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스포츠팀=이강래 기자] 이원준(34)이 제62회 KPGA선수권에서 우승했다. 기다리던 우승은 그렇게 소리없이 찾아왔다. 이원준은 그러나 골프를 시작한 후 가장 기쁜 날 “아직 한(恨)이 다 풀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가슴 속에는 여전히 크고 단단한 응어리가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어느 인생이든 변곡점은 있기 마련. 이원준에겐 2006년 9월 삼성베네스트오픈이 그랬다. 쉽게 우승할 줄 알았는데 김경태라는 복병이 있었다. 여유있게 선두를 달리던 이원준은 10번 홀에서 20m가 넘는 이글 퍼트를 집어넣은 김경태에게 덜미를 잡혔다. 만약 그 때 우승했다면 그의 골프 인생은 좀 더 수월해졌을 것이다.15세의 늦은 나이에 골프를 시작했지만 이원준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190cm의 건장한 체격에 350야드를 날리는 장타력은 한국인이 갖기 힘든 자산이었다. 국제 대회에서 이를 눈여겨 본 허광수 현 대한골프협회 회장이 LG그룹 고(故) 구본무 회장에게 이원준의 후원을 부탁했다. 2007년 말 LG그룹과 10년 장기계약을 맺은 이원준은 수순대로 PGA투어에 도전했다. 서양 선수들조차 부러워 할 하드웨어를 갖춘 이원준은 그러나 소프트웨어에 문제가 있었다. 경기의 기복이 너무 심했다. 이글이나 버디 숫자도 많았지만 더블보기나 트리플 보기도 많았다. 공격 일변도의 플레이 스타일이 결정적인 순간 발목을 잡았다. 결국 PGA투어 Q스쿨에 낙방한 이원준은 2부 투어에서 5년을 보내야 했다. 힘들고 불운한 시간이었다. 성공을 위해 ‘눈물 젖은 빵’을 먹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몸과 마음이 망가지고 있었다. 이원준은 골프를 하면 안되는 선천적인 기형을 갖고 있었다. 오른쪽 손목 뼈가 웃자라 다른 조직을 망가뜨리고 있는 줄 몰랐던 것이다.
결국 2012년 골프를 접어야 했다. 오른쪽 손목을 쓸 때 마다 통증이 심해 병원을 찾았는데 손목 연골이 닳아 없어져 더 이상 골프를 칠 수 없다고 했다. 낙담한 이원준은 한동안 방황하다 호주에서 의대 진학을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의사가 돼 자신처럼 부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골프의 신(神)은 그러나 이원준을 놓아주지 않았다. 어느날 라운드를 하자는 친구의 제안에 2년 만에 골프를 쳤는데 거짓말처럼 손목이 아프지 않았다. 이원준은 가족과의 상의 끝에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Q스쿨에 응시했다. 당시 만난 이원준은 "너무 아쉬움이 크니 마지막으로 도전해 보자는 심산이었다"고 했다. 결국 무사히 Q스쿨을 통과했고 2015년부터 일본 투어에서 뛰면서 4년째 시드를 유지하고 있다. 이원준의 우승과 관련해 부친 이찬선씨 얘기를 빼 놓을 수 없다. 부친 이 씨는 항상 양 손에 목장갑을 끼고 아들의 경기를 봤다. 손에 땀이 너무 나기 때문이었다. 호주 시드니에서 건물과 건물 사이 작은 벽 틈에서 시계를 수리하며 아들을 뒷바라지한 이씨는 모든 걸 희생했다. 본인은 힘들어도 내색을 한 적이 없고 언제나 아들의 의견을 존중해줬다. 이원준이 우승 직후 방송 인터뷰에서 아버지 얘기를 하다 울먹인 데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이원준은 KPGA선수권 우승으로 오는 10월 제주도에서 열리는 PGA투어 경기인 CJ컵에 나가게 됐다. 호주에서 국가대표로 활약할 당시 함께 경쟁했던 마크 레시먼이나 제이슨 데이와 다시 경쟁하게 됐다. 그들은 이미 부와 명예를 거머쥔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골프의 신(神)이 다시 한번 이원준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아 그의 가슴 속에 자리잡고 있는 한(恨)과 응어리를 풀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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