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게 가장 재미난 이야기는 ‘스포츠’이다.
관심을 갖고 지켜보면 모든 경기에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경기 전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경기를 지배하고 때로는 승부를 결정짓기도 한다. 내가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의 왕 팬이었을 때, 봄부터 가을까지 두산의 경기를 거의 매일 시청했고 1회에 등판하여 몸을 푸는 투수의 눈빛과 몸짓을 보며 게임의 승패를 가늠해 보기도 했다.
‘오늘 경기는 어렵겠군’ 혹은 ‘이 투수는 자신감이 없어 보여. 김현수와 정면 승부할 배짱이 없어 고의4구로 김현수를 피해 갈 거야. 그러다 뒤에 오는 타자들한테 홈런 한 방이 터지거나 밀어내기로 오늘도 두산이 승리한다’. 나의 예측이 빗나갈 때도 있었지만 타이틀이 걸린 중요한 경기에서 나의 예감은 거의 들어맞았다. 내가 응원하는 두산 베어스와 상대 팀에 대한 자료를 연구해 데이터가 많으면 많을수록 경기 결과에 대한 적중률이 높아졌으니, 스포츠는 이야기이며 또한 과학이기도 하다.
볼도 건드려 안타를 만드는 김현수의 집중력과 뛰어난 개인기, 유희관의 구수한 입담과 재치를 나는 사랑했다. 어린 나이지만 김현수나 유희관은 자신만의 철학이 있었고, 그 철학을 자신의 언어로 전달하는 능력이 탁월했으며, 위기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았다.
또한 경기가 끝난 뒤 ‘오늘의 선수’로 선정된 그들의 인터뷰를 보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잠실구장에서 김현수의 등 번호가 새겨진 두산 베어스의 유니폼을 입고 시구를 했던 일은 내 평생 자랑이며, 영광이다. 사십대 후반, 춘천에 살며 축구와 야구 경기를 보며 나는 중년의 위기를 넘겼다.
춘천의 아이들은 축구 아니면 야구에 미쳐 있었다.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의 운동장은 사이좋게 축구와 야구로 영역이 나뉘어 각자 게임을 즐겼다. 놀이터에서 손에 글러브를 낀 남자아이들이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가 하면, 공원의 공터에서는 여자아이들도 가세해 남녀가 섞이어 공을 차고 놀았다. 한일 월드컵 직후엔 축구가 대세였고, 베이징올림픽 뒤에는 야구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그즈음 내가 오며 가며 마주친 남자아이들 손에는 죄다 글러브와 방망이가 들려 있었다.
애들은 밥만 먹으면 공을 차러 나오는 것 같았다.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경기가 벌어지면 하얀 선 밖의 자투리 공터에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몸을 풀거나 줄을 맞춰 걸으며 교련 연습을 하는 학생들이 있고, 어디에도 끼지 못한 동네 조무래기 하나가 운동장 주위를 맴돌며 형들이 노는 걸 부러운 듯 쳐다보고 있다. 어울려 놀지 못해 구석으로 밀려나 농구 골대 밑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손… 간절한 그 눈빛을 나는 이해한다. 길을 가다 내 앞에 공이 굴러오면 공을 차고 싶어 발이 근질거렸다.
서울로 이사해 장편소설 연재를 시작하며 나는 운동 경기에서 멀어졌다. 매일 하는 야구 경기는 물론, 주말에 축구 경기를 시청하는 재미도 한동안 잊고 살았다. 폭풍이 휘몰아치듯 요란하고 사건 사고가 많았던 오십대를 보내고 요즘 다시 한가해져 스포츠 경기를 보는 재미에 빠져 산다.
스포츠와 독서는 내 인생을 열고 닫는 열쇠이다. 힘들 때 나는 스포츠에 의지했다. 게임에 대한 지나친 열정은 때로 내 인생에 치명적인 독이 되었지만 슬픔과 고통을 잊게 하는 데에 스포츠만 한 게 없다. 오는 11월에 카타르에서 월드컵이 시작되는데 푸른 잔디밭 위에서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새로 떠오를 별은 누구일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시인·이미출판사 대표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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