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안보 지형변화에 칼리닌그라드 긴장 고조
발트해 연안에 위치한 러시아의 역외 영토
서유럽 향하는 길목이자 러시아 방어 최전선
주변국 관계 이유 일부 주민 분리독립 시도
‘육지 속 섬’ 러 제재 이후 고립 심화 고통
스웨덴·핀란드까지 나토 가입 현실화하면
사방이 나토국 포위…일촉즉발 위기 올수도
북유럽의 중립국인 스웨덴과 핀란드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추진하면서 북유럽 안보 지형 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 중에서도 러시아의 발트해 역외 영토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 정세 급변 시 화약고로 지목된다.
러시아 본토와 떨어져 있는 칼리닌그라드는 동서로 리투아니아, 폴란드와 국경이 닿아있고, 발트해를 가로질러 스웨덴, 핀란드와 마주하고 있다. 만일 스웨덴과 핀란드까지 나토 동맹국이 되면 이 곳은 사방이 나토에 포위되는 상황이 된다. 이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발트 연안에 핵무기를 배치하고 지역 방어를 강화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터다. 실제 러시아는 지난달 초 칼리닌그라드 서쪽에서 핵탄두를 탑재한 이스칸데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모의훈련을 실시했다.
나토는 이달 말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정상회의를 앞두고 지난 6~10일(현지시간) 폴란드와 발트해 국가(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전역에서 17개국 연합국이 참여한 대규모 훈련을 실시하고 동쪽의 방위력을 강화하고 있어 발트해의 긴장은 점점 더 고조되고 있다.
▶칼리닌그라드는 어떤 곳?=러시아의 비지(飛地) 칼리닌그라드는 면적 1만5125㎢(우리나라 충청도 크기)에, 인구 103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 곳은 원래 독일 땅이었다. 1255년 로마 가톨릭교회에 소속된 기사수도회 튜턴기사단(독일기사단)이 항구를 만든 뒤 독일인이 대거 이주했다. 이후 동프로이센의 주도 쾨니히스베르크로서 수세기 동안 번성을 누렸다.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와 한나 아렌트, 동화 ‘호두까기 인형’을 쓴 독일 작가 E.T.A 호프만이 이 곳 출신이다. 칸트는 거의 평생을 퀴니히스베르크에서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 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러시아는 독일 영토이던 이 곳을 빼앗아 옛 소련의 리투아니아 공화국 땅으로 편입시켰다. 칼리닌그라드라는 이름은 볼셰비키 혁명 당시 러시아 정치인 미하일 칼리닌에서 따왔다. 러시아령이 되면서 많은 독일인들이 쫓겨났고, 러시아인과 벨라루스인 이민자들이 재정착하면서 러시아화했다.
1991년 옛 소련 해체와 함께 리투아니아도 독립했지만 칼리닌그라드는 러시아령으로 남았다. 1990년 동서독 통일 과정에서 독일 정부가 소련 영토로 인정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트3국의 독립으로 칼리닌그라드는 러시아 본토와 외따로 떨어진 육지의 섬처럼 됐다.
▶나토-러시아 충돌하면 칼리닌그라드는?=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칼리닌그라드는 자산인가 골칫거리인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나토는 러시아가 칼리닌그라드와 벨라루스간에 회랑을 만들기 위해 폴란드와 리투아니라를 침공할 것이라고 우려하지만, 실제 나토와의 전쟁 상황에서 이 곳은 러시아에게 여러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며 러시아의 딜레마를 지적했다.
러시아군이 발트해로 진출하려면 본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부터 칼리닌그라드를 연결하거나, 우방국인 벨라루스에서 칼리닌그라드를 잇는 육로 회랑이 필요하다. 러시아는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 시절에 육로 단절을 극복하기 위해 칼리닌그라드와 벨라루스 사이 폴란드 북동부 국경지역 수발키 갭(Suwałki Gap)에 국경 횡단 고속도로 건설을 제안했지만 폴란드가 거부했다.
스웨덴 국방연구소 FOI의 조나스 켈렌 연구원은 이코노미스트에 “나토군과 러시아군 사이에 사건이 일어난다면 발트해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경우 칼리닌그라드가 러시아 방어의 최전선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칼리닌그라드에는 현재 중부 유럽 영공을 감시할 수 있는 레이더 시스템이 있고, 2012년에는 장거리 미사일 방어시스템 S-400이, 2016년에는 단거리 이스칸테르 미사일 시스템이 각각 배치돼 있다.
하지만 실전에서 칼리닌그라드는 고립된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러시아군이 대피하기 어렵고, 식량이나 군사 물자 공급도 힘들 수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워싱턴에 본부를 둔 신미국안보센터의 러시아군 전문가 마이클 코프만은 “러시아 영토에서 이처럼 서방 정보원에게 밀착 감시 당하는 지역은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장거리 미사일은 본토에서도 쏠 수 있기 때문에 칼리닌그라드는 러시아 전력 운용 셈법만 더 복잡하게 만드는 지역이란 얘기다.
칼리닌그라드의 주민 정서도 러시아로선 고려해야 할 요인이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를 자주 오가는 주민들은 자유 민주주의 세계에 물들어 스스로를 유럽인으로 생각하기 쉽다. 가디언의 2018년 보도를 보면 칼리닌그라드 주민 70%가 여권을 소지했으며, 이는 러시아 전체 평균(30% 미만)의 두배가 넘었다.
주민들의 분리·독립 요구도 없지 않았다. 2010년 크렘린궁의 친러 주지사 지명에 반발해 독립 시위가 일었으나 러시아가 미디어와 시민사회를 강력하게 탄압하면서 주민투표는 실시되지 못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인 지난 2월 20일께 폴란드에 사는 칼리닌그라드계 주민들이 칼리닌그라드의 독립을 외친 일도 있다. 반러 주민들은 폴란드, 리투아니아와 좋은 이웃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다며, 칼리닌그라드 지역에서 50% 비무장화를 주장했다. 이들은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분리 주민 투표도 실시하겠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러시아 제재까지 더해져 칼리닌그라드의 고립은 점점 더 심화하고 있다. 스웨덴, 핀란드, 폴란드, 리투아니아 등 지근 거리의 서방 국가와 교역이 끊겼고, 교류 조차 힘겨워졌다. 유럽의 많은 하늘 길이 닫혔고 루블화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에 다른 국가로 오가는 항공편은 과거 보다 훨씬 비싸졌다. 이웃 리투아니아는 러시아인의 자국 통과 시 엄격한 조건을 달기 시작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 정부의 경제 활성화 시도에도 불구하고 칼리닌그라드 경제는 수십년 동안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1996년 외국인 투자에 대한 재정 지원과 세제 혜택은 쇠퇴하는 산업 경제를 부양하기 충분치 못했다고 지적했다.
한지숙 기자
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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