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부터 시작된 구두장이의 삶, 이젠 500억대 컴포트화 전문기업 대표로

“시련은 내 친구, 30년간 불경기 아니었던 적 없어…이젠 글로벌화 본격 추진”

바이네르 김원길 대표가 지난 8일 경기도 고양시 소재 본사 공장에서 올 가을 새로 출시할 컴포트화 신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바이네르 김원길 대표가 지난 8일 경기도 고양시 소재 본사 공장에서 올 가을 새로 출시할 컴포트화 신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1978년 8월 충남 서산군 서산읍내 한 구둣방.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17세 앳된 소년이 비짓땀을 흘리며 구두를 꿰매고 있다. 입문 4개월차인 그는 견습공이지만 바느질부터 뒷손질까지 척척 해낼 수 있게 됐다. 10개월이 지난 1979년 3월, 소년은 서울 영등포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 시골에선 더 배울 게 없다는 선배 구두장이 조언에 따른 것이다.

김원길(58) 바이네르 대표의 구두세계를 향한 여정은 그렇게 출발한다.

#.41년이 흐른 2019년 8월 경기 고양시의 바이네르 공장. 김 대표는 생산라인에서 하반기 출시할 새로운 디자인의 구두를 이리저리 뜯어보고 있다. 그는 단박에 가죽이 들뜨고 왼쪽으로 미세하게 비틀어지는 문제를 잡아낸다. 구두장인(匠人) CEO에게는 한눈에 잡히는 모양이다. 생산 중인 재공품의 문제점을 찾아내 개선방법을 직원에게 알려준다. 품질문제는 그 어떤 변명도 양보도 안 된다는 건 철칙이다. 천장에는 “끝없는 품질 개선, 신상품 개발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듭니다”라고 쓴 플래카드가 눈에 박힌다.

1994년 창업 후 15년만에 연매출 500억원대의 컴포트화 전문기업으로 성장, ‘구두왕’으로 불리는 사내. 누구나 그렇듯 시작은 한미했다. 서울 영등포의 작은 구두점, 중곡동의 참스제화, 인천의 케리부룩으로 근무처가 커질 수록 그의 꿈도 커져갔다. 구둣밥 13년만에 부풀대로 부푼 꿈은 ‘내 사업을 해보자’로 귀착된다.

1990년 구두 밑창 등 부속품을 제작하는 원길상사를 차린 것. 이후 1994년 법인 전환으로 ㈜원길→안토니를 거쳐 오늘날의 바이네르로 정착된다.

“숙련공이던 스물 대여섯 그 시절 나에게는 아무리 고민해도 풀리지 않는 숙제가 있었다. ‘높은 수입을 유지하면서도 구두의 품질을 높이는 방법이 없을까?’ 업계엔 그 누구도 그 물음에 대해 답을 주는 사람이 없었다. 방법은 하나였다. 그 질문에 답을 얻는 법은 내가 기술자를 그만두는 것이었다.”

“구두 기술자로 일해서는 죽을 때까지 구두산업 전체를 볼 수가 없겠다 싶었다. 그러나 관리업무를 배우고 영업을 해서 경영자가 되면 산업이 보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1985년 나는 회사에 생산관리부로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이후 영업관리를 하며 사내 최고 매출을 잇달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시기와 질투였다. 1990년 회사와의 인연은 그렇게 끝이 났다. 결과적으론 나를 내쫓아준 회사가 지금은 고맙기도 하다.”

김원길은 당시 쫓겨난 회사보다 몇 배나 큰 회사를 만들었다. 옛 사장도 종종 연락해 그에게 자랑스럽다는 말을 하곤 한다고 했다. 바이네르는 국내 컴포트화 1위 기업이다. 100여명의 구두장인들이 매일 1000켤레 이상의 수제 컴포트화를 생산한다. 생산 제품도 구두, 골프화, 스니커즈, 운동화 등 200여종에 달한다.

