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축제마다 오케스트라 결성
페스티벌 정체성 살린 독특한 악단
세계 유수 악단 소속 연주자 총출동
탄탄한 기본기의 ‘어벤저스 악단’
일년에 한 번 축제 공연 넘어
정규 악단 발전 ‘고잉홈 프로젝트’
“음악으로 모인 감동의 가치 지킬 것…
차세대 음악인 양성ㆍ세계적 악단 목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988년생 MZ세대 지휘자의 손짓에 맞춰 묵직한 클라리넷이 연주를 시작했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악기의 소리들은 거슬림 없이 어우러지고, ‘젊은 지휘자’와 ‘젊은 오케스트라’의 만남을 상징하는 쨍쨍하고 선명한 바이올린이 씩씩하게 비장미를 끌어갔다. ‘안단테 칸타빌레’가 적힌 1악장에서 음악의 시작점을 지휘봉이 짚으면 연주자들은 그 사이 사이를 노래하듯 부드럽게 채워넣고 연결한다. 호른의 멜로디를 오보에가 받으면 비애에 휩싸인 분위기가 고조되고, 객석은 이내 선율에 매혹된다. 춤을 추듯 3악장을 지나, 조금은 경쾌하고 쾌활해진 4악장에 접어들자 지휘자는 폴짝 뛰어오르며 온몸으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힘이 넘치는 현의 속주는 절도 있게 마무리. 한여름의 음악 축제를 열기에 더없이 좋은 선곡이었다.
28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무대에 오른 김유원(34) 지휘자가 이끄는 2022 예술의전당 여름음악축제 SAC페스티벌오케스트라의 오프닝 콘서트였다. SAC페스티벌오케스트라는 지난 24일과 28일 여름음악축제의 개폐막 무대로 관객과 만났다.
‘SAC페스티벌오케스트라’는 면면이 화려하다. 지휘자 김유원은 2014년 미국 아스펜 음악제에 장학생으로 참가해 한국인 최초로 로버트 스파노 지휘자상을 받으며 주목받은 ‘차세대’ 지휘자다. 단원으로는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연주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아우구스부르크 필하모닉 악장을 맡고 있는 신정은이 악장으로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탄생 배경은 저마다 다르나, 공통점은 있다. 악단이 곧 ‘축제의 얼굴’이라는 공통의 인식이다. SAC페스티벌 오케스트라 관계자는 “기존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것도 좋지만, 페스티벌만의 특색과 정체성을 가진다”고 말했다.
이미 국내외에서 유수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성공 사례다. 오는 9월 3일부터 한국 공연을 앞둔 파보 예르비가 창단한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도 그 중 하나다. 파보 예르비는 “에스토니아의 젊은 연주자들은 연주 실력과 별개로 타국의 연주자와 함께 연주할 기회가 많지 않다”며 “이들에게 인맥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어 오케스트라를 창단하게 됐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 평창페스티벌오케스트라가 대표적이다.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는 스위스 루체른 오케스트라의 사례를 보고 2011년 통영국제음악제의 전 예술감독인 알렉산더 리브라이히가 창단했다. 손열음 평창대관령음악제 음악감독이 주축이 돼 결성한 평창페스티벌오케스트라는 2018년 첫발을 디뎠다. 음악제를 통한 평창페스티벌오케스트라의 성공적인 활약은 후발주자들을 나오게 한 배경이기도 하다.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흔하지만, 독특한 형태의 악단이다. 해마다 단 한 번 있는 축제를 위해 한 번도 호흡해본 적 없는 연주자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그만큼 단원들의 선발 기준도 중요하다. 성공적인 축제를 위해선 탄탄한 기본기와 실력을 갖춰야 한다. 그 덕에 이들 오케스트라는 ‘음악계 어벤저스 군단’이 되기도 한다.
SAC오케스트라 측은 “단원들의 경우 풍부하고 다채로운 오케스트라 경험과 이 프로젝트에 공감하고 열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연주자 위주로 선발했다”고 말했다.
올해로 14회를 맞는 서울국제음악제는 2010년 처음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창단한 뒤, 단발성 연주를 이어오다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SIMF 오케스트라’의 닻을 올렸다. 바이올린 김다미, 송지원, 비올라 김상진, 첼로 심준호, 클라리넷 김한, 트럼펫 최인혁 등 쟁쟁한 음악가들이 단원으로 활동한다. 서울국제음악제 측은 “음악제에 출연하는 연주자, 전년도 음악제에서 앙상블로 호흡을 맞추며 합주력을 확인한 연주자를 위주로 선발한다”고 했다.
마음 맞는 단원들이 모인 ‘자발적 악단’이다 보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다양한 길로 확장된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축제에 참여하다 보니, 단원들 사이에선 더 많은 연주 기회를 가지고자 하는 바람도 생긴다. SIMF 오케스트라는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올해 축제를 구상하고 있다.
또 해마다 호흡을 맞춰오다 보면 주체적인 악단으로의 가능성도 발견, 새로운 길로 도약하기도 한다. 평창페스티벌오케스트라는 매해 무대에서 다양한 실험을 거듭하며 연주자들의 음악 갈증을 덜고, 하나된 악단으로의 미래를 확인했다. 지난 성과들이 쌓여 평창페스티벌오케스트라는 정규 악단인 ‘고잉홈 프로젝트’를 출범했다. 무려 14개국 50개 교향악단 전·현직 단원 80명이 모인 고잉홈 프로젝트는 온전히 연주자들이 주체가 된 ‘음악가들의 오케스트라’다. ‘고잉홈 프로젝트’의 주축이 된 김두민은 “국적을 넘어 음악으로 모인 감동을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가치라고 생각하는 연주자들이 모였다”며 “그 안에서 연대와 끈끈함이 생겨나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고잉홈 프로젝트는 모태가 축제였다는 점에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진화 형태라고 볼 만하다. 해외 유수 악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국내외 쟁쟁한 음악가들은 음악 안에서 모여 한국 클래식 음악계를 위한 새로운 역할을 하고 있다. ‘음악’이 좋아 하나 되기 위해 모인 단체를 넘어, 차세대 음악인을 양성과 세계적 수준의 악단 조직을 목표로 뒀다. 평창페스티벌오케스트라부터 고잉홈 프로젝트까지 이끈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고잉홈 프로젝트’는 100년을 바라보면서 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백년지대계”라며 “기존 오케스트라의 관료주의적 구조나 환경을 벗어나 연주자들이 한국에 정착할 수 있는 악단을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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