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배두헌 기자] 전세계 전기차 시장이 본격적인 성장기에 접어든 가운데 역설적으로 내연기관차 연료를 만드는 정유사들의 실적이 좋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최근 글로벌 정유사들은 전기차 확대에 선제 대응하는 차원에서 정제 설비 투자를 신산업으로 돌리고 있는데, 이같은 상황이 오히려 향후 2~3년 동안 석유제품 공급 부족을 초래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14일 증권가와 정유업계 등에 따르면 정유사 실적에 핵심 지표가 되는 정제마진(원유를 석유제품으로 정제하고 남는 이익)은 지난 6월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하며 최근 연중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주 싱가포르 크랙마진 평균치는 배럴당 9.9달러까지 치고 올라가 10달러 진입을 눈 앞에 뒀다. 작년 이맘 때 정제마진이 배럴당 5달러 내외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대단히 높은 수준이다.
시장에서는 이같은 정제마진 호조에 힘입어 3분기 SK이노베이션의 영업이익이 다시 1조원을 돌파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정제마진의 상승 원인은 기본적으로 석유제품의 수요 증가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최근 허리케인 하비의 재상륙으로 인한 미국 정유시설 생산 차질, 국내외 정유사들이 잇따른 설비 트러블로 타이트해진 수급 상황 등이 작용한다.
보다 근본적이고 중장기적인 차원을 들여다보면 전기차 시장의 가파른 성장세가 정유사들이 정제 설비 확대 등 투자를 소홀하게 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준영 하이투자증권 연구위원은 “글로벌 정유업체들은 전기차의 등장 이후 정제설비 투자보다는 석유화학 다운스트림이나 2차 전지(배터리)같은 신성장 산업에 투자를 집중해왔다”며 “정제설비 투자에서 가동까지 통상 2~3년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이 기간 정유사들의 정제마진은 강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국내 업계 맏형인 SK이노베이션은 올 상반기 배터리ㆍ화학으로의 대대적인 투자 전환을 선언한 바 있다.
국제유가 등 통제 불가능한 외부 변수에 따라 실적 널뛰기를 하는 정유업만 바라볼 게 아니라, 향후 고부가 석유화학 제품과 전기차 시장의 확대에 대비해 포트폴리오를 넓히겠다는 전략이다.
이렇게 국내외 메이저 업체들이 정제 설비 투자에 과거 만큼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석유제품 수급은 점점 타이트해질 수 밖에 없다.
하준영 연구위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원유 수요는 2017년 150만 배럴(1일 사용량 기준), 2018년엔 140만 배럴씩 늘어날 전망”이라며 “반면 글로벌 정유업체들의 정제설비 증가분은 2020년까지 연간 76만 배럴에 그쳐 공급이 70만~80만 배럴씩 부족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badhone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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