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표’를 구하라.
집시표는 경찰에 신고된 집회·시위 일정표의 줄임말이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의 하루는 보통 집시표를 챙기는 일로 시작한다. 사회적 약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순간을 놓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듣는 게 일인 기자들은 어디에 가서 누구로부터 뭘 들을지 늘 찾는다. 건너편에서는 각자의 사연과 억울함을 지닌 이들이 통의동으로, 국회 앞으로, 또 어딘가로 길을 나선다.
각종 미디어가 새롭게 나왔지만 집회는 여전히 기본적 의사표현 수단 중 하나다. 이해되지 않는 일로 거리에 나온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는 이들에게 말한다. “알아달라”고, “들어달라”고. 멈춰 듣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사람도 있다. 이 같은 관심은 “고맙다”는 말이면서 “지나치지 말아 달라”는 부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새로운 대통령과 함께하는 ‘용산 시대’ 시작까지 석 주 남았다. 주목할 것은 집회의 미래, 다르게 말해 국민이 목소리를 낼 공간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경찰은 경비인력을 배치하고, 대응 훈련과 모의 교통통제 등을 하고 있다. 시민과 새로운 권력자의 공존을 위한 준비다. 집회와 관련해서는 용산 집무실도 관저와 마찬가지로 100m 이내 집회·시위를 금지한다는 방침, 더불어 별도의 대안공간을 마련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경찰에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도 기대와 긴장이 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테다. 시민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지난 18일 인수위는 현행 청와대 국민청원도 손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목소리를 낼 환경들이 달라지고 있다.
권력의 이동과 함께 집회의 무게중심도 고스란히 바뀌었다. ‘집회 1번지’가 청와대 앞에서 통의동으로 바뀐 지 한 달. 시민은 “늘어난 행사들로 시끄럽죠”라고 하면서도 “다들 사연이 있을 텐데 하지 말라고는 못 하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교통 불편과 지나친 소음을 일으키는 몇몇 집회문화는 분명 개선이 필요하다. 그러나 통제받지 않고 정당한 방식으로 집회와 시위를 할 권리가 온전히 보장될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최근 기자가 찾은 용산 국방부 청사 앞 왕복 6차선 도로는 위험하게 느껴졌다. 이제 용산 어디에 서야 대통령의 눈에 띌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는 어려운 고민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눈에 띄기 위해, 권력자 앞에 나서기 때문이다. 인권운동공간 ‘활’의 랑희 활동가는 “집회의 핵심 중 하나는 장소”라며 “항의할 대상의 시선에서 내가 분리되면 집회를 할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집회금지 방침에 대한 비판이 나오자 ‘별도 장소를 마련해주겠다’는 식이 아니라 당선인 쪽에서 먼저 ‘얼마든지 집무실 인근에서 집회 가능할 방법을 찾겠다’는 말이 나왔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일 좋은 것은 집회를 열 필요가 없는 사회가 되는 것이겠지만 지금껏 그런 시대는 없었다. 시민은 새로운 곳에서도 어떤 방식으로든 집회를 이어나갈 것이다. 시민 피해는 최소화하고, 합법적 집회·시위의 자유는 보장되는 용산의 거리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hop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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