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숙적 비난·흑인차별 방관 등

트럼프와 구원 있는 지역 민심 돌아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애리조나주(州)에서 역습을 당한 뒤 위스콘신에서 결정타를 맞고, 미시간에서 쓰러졌다.’

‘11·3 미국 대선’ 이튿날인 4일(현지시간) 개표 결과를 놓고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간 법정 공방까지 예고된 가운데 신경전의 단초를 제공한 장면을 압축한 말이다.

애리조나·위스콘신·미시간은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모두 승리한 6대 경합주에 속해 백악관 입성의 발판이었다. 이번엔 ‘파란색의 대이동(Big Blue Shift)’ 때문에 패배의 시발점이 되는 분위기다. 모두 트럼프 대통령과 사연·구원(舊怨)이 있는 지역이다.

애리조나가 ‘파란색(민주당 상징색)’으로 변한 건 역사적이다. 1948년 이후 공화당이 꽉 잡고 있었다. 선거일 당일 밤 폭스뉴스가 애리조나의 승자를 바이든 후보로 예측하고 이날 새벽 3시께 AP도 같은 전망을 내놓았다.

2년 전 사망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공화당 텃밭의 표심을 흔들었다는 평가다. 애리조나에서 35년 의정활동을 한 터줏대감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베트남전 참전용사로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포로로)붙잡혔기 때문에 전쟁영웅이 아니다”라며 2008년 대선후보까지 지낸 매케인 의원을 비하했다. 반면 매케인 의원은 막역했던 바이든 후보에게 2020년 대선엔 꼭 출마하라고 말하는 등 우정을 나눴다.

이런 장면을 모두 기억하는 애리조나 유권자는 매케인 의원의 부인 신디 매케인이 바이든 후보 지지선언을 하고, 정권인수팀에 합류하는 것까지 지켜보며 표심을 정한 걸로 보인다.

위스콘신의 스토리는 더 극적이다. AP·ABC·폭스뉴스·뉴욕타임스(NYT) 등 상당수 매체가 이날 바이든 후보의 승리를 예상하거나 선언했다. WP집계를 보면, 바이든 후보(49.4%)가 트럼프 대통령(48.8%)을 0.6%포인트 차로 누른 걸로 나온다. 개표 시작 이후 줄곧 빨간색(공화당 상징색)이더니 이날 동트기 전인 오전 4시40분께 바이든 후보가 역전 드라마를 쓰기 시작했다. 러스트벨트(북동부 쇠락한 공업지대)까지 파란 물결이 치고 들어오는 신호였다. 오전 8시께엔 바이든 후보가 격차를 0.7%포인트까지 벌리기도 했다. 득표수로는 바이든 후보가 2만표 가량 앞섰다.

‘케노샤의 반란’이다. 개표 초반엔 트럼프 대통령이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케노샤의 부재자 투표 개표가 진행되면서 바이든 후보가 9500표를 추가, 트럼프 대통령과 차이를 2700여표 차이로 대폭 줄였다. 이게 바이든 후보가 위스콘신에서 역전하는 계기가 됐다고 지역 언론인 밀워키저널센티넬은 분석했다.

위스콘신 최남단에 있는 케노샤는 지난 8월 비무장 상태인 흑인 제이콥 블레이크가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경찰에 무차별 총격을 당해 흑인 차별에 항의하는 시위가 불붙었던 곳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지를 방문, 피해자를 위로하기보단 시위를 국내테러로 규정해 원성을 사고 논란을 불렀다. 이 지역 민심이 돌아서게 하는 계기가 됐다는 지적이다.

미시간은 바이든 후보가 지난달 31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유세에 동반 출격한 효과를 낸 걸로 보인다. 개표 시작 이후 계속 밀리다 전세를 역전시켜 바이든 후보가 49.8%로 트럼프 대통령에 1.3%포인트 앞서 있다. 폭스뉴스·블룸버그·CNN· NBC 등이 바이든 후보의 승리를 예상했다.

폴리티코는 이로써 바이든 후보가 선거인단 264명을 확보해 1개 주만 더 추가하면 승리하게 된다고 했다. 미시간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우세였는데 4년 전 트럼프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탈환하는 것이다. 홍성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