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로 그래미 어워즈 두 번째 도전
비영어권·보이그룹 한계 딛고 후보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후보는 쟁쟁했고, 경쟁은 치열했다. 방탄소년단(BTS)의 아시아 팝가수 최초 그래미 수상은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수상과는 무관하게 방탄소년단은 여전히 새 역사를 쓰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4일(한국시간) 오전 열린 ‘제64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 후보에 올라 강력한 아티스트들과 경합을 벌였으나 도자 캣과 SZA에게 그라모폰(그래미 트로피)을 넘겨주게 됐다.
그래미 어워즈는 1959년 시작해 미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시상식이자 전 세계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시상식으로 꼽힌다. 방탄소년단은 지난해에 이어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 후보에 올랐다. 한국 대중가수가 그래미 후보에 오른 것은 방탄소년단이 처음이다.
올해 시상식에선 방탄소년단의 수상 가능성도 크게 점쳐졌다. 지난해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 10주간 왕좌에 오르며, 2021년 최다 1위를 거머쥔 메가 히트곡 ‘버터(Butter)’는 방탄소년단의 강력한 총알이었다. 뒤이어 발표한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 콜드플레이와의 협업곡 ‘마이 유니버스(My Universe)’까지 ‘핫 100’ 1위에 오르며 방탄소년단으로서도 역대 최대 성취를 달성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도 수상 소식을 전했고,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에선 대상 격인 ‘아티스트 오브 더 이어(Artist Of The Year)’를 받아 기대감이 컸다.
약점은 쟁쟁한 후보군이었다.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에는 콜드플레이, 도자 캣·SZA, 토니 베넷·레이디 가가, 저스틴 비버·베니 블랑코가 후보로 올랐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그래미 어워즈는 후보군을 정할 때 아티스트의 메시지가 들어가 있고, 진솔하면서도 자전적인 이야기,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곡을 치하해왔다”며 “‘버터’는 지난해 후보에 오른 ‘다이너마이트’와 마찬가지로 팝댄스곡으로, 코로나 시대를 위로한 곡이지만 지금의 댄스곡 중엔 그렇지 않은 곡은 없다”고 평가했다. 박희아 대중음악평론가는 “‘버터’는 굉장히 임팩트 있는 곡이었으며 코로나19 시대의 희망을 준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으나 후보에 오른 다른 곡들에 비해 편안하게 접근하는 노래였다. 형태 면에서 차이를 보인 점이 경쟁에서 힘든 부분이었다”고 말했다.
반면 수상의 영예를 안은 도자 캣과 SZA는 “레트로의 흐름을 만든 스테디셀러 곡”(정민재 평론가)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저스틴 비버는 ‘슈퍼스타로의 외로움’을 진솔하게 써낸 곡으로, 히트곡이 아니었음에도 후보에 올랐다. “그래미 어워즈가 아티스트의 메시지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의미”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런가 하면 토니 베넷은 96세의 재즈계의 전설로, 이번 앨범은 유작 가능성이 클 것으로 음악계에선 보고 있다. 정민재 평론가는 “토니 베넷의 이번 앨범은 스스로도 은퇴 앨범이라고 생각하며 낸 작품인 데다 미국 전통 팝송을 복각한 만큼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방탄소년단의 수상은 불발됐지만 2년 연속 후보 입성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깊다. 긴 시간 이어온 권위만큼 그래미 어워즈는 보수적인 음악 시상식의 상징이다. 유색인종, 비영어권 음악을 홀대한다는 비판도 많았다. 뮤지션과 음악산업계를 중심으로 다양성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그래미도 레코딩 아카데미회원의 인종·성별·장르를 다양하게 구성하려는 노력을 이어왔다.
방탄소년단은 이런 분위기에서 2년 연속 후보에 올랐고, 2020년 이래 3년 연속 퍼포먼스 무대를 꾸미며 그래미와의 인연을 이어왔다. 보이그룹을 선호하지 않는 그래미의 역사를 돌아보면 이례적인 대접은 받는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정 평론가는 “그래미 어워즈는 보이그룹이 강세이던 2000년대 초반에도 보이그룹을 선호하지 않았다”며 “그런 흐름에도 방탄소년단을 두 번 연속 후보에 올린 것은 이들의 음악과 행보를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박희아 평론가는 “그래미 어워즈가 가진 서구 중심주의의 관점에선 팝음악시장의 본거지는 서구이고 방탄소년단은 아시아권 가수인 데다 보이그룹인 만큼 하위 음악이라고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데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 큰 의미가 있고 주류 음악시장에서 인정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정 평론가는 “올해 시상식은 특히 방탄소년단이 아니라도 후보들이 쟁쟁했던 만큼 경쟁을 통해 트로피 경합을 벌였다고 볼 수 있다”며 “미국 시상식인 그래미의 보수적 성향으로 한국을 배척한다거나 거리두기를 한다는 해석은 편협할 수 있다. 방탄소년단은 앞으로 앨범이 나올 때마다 그래미 후보를 번번이 기대할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됐다”고 말했다.
방탄소년단은 ‘제64회 그래미 어워즈’ 본시상식에서 퍼포먼스 아티스트로 이름을 올려 ‘버터’ 무대를 선보였다. 무대 위와 올해 그래미 어워즈 후보들이 앉은 객석에서 등장한 방탄소년단은 신선한 편곡을 더한 무대로 기립박수와 함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