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과잉 가격 폭락…한 판 1000원대

지난 9일 오후 4시께 서울 용산구의 한 마트. 달걀 30구가 정상가보다 48% 할인된 1980원에 판매되고 있다. “이게 싼 거냐”는 질문에 용산구 주민 권모(58ㆍ여) 씨는 답답하다는 듯 가격표를 가리킨다. 권 씨는 “작년까지만 해도 못해도 계란 한판에 5000원은 줘야 했다”며 “가격이 이 정도로 떨어지니 판매업자들이 그동안 폭리를 취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라고 했다.

이날 믿을 수 없는 가격에 눈이 휘둥그레진 고객들은 섣불리 계란을 구매하지 못했다. 실눈을 뜨고 숫자 네자리를 다시 확인한 후에야 계란 한 판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렇게 의심과 확인, 인정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 고객들이 하나둘씩 계란을 집어가자, 한 줄에 13판씩 쌓여있던 계란이 순식간에 동났다. 인근 또 다른 마트에서도 계란 한 판이 300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1980원보다는 비싸지만 여전히 평균 소매가(4066원)보다 1066원 저렴했다.

최근 계란 가격의 하한선이 무너지고 있다. 조류인플루엔자(AI)가 창궐한 지난해 초 30개들이 계란 한 판은 ‘금값’ 수준으로 치솟았다. 그러나 1만원을 넘나들던 계란 가격은 불과 1년 사이 ‘헐값’으로 떨어졌다. 이로 인해 양계농가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지만 소비자들은 “자업자득”이라며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10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9일 기준 계란 평균 소매가(30개들이 특란 기준)는 4066원으로, 1년 전(7475원)보다 45.6% 하락했다. 월별 평균가 기준으로 2008년 1월(4418원) 이후 최저 가격이다. 평년 가격인 5885원보다도 1819원 싸다. 중소 마트나 슈퍼마켓 등 일부 소매점에서는 1000원~3000원대에 팔기도 한다. 계란 1개당 평균 생산 가격이 97원인 점을 고려하면 생산 원가 이하로 계란이 팔리고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계란 값이 폭락한 이유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양계농가에서 기르는 산란계 수가 급증하면서 공급량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난해초 전국을 덮친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로 전체 산란계의 36%인 2517만 마리가 살처분되면서 대부분의 양계농가들은 사육을 중단했다. 하지만 곧이어 계란 값이 치솟기 시작하자 양계농가들은 앞다퉈 산란계 사육 물량을 늘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산란계 사육 마릿수는 7271만 마리로, 종전 최고 기록이던 2015년 9월 7209만 마리를 넘어섰다. 지난해 1분기의 5160만8000마리에 비해 40.9%나 증가한 규모이며, 1983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많다. 양계협회는 산란계 대량 도매를 결정하며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AI 사태 때 일부 업자들이 보였던 이윤추구 행태와 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신뢰가 바닥까지 추락했기 때문이다. 은평구 주민 박모(59) 씨는 “솔직히 양계농가 죽어난다는거 이해가 안된다”며 “무리하게 출혈경쟁해서 가격이 떨어진건데 소비자 입장에서는 어이없다”고 했다. 마포구 주민 이모(34ㆍ여) 씨도 “이제서야 계란값 걱정 안하고 구입하고 있는데, 이제와서 계란 가격 살리겠다는게 말이 되는지 모르겠다”며 “소비자로서 볼때는 가격 부풀려 팔았던 양계농가가 내부경쟁하면서 제 발등을 찍은 것으로만 보인다”고 했다.

박로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