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하다는 느낌까지 드는 표현이지만 우리는 한반도질서가 전환하는 대격변기를 목도하고 있다. 1953년 6ㆍ25전쟁이 정전협정으로 일단락된 이후 65년간 이어진 분단체제에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본다.
2018년 4월27일 남북정상이 대립과 갈등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에서 만나 화해와 평화를 선언한 장면은 훗날 교과서에 수록될 역사적 순간이었다.
한반도질서는 앞으로 한달 뒤 더 큰 변곡점을 맞이한다.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에서는 70여년간 극단적 적대관계를 유지해온 북한과 미국 정상이 처음으로 만난다. 한국과 중국 정상의 싱가포르행도 거론되고 있는 만큼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넓게는 국제질서 전반, 좁혀도 한반도질서를 좌지우지해온 샌프란시스코체제를 대체할만한 ‘싱가포르체제’가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한반도질서가 대격변기에 돌입하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먼저 북한의 변화를 꼽지 않을 수 없다. 핵과 탄도미사일을 양손에 쥐고 도발을 거듭하는 바람에 국제사회로부터 탕아 취급을 받던 북한은 핵ㆍ경제 병진노선 대신 경제건설 총력노선을 내걸고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마찬가지로 ‘은둔의 지도자’로 불리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미정상회담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과 1차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2차례 만나며 정상적인 정상외교 행보를 펼치고 있다.
검증이 남아있긴 하지만 ‘미래 핵’ 제거의 의미를 지니는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도 북한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노동당 친선참관단이 김 위원장이 둘러본 ‘중국의 실리콘밸리’ 중관춘(中關村)을 다시 찾은 장면에서는 개혁의지도 엿보인다.
김 위원장의 ‘인민대중제일주의’를 곧이곧대로 믿을 바보는 없다. 다만 국제사회의 제재ㆍ압박에 직면해 활로를 찾아야하는 처지에 놓인 북한의 변화는 고개를 끄덕거릴만한 개연성을 지닌다.
역사상 스스로 핵 개발 완성을 선언한 국가 중 스스로 핵을 포기한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북한의 진정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빨갱이’, ‘종북세력’ 등 철 지난 유행어를 동원해 애써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의 의미를 깎아내리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특히 이 같은 섬뜩한 표현이 국민 사이의 이해관계 대립과 의견 차이를 조정하고 미래 청사진을 제시해야할 정치권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젊은세대들이 남북관계 개선으로 군 복무기간이 줄어드냐고 질문하고, 지금은 강원도서 복무하지만 앞으론 백두산이나 개마고원으로 갈 수 있다는 답변을 주고받는 유쾌함과 동떨어진 시각이다.
남북은 미중 패권경쟁 틈바구니에 끼인데다 북핵 6자회담 고비 때마다 몽니를 부리곤 했던 일본도 상대해야하는 어려운 처지다. 정쟁은 정치의 본질이란 말도 있지만, 최소한 한반도질서 대격변기에 외교ㆍ안보 분야에서만큼은 내부의 단합을 추구해야 한다.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은 낡은 패러다임의 혁명을 통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대체라는 ‘패러다임 시프트’를 얘기했다. 한반도질서가 대격변기에 접어든 지금, 낡은 대북관과 한반도정세 인식으론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 없다. 한반도질서 패러다임 전환 준비가 됐는지 자문자답해봐야 한다.
shind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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