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 약세·고유가·견조한 성장에
올해 4% 상승한 달러인덱스
고금리 기대에 달러 매력 커져
리스크 헤지보다 위험자산 투자에 방점
“AI 거품 꺼지면 달러도 흔들” 경고도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견조하게 버티는 미국 경제와 유가 상승, 인공지능(AI) 투자 붐 등이 맞물리면서 올해 달러 강세가 시장의 예상보다 오래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과거처럼 글로벌 위험회피(리스크 헤지) 수요 증가가 달러 강세를 이끄는 구조는 약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무엇보다 달러가 기존에는 포트폴리오에 안정성을 더해주는 리스크 헤지용 투자처였지만, 최근에는 회사채와 미국 주식 등 고금리를 바라는 위험자산이 됐다는 점에서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게 금융시장의 분석이다. 이에 AI 투자 붐이 꺼진다면 강달러 기조는 단번에 사그라들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5일(현지시간)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DXY)가 올해 들어 4% 상승했다고 전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4월 상호관세를 발표한 이후(이후 연방대법원 판결로 무효가 됨) 가장 높은 수준이다.
시장에서는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달러 약세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선 달러 흐름은 앞선 전망과는 정반대로 강세로 이어지고 있다.
그 배경에는 유로화 약세가 달러 강세를 부추긴 점이 있다.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유로화는 이날 아시아 외환시장에서 유로당 1.1161달러까지 떨어져 2025년 5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유로화는 최근 4주 연속 하락세다.
이 같은 유로존의 정치·재정 불안에 대한 우려가 커진 영향이 있다. ING 은행의 외환 전략 책임자인 크리스 터너는 “유로화 가치가 달러화 대비 하락하는 것은 (프랑스 등의) 재정적자로 인해 유로화에 대한 위험 프리미엄이 커지기 때문”이라면서 “유로화 하락세가 달러당 1.10달러까지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란 전쟁의 영향으로 에너지·운송·생산비용이 증가하는 현상도 달러에는 우호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란 전쟁에 따른 고유가는 결국 미국의 석유 산업에 호재로 작동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유가 상승이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에게 정치적 부담이지만, 반면 달러에는 오히려 강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더 견조한 성장세를 보이는 것도 달러 강세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지난달 30일 미 상무부는 올해 2분기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확정치가 2.2%(전기 대비 연율)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발표된 잠정치(1.5%) 대비 0.7%포인트 상향 조정된 것이며 시장 전망치(1.5%)도 웃돈 수치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연내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도 미 국채를 비롯한 이자 지급형 미국 자산의 투자 매력을 높이고 있다. 외국인이 미국 주식이나 채권을 사려면 먼저 달러로 바꿔야 하는 만큼, 미국 자산 매수는 곧 달러 수요로 이어진다.
실제로 지난 1년간 외국인은 미국 회사채를 4500억달러 순매수, 20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설명했다. 미 주식·펀드는 2021년 전고점을 80% 상회하는 9000억달러어치나 쓸어 담았다. 초대형 위험자산 수급 쏠림이 달러 자산에 유독 강했다.
다만 현재 달러 강세를 떠받치는 기반은 이전보다 좁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투자 시장에서 달러를 찾는 성격이 전혀 달라졌다. 기존에는 달러가 안전 자산으로 인식돼,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리스크 헤지용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미국 주식이나 회사채 등 높은 금리를 바라는 수요를 통해 달러 투자가 이어지면서, 오히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고위험 고수익)’ 형태인 위험 자산으로 성격이 변모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외환 전략가 스티븐 젠은 이러한 현상을 ‘달러 스마일’이라고 불렀다. 이코노미스트는 “이제 달러 스마일은 한쪽으로 일그러진 ‘비웃음’에 가까워졌다”며 “현재 달러 강세를 더 크게 떠받치는 것은 위험회피 수요보다 미국 주식과 회사채 등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 수요”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때문에 미국 자산의 투자 매력이 약해질 경우 달러도 함께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며 “특히 AI 투자 붐이 거품으로 판명돼 미국 증시가 조정을 받을 경우, 수익률을 좇아 미국 시장에 들어온 자금이 빠르게 빠져나갈 수 있고 달러도 동반 약세를 보일 수 있다”고 짚었다. 실제로 스페이스X가 발행한 회사채 가격은 천문학적인 부채 증가 우려로 인해 투기 등급인 ‘정크 본드’ 수준까지 떨어졌다.
yckim645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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