총리 등 국내 경제·정책 리더뿐 아니라 백악관 경제정책을 설계했던 제이슨 퍼먼, 미 항공우주국(NASA) 수석 테크놀로지스트 더글러스 테리어, 미국 에너지부 장관을 지낸 어니스트 모니즈가 차례로 헤럴드의 무대에 섰다.
산업의 최전선도 빠지지 않았다. 최태원 회장을 비롯해 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자동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등 주요 기업 경영진과 전문가, 보스턴다이나믹스와 미국 차세대 원전기업 테라파워 등 글로벌 혁신기업 인사들이 미래 산업의 방향을 제시했다.
그들이 던진 화두는 기업의 실제 고민과 맞닿아 있었다. 2020년에는 팬데믹과 언택트 경제, 2022년에는 반도체와 초거대 AI·AAM·로봇·우주·수소가 주요 의제로 등장했다. 생성형 AI가 세계를 뒤흔든 2023년에는 SK하이닉스가 포럼에서 AI 모델이 커질수록 메모리 용량과 대역폭이 중요해진다는 문제를 짚었다. 이듬해에는 설명가능한 AI(XAI) 분야의 권위자인 이수인 미국 워싱턴대 교수가 AI의 판단 과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신뢰할 수 있게 만들 것인지를 화두로 던졌다.
로봇 ‘스팟’ 춤추고, AI가 소설 쓰고…딱딱한 경제포럼 틀도 깼다
10년간 이어진 포럼의 또 다른 특징은 ‘경제포럼은 딱딱하다’는 공식을 깨왔다는 점이다.
2023년에는 행사장 대형 스크린이 ‘2030 부산세계박람회’ 응원 무대로 변신했다. 삼성과 SK, 현대자동차, LG 등 기업들이 제작한 부산엑스포 홍보 영상과 미디어아트가 상영됐고, 부산엑스포 시민 서포터즈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업들의 유치전에 힘을 보탰다. 산업 현안을 논의하는 포럼장이 기업과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응원장으로 변한 것이다.
2024년에는 기업 경영과 조금 멀어 보이는 ‘영화’와 ‘소설’도 무대에 올랐다. AI 영화 개척자로 꼽히는 권한슬 스튜디오 프리윌루전 대표가 K-콘텐츠와 AI의 결합을 소개했고, SK플래닛 CTO 출신인 전윤호 작가는 ‘ChatGPT는 베스트셀러 소설을 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대기업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사내벤처(CIC) 대표들도 한자리에 모였다. 기술 변화가 산업뿐 아니라 인간의 창작 영역을 어디까지 바꿀지 참가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세션이었다.
지난해에는 아예 로봇이 무대의 주인공이 됐다. 보스턴다이나믹스의 사족보행 로봇 ‘스팟’이 개막 공연에 깜짝 등장해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정통 산업 전문가뿐 아니라 데이터 전문가이자 작가인 송길영, 유튜브 ‘최성운의 사고실험’을 제작하는 최성운 프로듀서 등 대중과 산업을 연결하는 새로운 얼굴들도 연단에 섰다.
강연을 듣고 끝나는 행사가 아니라 보고, 묻고, 체험하는 자리로 포럼의 외연을 넓힌 것이다. 기업 관계자는 물론 대학생과 일반 참가자까지 포럼을 찾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올해 포럼에는 정은승 삼성전자 고문과 이재욱 서울대 AI연구원장을 시작으로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반도체 전문가들이 AI 시대의 기술 패권을 짚는다. 현대차·기아와 LG전자, 포스코홀딩스, 삼성SDI, HD현대는 피지컬 AI와 제조혁신을 논의하고, 마지막 시선은 우주 데이터센터와 K-뉴 스페이스까지 향한다.
kwat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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