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대 미국 대통령 조지 HW 부시가 세상을 떠났다. 아들 조지 W 부시 43대 대통령과 함께 부자 대통령의 영광을 누린채 94세로 운명했다. 1989년 취임해 실용적 리더십으로 내전 종식, 독일 통일, 소련 붕괴, 걸프전 승리를 견인했다. 비록 단임에 그쳤지만 미국 정치사에 굴직한 발자취를 남긴 거물이다.
1924년 월가 금융인과 상원의원을 역임한 프레스컷 부시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전형적인 금수저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자원입대 해 공군 조종사로 활약했다. 나라에 온몸을 바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일찍부터 실천한 셈이다. 예일대 졸업 후 서부 텍사스로 내려가 정유 사업에 투신해 성공을 거두었다. 1967~71년 공화당 하원의원으로 워싱턴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공화당 전국위원장, 초대 중국 연락소장, UN 대사,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역임했다. 1980년 로널드 레이건의 런닝 메이트로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1988년 마이클 두카키스 주지사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독일 통일과 소련 해체를 유도해 냉전을 종식시키고 신 글로벌 질서 구축에 기여했다. 걸프전을 승리로 이끌어 베트남 패전으로 상처 받은 미국인의 자존심을 되살렸다. 그러나 경제가 나빠지고 민생을 도외시한다는 국내 여론에 밀려 재선에 실패했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고 외치는 빌 클린턴의 포퓰리즘에 참패했다.
부시 리더십의 요체는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국가에 대한 투철한 공복(公僕) 의식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애도 성명에서 “애국적이고 겸손한 공복”으로 찬양했다. 정치적 이해보다 국익을 우선하는 신조를 지켜왔다. 18세때 공군에 자원입대한 사실이야말로 애국심과 희생정신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초당적 리더십은 최대 정치적 덕목이다. 재정적자, 증세, 민권, 환경보호 등 여러 분야에서 여야를 뛰어넘는 타협과 양보의 미덕을 보여주었다. 1988년 대통령 선거에서 “증세는 없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러나 1990년 재정적자 감축을 위한 협상에서 합의 도출을 위해 과감히 증세를 수용했다. 이로 인해 뉴트 깅리치가 이끄는 여당 보수파의 집중 공격을 받았고 재선 실패의 최대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부시의 자기희생이 미국 경제를 되살리고 클린턴 행정부의 경제 호황과 재정흑자 창출의 밑거름이 되었다. 1968년 공정 주택거래 법안을 보수파의 반대에도 찬성했다. 정치를 승자 독식의 제로섬 게임으로 보지 않고 상생과 공존의 행위, 공익 구현의 수단으로 인식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신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한 것도 트럼프식의 분노와 분열의 정치를 혐오했기 때문이다. 정치는 타협의 산물이라는 오랜 정치적 지혜를 신봉했다.
금수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소수 인종,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89년 취임사에서 “보다 인정있고 품위있는 미국”을 역설한 것이야말로 번영의 과실을 모두가 공유해야 한다는 신념의 산물이다. 부하 직원 아들의 백혈병 치료를 돕기 위해 삭발을 하고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감사 편지를 보내는 겸손이 그를 ‘품위 있는 지도자’로 자리매김했다. 클린턴과 함께 아시아지역 쓰나미, 허리케인 카트리나 재난 모금운동에 힘을 합쳤고 자신의 아들처럼 아꼈다. 그의 인간성을 잘 보여주는 일화다.
뛰어난 외교 역량을 거론치 않을 수 없다. 중국의 개방을 적극 유도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있는 이해관계자가 되도록 독려했다. 일본, 유럽 등 동맹 관계를 중시하고 글로벌리즘의 확산을 지원했다. 트럼프식의 미국 우선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리를 지지했다. 특히 고르프초프 전 대통령과 전략무기감축협정을 체결해 핵무기의 획기적 감축을 유도한 것은 평화적 리더십의 성공사례가 아닐 수 없다. 걸프전에서 이라크 점령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그의 절제된 리더십을 잘 보여준다. 아들 부시가 2003년 이라크 전쟁으로 가장 인기 없는 지도자로 추락한 것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60년 지기인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 말처럼 그는 “저평가된 지도자”였다. 그러나 격변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간 강명(剛明)한 지도자였다.
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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