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투자자에 730억 물어줄판 엘리엇·쉰들러…잇단 중재신청 일관성 결여…각국 개선 움직임
우리 정부가 처음으로 ‘투자자-국가 간 분쟁(ISD)’ 사건에서 수백억 원대 배상금 지급 판정을 받고, 올해 들어 4곳의 외국인 투자자가 중재 의향을 밝히면서 분쟁 위험이 점점 커지고 있다.
한국은 지난 6월 이란의 다야니가(家)에 730억여 원을 배상하라는 국제 중재판정부의 판단을 받았다. ISD 제도가 도입된 후 우리 정부의 배상 책임이 인정된 것은 처음이다. 이란 가전 회사 엔텍합의 대주주인 다야니는 2010년 무산된 대우일렉트로닉스(현 대우전자) 인수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한ㆍ이란 투자보장협정(BIT)상 공정ㆍ공평 대우 원칙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판정에 불복해 취소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정부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ISD 사건의 규모는 훨씬 더 크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으로 7억7000만 달러(8600억여 원) 피해를 봤다며 지난달 ISD 중재신청서를 접수했다. 외국인 투자자가 중재의향서를 제출한 뒤 90일 안에 정부와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중재신청서를 내고 양측은 본격적인 중재 절차에 돌입한다.
미국계 헤지펀드 메이슨 캐피털은 엘리엇과 같은 사유로 1억 7500만 달러(약 2000억 원) 규모, 스위스의 승강기 업체 쉰들러는 약 2억 5900만 프랑(약 3000억 원) 규모의 중재의향서를 6월과 7월에 각각 제출한 상태다. 현대엘리베이터의 2대 주주인 쉰들러는 현대그룹의 유상증자 승인을 문제 삼았다.
정부와 투자자가 본격적인 중재 절차에 들어가면 양측이 합의 하에 중재인ㆍ중재지를 결정한다. 특정 법원에 소를 제기하는 소송과는 다르다. 우선 양측이 중재인을 1명씩 선정하면 그 중재인들이 합의해 의장중재인을 선택해 3명이 중재판정부를 구성한다. 중재지 또한 양측 합의로 결정한다.
엘리엇은 ‘유엔 국제무역법위원회(UNCITRAL)’ 중재 규칙에 따라 이번 ISD 사건의 중재지를 영국으로 제안했으나 한국은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기업이나 투자 집단이 아닌 개인이 ISD를 제기한 점도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계 미국 시민권자 서모 씨는 자신 소유의 부동산을 한국 정부가 재개발 과정에서 부당하게 수용했다며 300만 달러(약 33억 원)를 배상하라는 중재신청서를 지난달 제출했다. 서 씨 측은 한국 정부가 ‘적용 대상이 되는 투자를 직ㆍ간접적으로 수용하거나 국유화할 수 없다’고 명시한 한미 FTA 11장 6조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서 씨의 청구 금액은 크지 않지만 만에 하나 중재판정부가 개인 투자자의 손을 들어줄 경우 우리 정부를 상대로 ISD 신청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정부는 한미 FTA 재개정 협상에서 ISD 남소를 방지하기 위해 관련 조항을 손봐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아직 뚜렷한 결과물은 나오지 않았다.
법조계에서는 ISD 제도 자체가 당사국의 사법 주권을 해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ISD는 양측의 합의를 중시해 민간 투자자가 중재 과정에서 상대 정부와 같은 권한을 갖기 때문이다. 또 각각의 사건마다 중재지와 중재판정부가 다른 만큼 판정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다. 미국 정부는 최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서 ISD 조항 삭제를 요구하고, 유럽연합(EU)는 상설 다자투자법원(MIC) 설치를 제안하는 등 세계적으로도 제도 개혁 움직임이 일고 있다.
유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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