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인당 퇴직급여 880만원 5억 넘는 퇴직자도 1443명 달해 허술운영 공기업 방만 명퇴금 눈총 노동조합 센 금융회사 목돈 당근책 전문가 “충성심 약화 부작용” 지적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은 가늘어서 슬픈 모가지로 물끄러미 바라본다…비켜라, 가다 또 쓰러질망정 지금 여기선 안 꺾인다”
신양란 시인이 명예퇴직자의 애환을 그린 ‘명예퇴직자 K씨-동물원에서’에 등장하는 시구다.
‘명예’니 ‘희망’이니 그럴듯한 표현으로 포장된다고 해도, 사용자가 일정 규모를 정해놓고 진행된다는 점에서 ‘해고’의 다름 아닌 명예퇴직은 본인과 가족에게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모든 명예퇴직이 다 같은 명예퇴직은 아니다. 한국사회의 양극화가 극심해짐에 따라 명예퇴직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1인당 평균 퇴직급여 880만원…5억원 넘는 퇴직자도 1443명=국세청이 올해 초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퇴직자는 281만1892명으로 명예퇴직금을 포함한 퇴직급여 총액은 24조8000억원, 1인당 평균 880만원으로 집계됐다. 전체 퇴직자의 84.9%인 238만6582명의 퇴직급여는 1000만원 이하였다. 하지만 퇴직급여가 1억원을 넘는 근로자는 1.3%인 3만6570명에 달했고, 이 가운데 1443명은 퇴직급여가 5억원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급여 편차가 큰 것은 기간제·파견직 근로자의 경우 1~2년 사이에 계약종료되면서 낮은 수준의 퇴직금을 정산받기 때문이었다.
내국인과 외국인, 법인사업자와 개인사업자 등 사업장에 따른 차이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가욋돈으로 인식되는 명예퇴직금 격차에 의해 양극화현상이 한층 더 벌어졌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명예퇴직금을 받는 경우는 그나마 행복한 축에 속한다. 하지만 고령화에 따른 100세 시대에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최근 15년간 다닌 중소기업에서 후배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명예퇴직한 A 씨의 사례는 이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대기업 하청업체에 몸담았던 A 씨는 퇴직금으로 1억5000만원과 명예퇴직금 1억원을 받았다. 3억원대의 아파트까지 포함하면 총 자산은 5억5000만원이다.
그런데 노후를 대비해 한 금융회사에 은퇴설계를 의뢰했던 A 씨는 결과를 받아보고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본인의 기대수명은 79세였지만 그의 자산규모로 살 수 있는 경제수명은 78세로 1년이 적었기 때문이었다. A 씨의 경우 은퇴후 최소생활비 189만원을 가정했을 때 총 5억7000여만원이 필요하지만 2000여만원이 부족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명예퇴직금을 많이 받는다고 해도 자녀 교육비와 결혼비용 등 목돈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쪼들릴 수밖에 없다. 결국 거액의 명예퇴직금을 받는다고 해도 여생을 놀고먹고 즐길 수만은 없는 셈이다.
▶혈세 먹는 공기업 명예퇴직금 인플레이션=개인에게는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부족할 수밖에 없지만 일반 국민 입장에서 속 터질 수밖에 없는 명예퇴직금도 있다. 혈세로 운영되는 공기업의 방만한 명예퇴직금이 대표적인 예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은 임금피크제에 들어가기 전 명예퇴직을 선택하는 퇴직자들에게 명예퇴직금을 주면서 2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1인당 평균 2억~3억원을 지급해 최근 감사원으로부터 “조기 퇴직자들에게 주는 명예퇴직금을 없애고 임금피크제를 활성화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한국공항공사는 지난 2011년 명예퇴직 제도를 허술하게 운영하는 바람에 116억여원의 과다 퇴직금을 지급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공항공사는 공공기관 명예퇴직 제도 개선안에 근속연수 20년 이상인 사람에게 명예퇴직을 허가하고 퇴직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체 인사규정을 근속연수 15년 이상으로 변경해 지급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1월 제도를 마련하기 전까지는 비리를 저지른 공공기관 임직원이 면직될 때 명예퇴직금을 비롯한 두둑한 퇴직금을 챙기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기재부는 비위 행위가 발견된 임직원을 바로 면직시키지 않고 징계를 통해 출근 정지시켜 퇴직 직전 3개월 평균임금을 낮춤으로써 30%정도의 퇴직금 감액효과를 볼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공공기관 직원이 임원으로 승진하거나 자회사에 재취업해 퇴직할 경우 법정퇴직금 외 명예퇴직금은 지급하지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으로 너무 늦은 조치였다는 비판을 면하지는 못했다.
▶신의 직장 명예퇴직금은 부러움? 눈총?=상대적으로 높은 명예퇴직금을 지급한 일부 금융회사와 대기업은 부러움을 넘어 눈총을 받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노동조합의 힘이 센 금융회사와 대기업은 기업경영환경 악화에 따라 인력 구조조정을 시도하지만 나가려는 사람이 없는 바람에 목돈의 명예퇴직금 지급이라는 당근을 제시하고 있다.
주요 통신업체인 KT는 지난 4월 무려 8300여명의 명예퇴직 신청을 받아 1조3000억원 가량을 명예퇴직금으로 지급했다. 1인당 평균 1억4457만원에 이르렀다. KT는 천문학적인 명예퇴직금 지출로 올해 적자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시티은행은 최근 실시한 명예퇴직에서 5년치 급여를 특별퇴직금으로 지급했다. 1인당 평균 4억원에 달했다. 이밖에 자녀 학자금, 건강검진 혜택도 보장했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명예퇴직금은 인건비 절감을 통한 경영 효율화에 역행할 뿐 아니라 기업 경영수지를 악화시켜 결국 주주들에게 피해를 전가하게 된다고 말한다.
또 거액의 명예퇴직금은 기업에서 당초 정리하려던 직원 외에 핵심직원들로 하여금 명예퇴직 유혹에 빠뜨리고 기업에 대한 충성심을 약화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신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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