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배문숙 기자]내년 예산안 심의를 앞두고 ‘쪽지예산’을 따내기 위한 국회의원들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을 근거로 공식 절차를 거치지 않은 예산 요구를 모두 거절하기로 결정한 때문이다.

‘쪽지 예산’은 예산 심사 막바지에 국회의원들이 정식 편성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지역구 민원 예산을 동료의원이나 예산당국에 부탁, 민원성 예산을 끼워 넣는 행태를 말한다.

24일 기획재정부 한 고위관계자는 ‘쪽지예산’에 대해 “예산 관련 모든 요구는 상임위나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등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밝혔다. 공식 절차를 생략하고 의원이 개별적으로 기재부 예산실에 예산 신설이나 증액을 요구하는 것은 부정 행위라는 것이다. 기재부는 최근 비공식 루트로 오는 쪽지예산은 청탁으로 간주해 2회 이상 반복할 경우 신고한다는 내부 지침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송언석 기재부 2차관은 지난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는 쪽지예산의 공익성에 대해) 판단할 능력도 근거도 없다”며 “공무원이 청탁을 받고 신고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처벌 대상이 된다”고 밝힌 바 있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쪽지’ 대안으로 다양한 편법이 동원될 전망이다. 특히 의원들이 이번 예산심의 과정에서 지역성 민원을 공문 형태로 제출할 경우 기재부 예산실은 ‘공문 폭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공문 형식 빌면 청탁금지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심지어 ‘인간쪽지’ 가 속출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핵심인 예산소위를 국회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맡는 것을 의미한다.

기재부의 쪽지 예산 법적 대응 방침에 대해 여야 모두 국회 고유 업무라며 반발하고 있다. 권성동 제20대 국회 법사위원장(새누리당)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송 차관이 언급한 것은 본인의 독단적인 견해”라며 “부정청탁에 나오는 고충민원처리가 국회의원에 있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예산이 필요하다는 사업에 대해서 예산을 더 주라고 하는 것은 청탁이 아니다. 이는 정당한 업무 집행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김현미 국회 예결위 위원장도 “엄밀히 말해 쪽지예산은 몇 년 전에 없어졌다. 다만, 정식 회의가 없는 지금까지의 증액심사 시스템이 김영란법에 어긋날 수 있는데, 소위나 소소위를 열어 증액심사를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속에서 국민권익위원회는 쪽지예산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내놓지 않아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권익위는 “일반적으로 예산편성은 청탁금지법의 14가지 부정청탁 대상 직무에 해당하지 않아 부정청탁이 성립하기 어려울 것으로 해석했다”면서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부정청탁 정부 TF를 통해 다시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논쟁은 청탁금지법의 취약성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9대 국회 법사위원장으로 김영란법을 비판해온 이상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애매모호한 해석을 낳는 김영란법의 맹점과 결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며 “각 주체가 법 취지를 완전히 다르게 해석해 무력한 법으로 전락하거나, 모든 주체가 다 법을 위반한 것으로 나오는 위험한 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oskymoo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