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주년 신작에 담은 재일한국인 삶
반가사유상·단종·바람의 전화
28·29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돌아보지 않고 계속 달리는 성격인지도 모르겠어요. 30주년이라는 계기가 있어서 처음 돌아본 것 같아요.”
서른 해를 쉼 없이 달려온 음악가가 비로소 걸음을 멈췄다. 작곡가 양방언이다. 1996년 11월 4일 첫 솔로 앨범 ‘더 게이트 오브 드림스’(The Gate Of Dreams)를 낸 지 30년. 그사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무대를 넓혔고, 2002 부산아시안게임 주제곡 ‘프런티어’(Frontier!)로 이름을 새겼으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음악감독을 맡았다. 멈춘 자리에서 양방언이 내민 것은 지난 시간을 되감는 앨범이 아니었다. 11년 만의 정규 앨범, 그 이름도 ‘뉴 호라이즌’(NEW HORIZON)이다.
양방언은 4일 서울 종로구 오디오가이 스튜디오에서 열린 솔로 데뷔 3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30년을) 돌아본다기보다 실감했다. ‘아, 내가 이렇게 음악을 해왔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지나온 시간을 체감하며 마음에 남은 단어는 ‘감사함’이었다.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음악을 빚은 이들과의 인연이 없었다면 30주년도 없었을 거라고 그는 돌아봤다.
솔로 데뷔 30주년을 맞아 내놓은 새 앨범(11월 27일 공개)엔 개인의 기억과 감정에서 나온 신곡 6곡과 최근 여러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위해 쓴 음악 6곡까지 총 12곡을 담았다. 28~29일에는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30주년 기념 공연 ‘유토피아-뉴 호라이즌’(UTOPIA-New Horizon)을 연다. 양방언의 피아노를 중심으로 밴드와 국악 타악기, 관악기, 오케스트라까지 26명이 무대에 오른다.
협업의 11년, 다시 피아노 앞으로
새 앨범은 무려 11년 만에 나온다. 전작은 2015년 ‘임브레이스’(Embrace). 그사이 양방언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음악감독을 맡았고,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반가사유상을 위한 음악을 썼으며, 게임 ‘아이온2’(AION2)의 사운드트랙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의 역량을 두루 발현할 프로젝트를 해오는 시간이 길었던 만큼, 자기 음악을 위한 시간은 줄어들었다.
그는 “다양한 프로젝트와 합작할 기회가 정말 많았다”며 “그런데 그런 일이 너무 많아지니 제 솔로 음악을 못 만들겠더라”고 돌아봤다.
그럼에도 지난 11년간 솔로 프로젝트라 할 수 있는 음악을 떼놓지는 않았다. 양방언은 “‘차마고도’ 같은 작품들과 내 솔로 음악은 큰 연관이 있다”며 “서로 영향을 주면서 내 음악이 자라왔다”고 했다. 전작이 밴드와 심포닉 오케스트라의 결합에 무게를 뒀다면, 이번엔 피아노가 한가운데 선다. 양방언은 “피아노를 중심으로 내 개인적인 생각과 내면을 많이 내보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새 앨범이 태어난 곳은 일본의 해발 1000m 산속 작업실이다. 양방언이 음악 대부분을 만드는 곳이다. 그곳을 나서면 한국과 영국을 수시로 오간다. 한국엔 대략 한 달에 한 번씩 들어온다.
“제 뿌리는 한국이고 DNA도 한국이에요. 하지만 일본에서 태어나 여러 곳을 헤매며 많은 것을 흡수하고, 그걸 음악으로 만들어 왔어요. 아, 나는 이렇게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제주 출신 아버지와 신의주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재일한국인 2세. 의사의 길을 접고 음악을 택해 일본과 홍콩을 거쳐 1999년 한국 활동을 시작했다. 다만 스스로를 노마드라 부르진 않았다. 유모레스크, 아라베스크처럼 ‘~적인’을 뜻하는 접미사 ‘-esque’를 붙여 신곡 ‘노마데스크’(NOMADESQUE)를 지은 이유다. 양방언은 “노마드는 아니지만 노마데스크는 아닐까 생각했다”고 했다.
