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곡으로 꽉 채운 뮤지컬 ‘첫사랑’
기존 선율ㆍ가사 살려 스토리 창작
진성ㆍ가성 오가는 자연스러운 발성
그리움ㆍ향수 담은 무해한 뮤지컬
새로운 관객 유입…5060 47.5%
최연소 15세ㆍ최고령 88세 관객
가곡 뮤지컬 성공 가능성 확인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그대를 처음 본 순간이여~” 어깨를 위아래로 들썩이며 느릿한 가곡에 리듬을 싣는다. 2000년 이후 ‘최고 히트 한국 가곡’인 ‘첫사랑’에 빠른 템포가 얹어진 순간이다. 서정적인 선율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가곡은 제법 경쾌해졌다.
가곡계의 ‘스타 작곡가’ 김효근의 가곡들이 뮤지컬로 다시 태어났다. 지난 4일 막을 내린 ‘첫사랑’이다. 뮤지컬에는 2012년 발매된 김효근의 아트팝 연가곡집 ‘사랑해’에 수록된 가곡들이 넘버로 불렸다.
이 뮤지컬은 많은 목표를 안고 태어났다. 마포문화재단은 창립 이래 처음으로 뮤지컬을 제작하며 ‘한국 가곡’에 주목했다. 지난 2018년부터 한국가곡의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가곡 공연을 기획해온 재단이 가장 대중적인 공연 장르인 뮤지컬로 승부수를 띄웠다. 연간 4000억 원으로 성장하고, 수백억 원 대의 제작비가 투입되며 ‘자본력=성공공식’이 된 시장에 기초문화재단이 도전장을 던진 작품이다.
예술감독으로 참여한 김효근 작곡가가 아트팝의 뮤지컬화에 동의한 것은 “예술성과 대중성을 확보한 새로운 뮤지컬의 탄생”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김효근 예술감독은 앞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기존 뮤지컬이 스타 배우에 의존하고, 회전문 관객을 유도하려다 보니 강한 극적 소재와 음악이 사용된다는 아쉬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예술성과 대중성을 추구한 ‘아트팝’ 가곡을 개척해온 만큼 “가곡의 장점과 뮤지컬의 장점과 결합했을 때 기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 봤다.
나흘간 관객과 만난 뮤지컬 ‘첫사랑’은 ‘가곡의 정서’를 고스란히 가져온다. 24시간 소통 가능한 시대와는 한 걸음 떨어져 있는 ‘그리움의 정서’다. 이 뮤지컬이 태어나는 데에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곡은 ‘첫사랑’이다. 누구에게나 한 번은 찾아오며, 짧지만 찬란하게 빛났던 시절의 이야기를 끌어낸다. 기억을 잃어가는 50대의 사진작가 태경(윤영석 조순창)이 20대의 가장 반짝이던 시간으로 돌아가 ‘그리운 첫사랑’을 다시 만나는 여정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마법처럼 이어진다.
가곡의 ‘뮤지컬화’에 대해 우려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뮤지컬로의 어울림과 배우들의 발성은 넘어야 할 산이었다.
특히 아름다운 노랫말과 서정적 선율이 강점인 가곡이 두 시간이 넘는 뮤지컬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나는 것이 관건이었다.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는 점을 무대는 증명했다. 작품에선 몇몇 곡의 템포가 빨라진 것을 제외하면 김효근 작곡가의 가곡 선율과 가사를 고스란히 살렸다. 자칫 빨라진 템포로 이질감이 들거나 촌스럽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첫사랑’에선 적절한 ‘밀당(밀고 당기기)’으로 모나지 않은 음악이 나왔다.
배우들 역시 가곡 발성의 부담을 내려놓고, 자신들에게 딱 맞는 창법을 찾았다. 20대 시절 태경의 첫사랑 역을 원캐스트로 소화한 양지원은 진성과 가성을 혼합한 발성으로 ‘눈’, ‘첫사랑’과 같은 아름다운 가곡을 훌륭히 소화했다. 그런가 하면 태경 역의 조순창은 기존 클래식 발성이 아닌 대중음악의 진성 발성 중심의 가창으로 색다른 묘미를 안겼다.
주인공이 기억의 조각들을 꺼내는 과정은 흥미로운 무대 연출로 구현됐다.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졌고, 1990년대와 2020년대의 거리를 영상으로 연출했다. 밤하늘, 바다, 거리의 곳곳이 사라져가는 기억을 담아내는 빛바랜 영상으로 펼쳐져 드라마와 잘 어우러졌다. 다만 20대 태경과 50대 태경의 대화 장면에 난데없이 난입하는 군중은 뜬금없게 다가온다.
‘첫사랑’은 ‘무해한 뮤지컬’이다. 대작 뮤지컬의 흥행 공식을 따르지 않았다. 관객들에게 시청각 충격을 안길 만한 장면이나 악을 쓰는 ‘돌고래 고음’은 없다. 화려한 무대 전환도 없다. 기존의 성공 방정식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흥행’을 고려해야 하는 제작사와 창작진 입장엔 부담일 수 있다. ‘첫사랑’은 그러나 과감한 선택으로 ‘순수성’과 ‘예술성’이라는 가곡의 본질을 지키는 방향으로 중심을 잡았다. 하지만 드라마의 전개와 흡인력은 아쉽다. 작품은 가곡의 가사들과 잘 어우러진 드라마와 편곡을 선택했으나, 새로움이 부족하다. 현재에서 과거로 떠나는 추억여행, 기억이 사라지는 소재는 익히 만나온 만큼 관객에 따라 진부하게 다가올 수 있다. 이로 인한 ‘예측 가능한’ 전개는 지루하고 몰입도가 떨어진다. 가치를 지키는 틀 안에서의 확장도 향후 가곡 뮤지컬에서 고민해야 할 요소로 보인다.
오로지 가곡으로만 꽉 짜여진 첫 뮤지컬은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 2030 여성 관객으로 치우친 뮤지컬 시장에서 ‘첫사랑’은 다양한 세대로 관객층을 확대했다. 마포문화재단에 따르면 ‘첫사랑’의 예매자는 5060 세대가 47.5%(50대 26.3%, 60대 이상 21.2%)나 차지했다. 공연문화에서 다소 소외됐던 중장년 세대가 대거 유입, 새로운 관객층이 등장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이어 30대는 19.1%, 40대 18.5%, 20대 13.4%로 고른 분포를 보였다. 최연소 예매자는 15세, 최고령 예매자는 88세였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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