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문영규 기자]]‘월드컵이 세계 역사를 뒤바꾼다(?)’

한국인에게 2002년 안정환의 멋진 16강전 헤딩골이 그랬듯, 월드컵 골 하나가 가지는 의미가 다른 사회적 사건이 갖는 의미보다 더 크게 다가올 때도 있다.

월드컵 골은 간혹 한 나라의 영광과 굴욕, 문화적 표현행위, 정치적 저항행위가 되기도 하며 단순한 골로서 가지는 스포츠적 가치를 뛰어넘기도 한다. 워싱턴포스트(WP)가 6일(현지시간) 역사적 의미를 담은 월드컵 골 20을 선정해 소개했다.

제2차세계대전 직후 열린 1950년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이 열리는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나 경기장에는 20만 명의 관중들이 몰렸다. 브라질의 첫 우승을 노리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경기 종료 11분을 남겨놓고 우루과이의 축구영웅 알시데스 기지아의 슛이 브라질의 우측 골망을 가르는 순간, 경기장은 침묵했고 브라질의 우승은 8년 뒤로 연기됐다. 당시의 2대 1 패배는 브라질인들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았다고 WP는 설명했다.

이 대회 미국과 잉글랜드 경기, 조 게이전스의 골은 몇 년 후 더 주목받았다. 아이티계 미국인이었던 게이전스는 월드컵이 끝나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아이티 독재자였던 프랑수아 ‘파파 독’ 뒤발리에의 암살대원에 의해 살해당했다. 1950년의 아이티는 디발리에의 독재로 많은 정치가와 군인들이 처형되고 투옥됐으며 망명세력에 의한 혁명은 여러차례 실패로 돌아갔다. 당시 아이티는 스포츠 암흑시대를 보내고 있었다고 WP는 전했다.

1958년은 브라질의 월드컵 신화가 시작되는 해였다. 스웨덴과의 결승전에서 5대 2로 승리를 거둔 브라질은 10대 축구 천재 펠레의 두 골로 역사를 만들어갔다. 이후 펠레가 뛴 브라질 팀은 1962년과 1970년 두 차례 더 우승을 차지했다.

펠레 곁엔 마누엘 프란치스쿠 두스 산투스, 일명 ‘가린샤’(작은 새)라 불리는 풍운아도 있었다. 1962년 브라질과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가린샤는 작은 새처럼 화려한 드리블로 적진을 파고들어 골을 만들어냈다.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 소아마비와 지능지수 33의 지적장애 가졌지만 이를 극복하고 펠레의 라이벌로 떠올랐다.

1966년은 우리에게도 기념할 만한 월드컵 명승부가 펼쳐진 해였다. 북한이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진출한 사건은 당시 세계 축구계가 경천동지한 사건이었다. 북한의 박두익의 골은 당시 한국전쟁을 겪은 변방에 불과했던 한반도를 서방에 다시 알린 계기가 됐다. 2002년 한국은 다시 16강에서 이탈리아를 맞았고 1966년의 기적이 또 한 차례 재현됐다.

이밖에 축구 종가 잉글랜드의 유일한 월드컵 우승을 가져온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제프 허스트의 대 서독전 골과 최강을 자랑하던 요한 크루이프가 이끄는 네덜란드 팀을 침몰시킨 서독의 게르트 뮐러가 뽑아낸 1974년 서독 월드컵 결승골, 1986년 디에고 마라도나의 ‘신의 손’ 골도 최고의 골로 꼽혔다.

WP는 1994년 미국 월드컵 당시 자책골로 분노한 자국 팬들에 의해 살해당한 안드레스 에스코바르의 자책골도 세상을 뒤흔든 골로 선정했다. 또 매 경기마다 월드컵 우승과 인연이 없던 스페인을 우승으로 이끈 2010년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의 결승전 골도 의미있는 골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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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순서대로)1950년, 1958년, 1986년 월드컵 로고. [사진=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