김 대표는 ‘좀 놀 줄 안다’는 얘기를 듣는다. 취미도 다양하다. 여행, 운동, 요리, 노래는 물론 사회봉사 활동도 또다른 그의 즐거움이다. 운동만 해도 언더파의 골프실력을 비롯해 스키, 수상스키, 요트, 승마 등이 그가 즐기는 것들. KPGA에서 3승을 한 김우현(28) 프로가 그의 아들이다. 어릴 때부터 줄곧 골프장을 데리고 다닌 결과다.

바이네르 김원길 대표와 프로골퍼인 아들 우현(왼쪽).
바이네르 김원길 대표와 프로골퍼인 아들 우현(왼쪽).

여행을 통해선 삶과 문화, 자연경관의 다양성을 알아가고 있다. 그 재미에 세계 각국을 돌아다닌다. 요리솜씨도 구두장인의 손재주를 닮은 것일까? 손님들을 초청해 요리사 없이 제철음식을 척척해 대접하곤 한다. 특히, 전국 각지에서 공수해온 재료로 지인들과 요리로 만나는 독특한 소통법으로 유명하다.

그는 노래도 직접 만들어 부른다. 노랫말을 쓰면서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고 용기를 얻는다는 것. 매년 해오는 전국 순회 효도잔치에서 그는 자작곡 ‘힘들어도 괜찮아’를 열창한다. 악을 쓰면서 긍정의 에너지를 충전한다. 남에게도 긍정의 힘을 전파한다.

“힘들어도 괜찮아. 힘든 건 나의 추억이니까. 힘들어 쓰러지면은 오뚝이처럼 일어날 거야. 시련아 덤버랴, 힘들수록 내 미래는 빛이 날 거야∼.”

일도 그에겐 즐거운 놀이가 되고 있다. 그속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실패와 성공도 놀이의 일부가 된 것이다. 즐기는 자를 이길 방법이 있을까?

김 대표는 “모든 것이 다 즐겁지만은 않았다. 힘든 일도 많았다. 하지만 힘들다고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내 것으로 만들었다”며 “한번 왔다 가능 인생, 정말 가치 있게 살아야 한다. 인생의 굽이굽이에서 수많은 역경과 시련을 맞닥뜨릴 때마다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오늘날 즐겁고 행복한 내가 있기까지 모든 과정이 그랬다”고 했다.

불경기 역시 그의 눈엔 긍정이다. 사업을 한지 30년이지만 한번도 불경기가 아니었던 적이 없었단 것이다. 따라서 바이네르에선 불경기란 단어 자체가 금기어다.

김 대표는 “일을 못하는 직원일수록 매출 부진에 대해 불경기 탓을 한다. 불경기가 시작되면 불경기 상황에 맞는 구두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상품으로 출시하면 된다”며 “엄밀히 말해 구두가 안 팔리는 것은 팔리는 구두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지 경기가 좋고 나쁜 탓이 아니다. 그럼 불경기 땐 굶어 죽으라는 소리냐. 긍정적으로 보는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바이네르는 올 가을 국내 코스트코 매장에 여성용 앵클부츠 9000여켤레를 신규 납품한다. 공장에서는 관련 제품 생산이 한창이다.

바이네르의 남은 목표는 글로벌 시장 진출. 중국 시장에 샘플을 보내 주문을 기다리는 중이다. 동남아시아와 중동에서도 바이어들이 찾아오고 있다. 내년 쯤이면 아시아권 곳곳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김 대표는 예상이다. 특히, 아시아인의 족형 데이터를 확보, 이에 맞는 제품을 개발해놓고 있어 호응을 기대하고 있다.

세상이 필요로 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는 그것이 바로 가치라고 본다.

김 대표는 “최근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협력업체들이 힘들어 하고 있다. 원부자재 가격을 올려달라는 얘기도 한다. 어렵다는 것 잘 안다”며 “오로지 살길은 좋은 제품과 서비스다. 세상이 필요로 하는 제품·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조문술 기자/freiheit@heraldcorp.com

바이네르는 각종 컴포트화 뿐만 아니라 골프화(오른쪽 흰색)와 운동화도 생산한다. 정희조 기자
바이네르는 각종 컴포트화 뿐만 아니라 골프화(오른쪽 흰색)와 운동화도 생산한다. 정희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