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경과 외교문서 공개, 막전막후 스토리

“北, 韓 유엔 가입에 불안 느껴”

北 “유엔연설 때 거론 말라” 요청

韓, 소련 차관에 “북·중 설득을”

국제사회 “통일 방해하지 않는다”

北도 결국 ‘동시가입’ 입장 선회

외교부가 15일 비밀해제 외교문서를 공개한 가운데 북한은 1991년 한국의 유엔 단독가입을 막기 위해 전방위 외교를 펼친 것으로 나타났다. ① 1991년 9월 17일(현지시간) 유엔본부에서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이 확정된 뒤 노창희 유엔대사(오른쪽)가 박길연 북한 대표부 대사와 축하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 ② 뉴욕한인회 교민들이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승인을 환영하고 있다. [대통령기록관] ③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을 승인하는 안보리 결의 702호. [외교부]
외교부가 15일 비밀해제 외교문서를 공개한 가운데 북한은 1991년 한국의 유엔 단독가입을 막기 위해 전방위 외교를 펼친 것으로 나타났다. ① 1991년 9월 17일(현지시간) 유엔본부에서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이 확정된 뒤 노창희 유엔대사(오른쪽)가 박길연 북한 대표부 대사와 축하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 ② 뉴욕한인회 교민들이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승인을 환영하고 있다. [대통령기록관] ③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을 승인하는 안보리 결의 702호. [외교부]

“유엔 내 북한 지지 비동맹그룹의 최근 동향에 비춰 북한은 한국의 유엔 가입을 저지할 수 있는 지지 기반이 없어졌다”

소련의 거부권 행사로 불발돼온 유엔 가입을 위한 한국과 ‘통일된 하나의 조선’으로 유엔에 가입해야 한다는 북한의 외교전이 치열한 가운데 비동맹국들의 입장이 한국으로 기우는 흐름이 드러난 알제리 측의 평가다. 북한은 국제사회 고립을 우려해 1991년 5월 27일 기존 입장을 철회하고 유엔 동시가입으로 선회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외교부는 치열한 외교전 끝에 분단 46년 만인 1991년 9월 18일 각각 독립된 국가 자격으로 남북이 유엔에 동시가입한 내막 등이 포함된 30년 경과 외교문서 2466권(40만5000쪽 분량)을 원문해제 요약본과 함께 15일 공개했다.

이전까지 한국의 유엔 가입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소련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되곤 했다. 이에 외교부는 한국에 부정적인 소련과 중국이 상임이사국으로 있는 안보리보다 특정국가의 거부권이 없어 다수결 원칙이 적용되는 유엔총회에 결의안을 제출하는 방안 검토에 들어갔다.

외교부가 자체 분석한 판세에 따르면 한국의 유엔 가입에 대해 안보리 이사국 중 소련과 남예멘, 루마니아가 ‘불확실’, 중국과 쿠바, 에티오피아가 ‘반대’로 예상됐다. 여기에 라오스, 베트남, 알제리, 동독 등도 ‘반대’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됐다. 이후 남북한은 각각 지지를 얻기 위한 전방위 교섭에 나섰다. 한국은 1990년 9월 30일 한·소련 수교 이후 공동가입 지지로 돌아선 소련을 통해 중국과 북한을 설득하는 데 주력했다. 1991년 1월 7일 한·소련 정책협의회 참석차 방한했던 이고르 로가초프 소련 외무차관은 귀국길에 중국에 들러 “한국은 91년 중 유엔 가입을 희망하는 바, 소련으로서는 중국이 이에 반대하지 않기를 희망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같은 해 4월 다시 한국을 찾은 로가초프 차관에게 이상옥 외교부 장관은 북한 설득도 요청했다. 다만 로가초프 차관은 “대북한 설득은 소련으로서도 매우 하기 어려운 과제”라고 토로했다.

북한도 적극적인 외교전을 펼쳤다. 이란 측은 “북한이 한국의 유엔 가입에 불안을 느끼고 있다”며 “북한 측은 이란이 유엔에서 연설할 때 유엔 가입 문제를 거론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주리비아한국대사관에 따르면 김영남 북한 부총리 겸 외교부장은 3월 4~7일 리비아를 찾아 한국의 단독가입을 반대하는 북한의 입장을 유엔과 비동맹회의에서 지지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이 독자적으로 유엔 가입을 신청하는 경우 북한도 즉시 가입 신청할 것”이라는 흐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국제사회는 독일과 예멘 사례를 들어 한국 입장을 지지했다. 수단 측은 “북한의 단일의석 가입안은 불합리하고 비현실적”이라며 “통일 전 유엔 가입이 통일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은 예멘의 경우에서도 입증됐다”고 평가했다.

북한의 전방위 외교전에도 한국은 ‘힘의 대결’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1991년 5월 방북한 리펑 당시 중국 총리는 북측에 “한국의 유엔 가입 신청에 더는 반대 태도를 유지하기 어렵다”며 “한국이 단독가입에 성공한 뒤에는 북이 가입하려 해도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소련과 중국의 기류가 예사롭지 않게 돌아가자 북한은 1991년 5월 27일 유엔 분리가입 방침을 처음 밝혔고, 마침내 9월 17일 제46차 유엔총회에서 남북한은 159개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가입을 승인받았다.

불가리아 측은 북한의 태도 변화 배경에 대해 “소련의 한국의 유엔 가입에 관한 입장 지지와 중국의 한국 입장 지지 태도가 배경이 됐을 것”이라며 “한국의 유엔 가입에 관한 입장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이었다는 점도 배경을 찾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스웨덴 측에 따르면 북한은 분리가입 방침 성명을 발표하기 직전 중립국 감시위원단을 초치해 “앞으로 북한은 중립국 감시위원단을 더 이상 인정할 수 없으며, 만약 그대로 남겠다면 모든 비용은 자비로 충당하라”고 통고하기도 했다. 1991년 5월 31일 주유엔 벨기에대표부에 따르면 북한은 안보리 이사국을 대상으로 북한의 유엔 가입 문제에 대한 입장을 재타진하고, 가입 절차를 문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방국 담당관들은 “북한이 생각보다 절차 문제를 충분히 숙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 공개목록과 외교사료해제집 책자는 주요 연구기관·도서관에 배포되며 외교사료관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원문은 외교사료관을 방문하면 열람 가능하다. 외교부는 1994년부터 외교문서 공개 규칙에 따라 30년이 경과된 외교문서에 대한 검토를 거쳐 공개해오고 있다. 최은지 기자


silverpaper@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