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늦게 나홀로 여고생 등 동행 외진 주택가 함께 걸으면 안심 “순찰중 가끔 놀라는 일 있어 딸같은 시민 걱정 덜어줘 보람”
“저희도 가끔 무서워요. 아들이 그래요. 엄마는 누가 데려다 주냐고.” 노란색 조끼에 노란색 모자, 손에는 빨간색 봉을 들고 야심한 밤 여성들의 안심 귀가를 책임지는 서울시 여성안심귀가 스카우트들은 ‘수퍼 우먼’이 아닌 평범한 중년 여성의 모습이다. ‘우리도 때로는 밤길이 무섭다’면서도 사명감 하나로 용기를 낸다는 이들을 지난달 28일 밤 동행 취재했다.
비가 내리던 이날 오후 10시 서울 구로동 신구로 지구대. 남들 같으면 저녁 회식 후 퇴근할 시각이지만 여성 안심귀가 스카우트로 일하는 이명선(56) 씨에겐 이제 막 일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이 씨가 오후 10시 20분께 자신의 짝꿍 정혜연씨와 함께한 첫 동행은 딸뻘 또래인 직장인 김모(37) 씨다. 혼자 귀가하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동행서비스가 필요한 지 먼저 묻고 제안하거나 ‘콜’을 받고 출동하는 게 이 씨와 같은 안심귀가 스카우트들의 주업무다.
인근 아파트 단지까지 무사히 도착한 첫 손님 김 씨는 “우리 신랑이 이 서비스를 좋아한다”며 “집에 오는 길에는 술집에서 나온 취객들이 많은데 (안심 스카우트들과 함께) 불안하지 않게 걸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만족했다. 김 씨가 현관으로 무사히 지나갈 때까지 스카우트들은 눈길을 떼지 않고 지켜봤다.
밤길을 동행하는 손님 중엔 김 씨와 같은 단골들이 많다. 이 씨는 “매일 노량진 학원에서 밤 11시에 귀가하는 학생들, 외진 주택가까지 무거운 책을 들고 하교하는 고등학생들도 주 고객”이라고 귀띔했다.
짙은 밤이 찾아온 오후 11시 30분께. 이번에는 스카우트 A(60) 씨와 박모(47) 씨 팀과 함께 길을 나섰다. 이들의 담당구역은 가파른 경사의 다세대주택이 밀집한 곳이다. 홀로 귀가하는 류모(59) 씨를 만났다. 동행을 흔쾌히 승낙한 류 씨는 “항상 이때쯤 귀가하는데 누가 쫓아올까봐 뒤를 돌아보기도 하고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며 “이렇게 데려다주니까 훨씬 안심된다”고 말했다.
어느덧 시간은 밤 12시. 이날은 비 오는 날이라 평소보다 인적이 빨리 끊겼다. 이렇게 동행할 고객이 없을 땐 순찰에 나설 차례다.
“여기가 그리 만만한 동네가 아니에요”라는 박 씨의 설명을 들으며 여자 셋이 걷는 밤길은 혼자가 아니라도 충분히 두려웠다. 동네는 언덕 경사가 가팔랐고 골목은 사람 한명 겨우 지나다닐 정도로 좁았다. 실처럼 얽힌 골목에서 미로처럼 길을 잃는 상상을 하니 아찔했다. ‘막다른 코너 뒤에 누군가 있으면 어떡하지’ 혹은 ‘가로등 불빛이 비추지 않는 곳엔 뭐가 있는걸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안 무섭냐고요? 우리도 무섭고 소름 돋아요.” 매일 순찰을 도는 스카우트들에게도 두려움은 종종 찾아온다. 박 씨는 “가끔 순찰 중에 한명이 화장실 가서 혼자 밖에 서있을 때, 어떤 분들이 ‘오늘은 혼자네?’ 하고 물어본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순찰하니까 알아보는 거지만 움찔하게 된다“고 말했다.
몇몇 스카우트들은 가족들이 자신의 귀갓길을 걱정할까봐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숨기기도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스카우트는 “지난 2015년에도 이 일을 했었는데 아들이 싫어했다. 지금도 아들에겐 비밀이다”고 말했다.
이들이 가족이 걱정할까 비밀로 하고 두려움을 이겨내면서까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명선 씨의 대답은 ‘보람’이었다. “야자 끝나고 귀가하는 고3들을 데려다 줄 때, 그 친구들이 엄마한테는 못하는 깊은 속 얘기도 합니다. 우리가 밤길 걷는 두려움, 살아가는 걱정을 덜어줄 수 있다는 데 보람을 느껴요”. 수퍼우먼처럼 밤길을 지키는 평범한 이들의 소박한 보람이다.
김유진 기자ㆍ이민경 수습기자/kacew@
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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