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필 최초 외국인 음악감독
4년 임기 마치고 오는 23, 25일 고별무대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모든 순간이 에피소드였고, 모든 시간이 마법이었어요. 이렇게 떠나게 돼 무척 슬픕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마시모 자네티(60)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이 이끈 지난 4년의 변화는 놀라웠다. 1997년 창단한 ‘젊은 오케스트라’는 2018년 9월 처음으로 외국인 상임지휘자를 맞았다. 마시모 자네티 감독과 경기필의 ‘궁합’은 좋았다. 6대 음악감독으로 취임해 4년, 자네티 감독과 경기필의 만남은 성장과 도약의 시기였다. 그는 경기필을 탄탄한 음악적 역량과 섬세한 연주력을 갖춘 오케스트라로 이끌었다.
지난 4년을 돌아보는 마에스트로의 한 마디 한 마디엔 아쉬움이 짙게 묻어났다. 18일 서울 중구에서 기자들과 만난 그는 “지난 4년간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면 예술적인 부분은 물론 인간적인 부분에서도 끈끈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런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우린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시작했고, 그 존중을 바탕으로 관계를 쌓아왔어요. 오케스트라와는 가족 같은 느낌이에요. 예술적인 것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좋은 관계를 만들었고, 좋은 감정을 쌓았어요.”
한순간도 허투루 보낸 날은 없었다. 자네티 감독은 “경기필 단원들과 함께 한 모든 순간이 에피소드와 추억이었다”고 말했다. ‘좋은 음악’을 만든다는 책임감을 넘어 함께 하는 모든 날들이 즐거움이었다. 그는 “경기필 단원들과 즐겁게 소통하며 음악을 만들어내고 관객의 호응을 얻어낸 모든 시간이 마법 같았다”고 말했다.
자네티 감독과 경기필의 지난 행보엔 무수한 성취가 쌓였다. 그는 경기필을 처음 만날 당시를 떠올리며 “이미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고, 테크닉이 좋은 오케스트라였다”고 했다. 특히 경기필은 자네티 감독이 거친 NHK 심포니, 차이나 필하모닉 등 아시아 오케스트라와 마찬가지로 “뛰어난 습득력으로 빠르게 발전하는 악단”이었다. 자네티 감독이 세운 목표는 “경기필 만의 연주법과 방식을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오케스트라엔 어느 한 부분만 필요한 것이 아니에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사이의 케미스트리가 중요하죠. 우리 사이에 사용하는 언어와 어휘를 발전시키면서, 다양한 시대와 다양한 작곡가의 작품을 시도했어요.”
이들의 만남은 ‘완성형 오케스트라’로 나아가는 과정이었다. 자네티 감독 취임 이후 경기필은 ‘웅장한 연주’를 잘하는 악단에서 “투명한 음색과 디테일한 부분까지 표현하는” 악단으로 나아갔다. 자네티 감독 역시 “지난 4년의 가장 큰 성과는 오케스트라에 유동성을 주고, 우리만의 사전을 만들어간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19 동안 “한국 기악 연주가들의 탁월한 능력에 주목”, 정지원, 선율, 윤아인, 박재홍, 임주희와 같은 차세대 연주자들의 무대를 마련한 것도 K-클래식의 다음 스텝을 위한 의미있는 시도였다.
물론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임기 4년 중 절반 가량은 코로나19와 함께 한 시기였다. 2018년 9월에 임명, 코로나19와 관계없이 무대에 선 것은 2019년 12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이 마지막이었다. 그렇기에 자네티 감독의 4년은 그의 음악적 탐구를 온전히 추구하기엔 짧은 시간이었다.
자네티 감독은 “통상적으로 유럽에선 오케스트라의 성과를 만들었다고 이야기하려면 완전히 꽉 채운 5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기 첫해엔 14~16개 공연을 했는데, 그 이후엔 다 해도 10회 정도밖에 되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베토벤, 슈만 등 많은 곡을 함께 했지만, 오케스트라와 온전히 무언가를 함께 만들었다고 하기엔, 4년의 시간은 부족했다고 느껴요. 완전한 시간이 아니었기에 큰 아쉬움으로 남아요.”
특히 그는 “코로나19 이후 1년 반 가까이 충분히 지지를 얻지 못했고, 정보 공유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았다”며 “아이디어를 발전시켜냐 하는데, 지지 받지 못해 외로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말러의 작품을 완수하지 못하고, 프랑스 작곡가를 깊이 다루지 못한 것을 큰 아쉬움으로 꼽았다.
자네티 감독의 고별 연주는 베르디의 ‘레퀴엠’(7월 23일 경기아트센터, 7월 25일 롯데콘서트홀)이었다. 그는 “‘레퀴엠’을 의도적으로 마지막 작품으로 고른 것은 아니”라며 “2020년 예정이었던 무대인데, 코로나19로 연기돼 올해 하게 된 것”이라며 웃었다. 그가 들려줄 ‘레퀴엠’은 ‘지금 우리’가 머무는 이 시대에 전하는 울림과 메시지가 적지 않다. 자네티 감독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쟁 중이고, 기후변화와 경기침체, 계속 되는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위기에 직면해있는 이 상황에 시의적절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레퀴엠’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에요. 슈만 브람스 등 기존의 진혼곡이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을 그렸다면, 베르디는 죽기 전에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져요. 죽음은 인류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싸워야 하는 것이라는 시선을 가지고 있죠. 이 작품을 한 단어로 정리라면 ‘왜?’라고 할 수 있어요. ‘왜 죽어야 하는지’, ‘왜 끝나야 하는지’에 대한 궁극적 질문을 던져요. 그건 매우 인간적인 시선이기도 해요.”
마지막 무대를 앞둔 그는 4년을 함께 한 한국 관객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또 다른 내일을 기약했다. 그는 “한국 관객은 오케스트라가 전달하는 느낌을 정확히 읽어내는 매우 수준 높은 관객”이라며 “공연 때마다 배워가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한국 관객에게 너무나 많은 지지를 받았어요. 그동안 경기필이 발전하는 모습을 함께 지켜봐주고, 그 모습을 사랑해주신다는 마음을 크게 느꼈어요. 한국을 떠나지만,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 같아요. 앞으로 경기필과 다시 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거 같아요. 미래의 어떤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그 기회에 언제든지 응할 생각입니다.”
자네티 감독의 후임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새 음악감독은 오는 10월 경기아트센터 사장 부임 이후 결정된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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