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뮌헨 BMW 본사  [연합뉴스]
독일 뮌헨 BMW 본사 [연합뉴스]

전개양상이 똑같다. 주행 중 화재가 나는 문제가 생겼음에도 BMW는 시간을 끌었고,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놨다. 화가 난 소비자들이 들고 일어나자 정치권이 부랴부랴 대책을 꺼내 들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다. 2015년 폭스바겐이 배기가스 배출량을 조작한 ‘디젤게이트’ 때도 정치인들은 이 제도를 대책이라고 내놨다.

많은 사람이 법의 구멍을 이용한다. ‘편법 절세’가 대표적이다. 편법 초창기엔 법을 어긴 사람이 나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걸 알고도 수년간 내버려뒀다면 입법·행정부의 무능이 잘못이다. 법이 잘못됐다면 고치라고 있는 곳이 국회다.

3년 전 폭스바겐이라는 법인(法人)이 대한민국 소비자를 ‘봉’으로 봤을 때, 정치권은 대한민국의 제도에 허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그러나 그냥 놔뒀다. 소관 상임위인 법사위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관련 법안을 단 한 차례도 심의하지 않았다.

기업은 이윤의 획득을 목적으로 한다. 사전에 나오고, 이번에도 증명됐다. 폭스바겐이든, BMW든 책임 회피가 수용보다 적은 비용이 들면 회피한다. 대한민국은 이런 측면에서 ‘내 맘대로’해도 되는 시장이다.

미국에선 안 그런다. BMW는 미국에서 단 4건의 화재에도 곧바로 대규모 결함시정(리콜) 조치에 들어갔다. 국내에서는 2015년 논란이 시작된 이후 3년이 지난 올해 7월에 이뤄졌다. 폭스바겐은 디젤게이트 당시 미국에서 최대 1100만원을 보상했다. 국내선 100만원짜리 쿠폰을 제공했다.

유독 외국 다국적 기업이 한국에서만 고자세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 때도 그랬다. 사태의 주범으로 꼽히는 옥시레킷벤키저는 성인 피해자에게 3억 5000만 원 정도의 위자료를 지급한다고 결정했다. 사망ㆍ중상에 이른 영유아ㆍ어린이 피해자에게는 10억 원을 준다고 했다. 미국이라면 배상액은 10배까지 높아졌을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미국 법인에 천사만 모였기 때문이 아니다. 제도로 그러지 못하게 했다. 맥도날드 커피 소송 사건이 대표적이다. 79세 할머니는 뜨거운 커피를 쏟아 화상을 입었고 소송을 걸었다. 수억의 금액을 보상받았다. 그래서 기업은 친절하게 써놓는다. “음료가 매우 뜨겁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소비자는 세계적 기업을 잡을 힘이 없다. 3년 전 소비자에게 맹렬히 비난받았던 아우디폭스바겐 코리아가 최근 아우디A3 특가상품을 내놓는다는 기사가 나자 전시장엔 사람이 몰렸다. “기사가 나자마자 갔는데도 앞에 수십 명이 예약을 했다더라”는 말이다.

불매운동 말해봐야 1년도 가지 못한다. 배출가스 조작 논란이 발생했던 2015년 10월 내수시장에서 947대 판매에 그쳤던 폭스바겐은 11월 들어 전월 대비 무려 337% 증가한 4517대를 팔았다. 폭스바겐은 60개월 무이자 할부, 현금 구매 시 최대 1772만원 할인 등의 파격 프로모션을 펼쳤다.

벌써 징조가 보인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지난 한 달 BMW 차량의 국내 판매량은 전달 대비 5.6% 하락한 3959대다. 점유율 19.3%로 수입차 브랜드 중 2위를 지켰다. 5.6%의 하락폭은 업계 1위 벤츠(-24.5%)와 3위 폭스바겐(-11.5%)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화재가 집중됐던 520d 모델 정도만 판매량이 반 토막 났다.

‘나쁜 글로벌 기업’ 다수가 살아남았다. 옥시도 살았고, 폭스바겐도 살았다. BMW도 그럴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국내 소비자가 단결해 1년 동안 불매운동에 성공하는 기적이 일어난다고 해도 이들이 치명상을입을까. 대한민국 소비시장은 그렇게 크지 않다.

제도를 바꾸지 못하면 불공정한 힘의 균형은 변하지 않는다. “첫 번째는 속인 사람이 잘못이지만 두 번째는 속은 사람이 바보고, 세 번째는 공범”이라고 했다. 벌써 대한민국 정치판은 이유를 막론하고 세 번째 속았다. 분노가 국회로 향해야 하는 이유다.


th5@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