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인간과 생물, 붙박이 존재로 인식

인간아종이론, 이주·이주민 혐오 사고로

2015년 아랍의 봄 1500만명 대이동

美 유럽, 이주민에 범죄·전염병 올가미

모든 생물, 환경과 기후에 따라 매년 이동

욕상생물 10년에 20km 극지 향해 행진

정주형 바둑판점박이나비는 멸종 위기

기후변화에 이주는 인간사회 보존의 길

“앞으로 진행될 이주가 변화하는 기후의 속도를 충분히 따라잡을 수도 있지만, 갈수록 늘어나는 증가로 볼 때 생물다양성과 복원력 있는 인간사회를 보존하는 최선은 이주일 수 있다.”(‘인류, 이주, 생존’에서)
“앞으로 진행될 이주가 변화하는 기후의 속도를 충분히 따라잡을 수도 있지만, 갈수록 늘어나는 증가로 볼 때 생물다양성과 복원력 있는 인간사회를 보존하는 최선은 이주일 수 있다.”(‘인류, 이주, 생존’에서)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베네수엘라에서 회계사 교육을 받은 장피에르는 아내와 일곱 살짜리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가는 이민 행렬에 몸을 실었다. 콜롬비아 항구 마을에서 다른 이주자 100명과 함께 출발한 장피에르 가족은 파나마 국경지역인 다리엔 정글에 도착, 강도와 뱀의 공격과 식수부족에 시달리면서 정글을 벗어났지만 앞으로 멕시코를 지나 미국 국경을 넘을 때까지 수천 킬로미터의 위험한 여정이 남아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국제 비정부기구 관리자로 일한 굴람 하크야도 탈레반 반란군을 피해 가족과 함께 독일로 이주할 계획이다. 산을 넘어 파키스탄으로, 다시 이란으로 이동하면서 아내는 쇼크로, 한 아들은 심한 탈수로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다. 그렇게 터키에 도착한 그들은 밀수업자를 통해 그리스 섬에 도착, 다시 최종 목적지인 독일로 가기 위한 여정을 준비해야 한다.

이들처럼 수많은 이들이 살기 위한 죽음의 여정에 나서고 있지만, 난민 혹은 이주자를 반기는 곳은 없다.

‘인류, 이주, 생존’(메디치미디어)의 저자 소니아 샤 역시 인도계 미국 이민자 출신의 부모에게서 태어나 미국 시민으로 살았음에도 피부색은 그를 구별지었다. 결혼 후 남편과 함께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했지만 그곳에서도 인종 차별적 시선을 피하긴 어려웠다.

이주자에 대한 거부와 반감은 저자에 따르면, 18세기 자연계를 처음으로 분류한 린네 등 자연사학자에서 비롯됐다. 린네는 인간과 야생생물이 아주 오래 전부터 각자의 서식지에 대체로 붙박여 살아간다고 봤다. 린네는 자연에서 가장 확연한 이주마저 무시했다. 새들이 대륙을 건너 이동한다는 생각은 기독교의 질서정연한 세계, 안정되고 조화로운 자연계라는 패러다임과 맞지 않았다. 생물종과 인간은 고립된 자신의 장소에서 생존한다는 린네의 분류법과 인간아종이론, 즉 서로 다른 대륙에 사는 사람들은 서로 생물학적으로 이질적이라는 주장은 수 세기에 걸친 외국인 혐오와 인종폭력의 도화선이 됐다.

전후 집단생물학자들은 나비와 쥐 군집의 역학연구를 근거로 사람들을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두면 굶주린 외국인 무리가 국내에 들끓게 될 거라는 주장을 폈다. 이주를 무질서의 한 형태로 여기는 과학분야의 사고방식은 대중문화에도 전파됐다. 20세기 초 미국의 국경 폐쇄에 영향을 미치고, 나치와 파시스트에 영감을 불어넣었으며, 오늘날 반 이민 로비스트와 정책입안자에게까지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최근에는 이주에 대한 위험성이 노골화되는 추세다.

저자는 수많은 연구사례와 관찰을 통해 생물종의 이동 현상을 광범위하게 보고하며, 살아있는 생명체의 이동이 생존을 위한 본능임을 보여준다.

반면 이동을 하지 않는 정주형 생명체, 집순이의 경우, 도태할 수 밖에 없음을 바둑판점박이나비를 통해 보여준다. 이 나비는 한때 멕시코의 바하칼리포르니아주에서부터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까지 북미의 서해안 산악지대 곳곳에서 군락을 이뤄 흔히 목격됐지만 기후변화와 도시팽창으로 남부 캘리포니아 산미겔산맥에서 드물게 발견되고 있다. 기후변화와 도시팽창에 따라 서식지가 줄면서 이동한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응해 목숨을 지키기 위한 이동은 다른 나비종은 물론 해양생물과 새에게서도 발견된다.

과학자들이 추적한 4000종의 생물 중 40~70퍼센트가 지난 수십 년 동안 분포지역을 바꾸었고, 이 중 90퍼센트 가량은 변화하는 기후에 맞춰 더 시원한 땅과 물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육상의 종들은 평균적으로 10년에 약 20킬로미터를 극지를 향해 꾸준히 행진하고 있으며, 해양생물은 10년에 평균 약75킬로미터를 움직였다.

생명은 히말라야 같은 거대한 장벽에도 붙박이지 않고 조금씩 움직이고, 떠다니고, 기어올랐다. 숲은 1880년 이후로 10년마다 19미터씩 산 위쪽으로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진달래속식물들과 사과나무들, 그 속에서 살아가는 곤충들도 따라 움직이고 있다. 히말라야 북쪽의 고위도 툰드라 지역인 티베트에서 사람들이 2009년 처음으로 모기에 물렸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야생의 대이동이 모든 대륙과 대양에서 일어나고 있다.

인간의 이주는 더 충격적이다.

2008년부터 2014년 사이 홍수나 폭풍, 지진 같은 이유로 매년 2600만 명이 이동했다. 아랍의 봄은 대이동을 촉발했다. 2015년 한 해만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등으로부터 100만명 이상이 유럽을 향해 움직인 것을 비롯, 1500만 명 이상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나라에서 탈출해야 했다.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장 많은 숫자다.

저자에 따르면, 농촌 인구의 도시 유입도 주목할 만한 이동 현상이다. 2030년이 되면 대도시로 흘러드는 사람의 움직임이 가속화해 대다수 인구가 도시 거주적 상황이 처음으로 펼쳐진다. 2045년이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사막지대가 더 넓어져 6000만 명이 거주지를 떠나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2100년이면 해수면 상승으로 1억8000만 명이 추가로 대이주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저자는 “이주는 환경변화에 대한 아주 오래된 대응이자 숨쉬기만큼이나 필수적인 생물학적 원칙”이라며, 여러 근거를 통해 이주가 사회파괴의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특히 2015년 유럽으로의 100만명 이주 행렬 당시, 언론과 정치인이 합작해 만든 반이주 혐오 분위기, 범죄와 전염병, 경제에 부정적이라는 허무맹랑한 서사가 어떻게 생산됐는지 실제 데이터를 중심으로 하나하나 파헤친다. 또한 긍정적인 이주 효과도 소개한다.

책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이주 현상과 생물종의 이동을 과학적 자료를 제시하며 부정적 시각에 갇힌 다문화사회와 기후변화에 시각을 새롭게 열어준다.

인류, 이주, 생존/소니아 샤 지음, 성원 옮김/메디치


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