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배문숙 기자]때만 되면 찾아와 온 나라를 헤집어 놓는 가축전염병은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해 11월 16일 전남 해남 한 농가에서 최초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한데 이어 이달 5일 구제역이 발생했다. 구제역은 서로 다른 유형의 A형과 O형이 동시에 발생했다. 엎친데 덮친 격이다.
AI발생 100일이 지난 지금 경제적 손실만 따져도 1조원 대를 웃돈다. 사상 최대다. 문제는 이런 후진국 형 가축 전염병이 때만되면 창궐한다는 점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방역 시스템은 작동은 국민들의 기대치에 훨씬 못미치고 있다. 게다가 해당 농가들의 도덕적 해이는 개선될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 계란파동으로 국민적 불안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사상 처음으로 미국 등지에서 계란 수입사태가 벌어졌음에도 사재기의 흔적이 뚜렷했다. 실제로 설 명절을 전후로 지금까지 정체불명의 계란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AI로 산란계 농장 통째로 날아가…피해 1조원= 이번 AI로 도살 처분된 가금류 수는 3314만 마리에 이른다. 국내 전체 사육 가금류 1억6천525만 마리의 20%에 달하는 규모다.
특히 알 낳는 닭인 산란계의 피해규모가 컸다. 도살 처분된 전체 가금류의 71.3%에 해당하는 2362만 마리가 산란계였다. 육계와 토종닭은 275만 마리가 살처분됐고, 오리는 247만 마리, 메추리 등은 430만 마리가 AI로 희생됐다.
올겨울 우리나라를 휩쓴 H5N6형 바이러스는 과거 유행한 그 어떤 AI 바이러스보다 전염성이 강하고, 확산 속도가 빠른 것이 특징이었다. 발생 50일 만에 전국 10개 시·도의 37개 시·군으로 확산했고, 3000 마리 넘게 살처분되면서 역대 최단 기간 내 최악의 피해를 기록했다.
1월 중순 이후로는 다소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2월에도 여전히 야생 조류에서 AI 바이러스가 검출되고 있어 종식 선언까지는 갈 길이 먼 상황이다.
▶사상 초유 ‘계란 대란’에 ‘닭고기 대란’ 우려까지= 사상 최악의 AI는 사상 초유의 ‘계란 대란’을 불러왔다. 전체 산란계의 30% 이상이 살처분되면서 계란 수급이 불안해지자 계란값이 폭등한 것이다.
AI 발생 전 30구들이 한판(특란 기준)에 5000원대 중반 수준이던 계란 평균 소매가는 산란계가 대거 살처분되면서 공급부족 현상이 심화하자 지난달 12일 한판에 9543원까지 치솟았다. 일부 지역에서는 1만원이 웃돌았으나 구하지 못했다. 매점매석 논란도 커졌다.
부랴부랴 정부는 수급 불안 해소와 가격 안정 등을 위해 사상 처음으로 계란을 수입하기로 하고 항공료까지 지원해가며 신선란을 해외에서 긴급 공수하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세금 낭비’라는 비판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계란 성수기인 설 연휴를 앞두고 외국산 계란이 수입되면서 급등세를 거듭하던 계란값이 꺾이게하는 촉매제로 작용했다.
이번에는 닭고깃값이 들썩이고 있다. 소비심리 위축 등으로 ㎏당 888원까지 급락했던 육계 시세는 설 연휴 이후 소비심리가 회복되면서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해 지난 14일 현재 ㎏당 2200원으로 AI 발생 전보다 2배나 폭등했다.
▶AI에 이어 이번엔 구제역…방역체계 제자리= AI가 주춤하는 듯하자 이달 초 구제역이 발생했다. 사상 최악의 피해를 낸 2010~2011년 ‘구제역 대란’ 이후 적극적인 백신 정책을 도입한 당국은 소의 항체 형성률이 97.5%에 달한다며 예방을 자신했으나 이런 자신감은 오래 가지 못했다 . 믿음직스럽지 못한 통계 수치를 근거로 맹신하던 구제역 백신 접종이 사실은 허점투성이 숫자놀음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구제역이 발생한 지역의 실제 항체 형성률이 5~19%밖에 되지 않는다는 충격적 사실이 밝혀지고 일선 농가에서 착유량 감소와 육질 저하 등을 우려해 일부러 백신을 놓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문제가 커졌다.
백신 접종을 농가 자율에 맡겨놓고 모니터링을 게을리한 정부의 무사안일과 당장 코앞의 이익이 감소할 것을 우려해 백신 접종을 게을리한 일부 농가의 모럴해저드가 맞물리며 구제역 방어 시스템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백신 논란도 가열됐다. 당국이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포기하면서까지 도입한 백신 정책이 끊이지 않는 효능 논란으로 흔들리고 있고 100% 해외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불안한 현실이 확인되면서 조속히 국산 백신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다행히 우려했던 A형 구제역이 경기 연천지역 젖소농가 외에는 발생하지 않고 있고 AI 초동대처 실패로 뭇매를 맞았던 방역 당국이 신속한 ‘외양간 고치기’에 나서면서 구제역은 크게 확산하지는 않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번 AI와 구제역 사태를 거치며 방역 시스템의 허점이 적나라하게 노출된 만큼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신속하고 철저한 시스템 재정비에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가축 전염병 발생과 대처 등을 볼 때 근본적인 개선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대세다. 예방에서부터 방역, 나아가 시장질서 확립 등 정책적 판단에서 실행에 이르기까지 보완해야 할 점이 숱하다. 축산농가와 일부 업체들의 비도덕적 문제도 해결돼야 할 우선순위의 과제로 떠올랐다.
hchw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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