이 곡은 애초 연주곡으로 구상했다. 오랜 음악 동료인 밴드 국카스텐의 하현우가 곡을 듣고 함께하고 싶다고 나서면서 목소리가 더해졌다. 가사는 없다. 두 사람은 기념 공연에서 이 곡을 처음 함께 무대에 올린다. 양방언은 이 곡을 “이번 앨범 핵심의 곡”으로 꼽았다.
같은 내면에서 나온 곡이 ‘윈드 폰’(Wind Phone)이다. 일본 이와테현 오쓰치초의 ‘바람의 전화’에서 영감을 얻었다. 2010년 사촌을 잃은 한 주민이 정원에 놓은, 어디에도 연결되지 않은 전화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뒤 세상을 떠난 이에게 말을 건네려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기 시작했다. 양방언은 “누구에게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며 “이번에는 꼭 넣고 싶었다”고 했다.
“이게 양방언이구나”
반가사유상에서 출발한 ‘사유 소츠’(Sayu Thoughts). 정가 보이스와 피리, 태평소가 엇갈리다 타악이 더해지며 몸집을 키우고, 끝내 ‘사유’의 메인 테마로 돌아와 닫히는 7분짜리 대곡이다. 강원 영월 단종문화제 주제곡 ‘환생’(Rebirth)은 단종의 슬픔을 힘차고 희망적인 선율로 끌어올렸고, 그 사이로 아리랑 선율의 조각이 스며든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곡을 만든 뒤에야 봤다. 양방언은 “제작 전에 봤다면 다른 분위기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곡마다 생겨난 자리는 달랐다. 이날 간담회의 진행을 맡은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는 “그런데도 비틀스와 오아시스처럼 단번에 ‘양방언이구나’ 알아듣게 된다”고 했다. 양방언은 이에 “저한테는 그게 가장 큰 칭찬”이라고 했다.
‘양방언다움’의 한 축은 국악이다. 정작 양방언은 국악 전공자가 아니다. 그는 “99년에 한국에 들어와서 처음 전통 악기 연주를 보고 빠진 사람”이라며 “살려야 한다기보다 살리고 싶다, 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양방언은 서양음악의 골격 위에 국악기의 음색을 얹어 왔다. 피아노와 밴드, 오케스트라가 뼈대를 세우면 태평소와 피리, 정가의 목소리가 그 위로 결을 낸다. 이날 들려준 ‘사유 소츠’와 ‘환생’도 그렇게 지었다. 민요를 통째로 옮기지도 않는다. ‘환생’에는 아리랑을 그대로 넣기보다 선율의 조각을 떼어 녹였고, 평창을 노래한 ‘에코스 포 평창’(Echoes for PyeongChang)에는 정선아리랑을 스며들게 했다. 2013~2015년엔 국립극장의 우리 음악 축제 ‘여우락 페스티벌’ 예술감독을 지냈고, 지금도 국악관현악단 무대에 게스트로 오른다. 양방언은 “태평소 소리가 들렸을 때 ‘이게 양방언 곡이구나’ 하게 만드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전통 악기라면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가 꼽는 음악의 모트는 ‘어렵지 않게, 듣는 사람에게 곧바로 닿는 음악’이다. 그는 국악만이 아니라 애니메이션과 게임처럼 전통 악기와 상관없는 작업을 함께 이어온 것 역시 자신에게는 중요하다고 했다.
양방언은 새 앨범 작업을 위해 5일부터 영국 런던 애비로드 스튜디오로 향한다. 이곳에서 타이틀곡 ‘뉴 호라이즌’과 ‘노마데스크’ 등을 풀 오케스트라로 녹음한다. 1998년 이 스튜디오를 처음 찾은 뒤 런던에서 하는 열세 번째 오케스트라 녹음이다.
양방언은 “예전처럼 내몽골, 차마고도, 티베트까지 다니진 못하겠지만 한자리에 머물지는 않을 것 같다”며 “어디로 향하는지 아직 다 보이지 않지만 멀리에는 보인다. 그곳을 지금 찾고 있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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