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은 취미·선택’이란 상류층 ‘대기업·고시’ 매달리는 중류층 ‘하루하루의 삶’이 고된 하류층

“클럽만 다니던 그 선배, 졸업하고 로스쿨 준비한대. 아버지가 벌써부터 아는 교수들 섭외해서 멘토링 주선해준다던데?”

일주일에 세번 과외 알바를 하며 로스쿨을 준비하고 있는 대학생 이지연(27ㆍ가명) 씨는 가끔씩 들려오는 ‘로스쿨 낙하산’ 소식에 기운이 빠진다. 수천만원에 달하는 학비가 부담스러워 로스쿨 결심에만도 몇달이 걸렸다는 그는 “불성실하기로 소문난 선배가 부모의 재력을 지렛대 삼아 성공한다는 걸 생각하면 절망적”이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관련기사 2면 역대 최악의 청년 취업난 시대를 맞았지만 정작 그 안에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는, 이른바 ‘20대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 재력의 수준에 따라 ‘직업은 취미’인 상류층, 대기업과 고시를 노리는 중간층, 그리고 이조차도 엄두를 못내는 하류층으로 나눠진 ‘신(新) 계급사회’로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부모의 배경에 따라 결혼에 대한 생각도 확연히 달랐다.

▶“취업난? 20대 모두의 얘기는 아닙니다”=소위 말하는 금수저로 불리는 대학생들에게 취업은 ‘선택’이었다. 이들은 돈 걱정이 없이 스타트업을 차리거나 대학원 진학으로 학교 생활을 더 즐긴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김모(31) 씨는 대학 졸업 후 중국 유학을 마친 뒤 곧바로 아버지 회사를 물려 받았다. 그는 “준비를 안 해봐서 그런지 취업난을 체감하진 못했다”고 했다.

그 아래에는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 부모님 지원으로 대기업과 고시 준비를 하고 있는 이들이 존재한다. 노력하면 언젠가는 취업이 될 것이며, 결혼은 취업 후 선택의 문제라고 여기는 집단이다. 공기업 준비를 하고 있는 서울 성북구의 대학원생 윤모(29) 씨는 “부모님께 손 벌려 취업준비에 올인한지 1년정도 됐는데 노력하면 그래도 원하는 기업에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학자금을 직접 갚고 취업 준비 비용까지 마련해야 하는 세번째 집단은 하루하루가 벅차다. 알바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바람에 토익이나 자격증 등 스펙 준비기간도 늘어질 수밖에 없다. 취업준비생 유모(27) 씨는 “취업이 늦어지면 결혼도 함께 늦어질 것 같아 걱정”이라며 “사실 남자 연봉 3000만원으로 내집 마련은 꿈도 못 꾸는데 결혼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취업과 결혼 자체를 논하는 게 사치라는 이들도 있었다.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면서 일주일에 나흘 카페 알바를 하고 있는 최모(28) 씨는 9급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지만 사실상 취업을 포기했다. 그는 “공무원 시험이 그나마 나이를 안 본다고 해서 쥐고는 있지만 1~2년 바짝 시험 공부만 하는 친구들을 이길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에게 결혼은 까마득한 꿈이다. 최 씨는 “학교 도서관에서 마음 편히 취업준비만 전념하는 친구들이 가장 부럽다”며 “현재는 대학 동기들과도 연락하지 않고 지낸다”고 털어놨다.

▶“계층이동 불가능한 사회가 대학사회에도 반영”=학생들은 이러한 대학교 문화 대해 ‘대학이 성인사회의 축소판이라는 게 실감이 난다’는 반응이다. 취업준비생 박모(29) 씨는 “국가장학금대출 기간이면 장학금을 받기 위해 자료를 마련하느라 분주한 학생들과 전혀 관심이 없는 집단으로 나뉜다”며 “평소에도 해외여행을 몇번 어디로 갔다 왔는지, 어떤 백을 들고 다니는지 등으로 서로의 계급을 순식간에 파악한다”고 씁쓸해 했다.

이 같은 대학사회의 계급론에 대해 졸업 이후에도 사회가 계층이동이 불가능하다는 좌절감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 ‘사회통합 실태 진단 및 대응 방안 연구(Ⅴ)’ 보고서에 따르면 ‘인생에서 성공하는 데 부유한 집안이 중요하다’는 말에 동의한 비율은 80.8%로, 중요하지 않거나 보통이라고 생각한 비율(19.2%)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노력하면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에 대해서도 ‘매우 높다’는 의견은 1.6%로 극소수였고, ‘약간 높다’도 36.6%에 그쳤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학교 계급론은 기성세대 문화가 그대로 내려온 것”이라며 “건전한 자본주의 사회라면 노력으로 그런 계급 격차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 한국 사회는 그렇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세희 기자, 박자연ㆍ김민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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