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 공항동에는 이주단지가 있다. 1980년대 초반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를 지으면서 그 주변에 살던 분들이 이주해 사는 동네다. 이주단지는 남부순환로를 사이에 두고 공항 화물청사 배후단지와 마주하고 있다. 대개 양옥 형태의 2~3층 집들이 골목길을 따라 이어져 있다.
필자가 일하는 곳과 가까워서 점심식사를 위해 자주 오가는데, 눈에 띄는 간판 하나가 시선을 끌었다. 오래돼 보이는 노란색 바탕의 간판에는 ‘이주이발관’이라는 글자가 선명하였고, 이발관을 상징하는 빨간색 파란색 흰색으로 구성된 ‘바버폴(Barber Pole)’ 두 개가 간판 양쪽에서 회전하고 있었다.
지난가을 머리를 손질할 때가 되어서 이발관의 문을 열게 되었다. 손님은 아무도 없었고 사장님은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갑자기 열린 출입문에 놀란 듯이 일어나 인사를 나눴는데, 흰색 드레스 셔츠에 넥타이를 맨 멋쟁이 노신사였다. 오늘의 주인공 공항동 이주이발관 전모 사장님이었다. 그는 충남 청양에서 태어나 10대 후반에 온양에서 이발 기술을 익히고 20대 초반에 상경하였는데, 1942년생으로 올해 나이가 여든하나다. 노익장을 발휘하고 있는 어르신께 이발을 맡기고 그냥 앉아 있기가 민망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자 보물 같은 생애사(Life History)를 들려주었다.
이주이발관에는 물레방아 돌아가는 전원의 풍경이나 열 마리 새끼 돼지가 어미 젖을 물고 있는 모습 같은 이른바 ‘이발소 그림’은 없었다. 그러나 ‘공중위생법 제9조에 따라 위와 같이 면허합니다’라고 적힌 1966년도에 발급된 ‘이용사면허증’의 종이와 글자와 액자에는 세월의 더께가 얹혔지만, 그 역사로 인해 오히려 선명하였다. 한때는 영등포에서 이발관 의자 13대를 놓고 종업원 20여명이 일하는 전성시대를 누리기도 했다.
공항동에 살던 전사장님은 중동 건설 붐이 일던 시절 10여년을 열사의 땅에서 보내기도 했다. 1979년에는 대우개발에서 수주한 리비아의 건설 현장에 파견되어 학교, 주택, 도로 등의 현장에서 일했다고 한다. 서울 김포공항에서 대한항공을 타고 출발한 항공기는 대만~홍콩~태국~바레인~레바논~이집트를 통해 리비아에 도착했고, 몇년 후 돌아올 때는 뱅가지~트리폴리~앨라스카~서울 항로를 이용했다고 한다. 모두 직항편이었으나 중간 급유를 위해 경유지를 거쳤다고 한다.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몇년을 더 일했다. 제2의 중동 붐을 위해 국토교통부와 건설사가 발 벗고 나선 지금에 던져 주는 시의성이 크다고 하겠다. 당시 신문 기사를 검색해 보니 항공편을 통해 중동으로 송출되는 인력의 수요가 월평균 5000명을 넘을 때도 있었다고 한다.
이발관에서 메모를 하지 못하고 들었던 얘기를 다시 듣기 위해 박물관에 모셔서 전시실을 관람하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주이발관 전사장님의 말씀과 말씀 사이, 녹취록의 행과 행 사이에는 아직도 많은 역사와 사연들이 기다리고 있다. 올해부터 원로 항공종사자에 대한 구술사 조사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항공종사자뿐만 아니라 그 주변으로까지 구술사 수집을 확대해야 할 이유를 체감하는 멋쟁이 전사장님과의 만남이었다.
안태현 국립항공박물관장
yjc@heraldcorp.com
![일본서 사라진 인플레 ‘명목 앵커’…물가·엔화에 중요한 이유 [츠토무 와타나베]](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1/news-p.v1.20260816.209013b3297d4c92ab32710d529f3877_T1.jpg?type=h&h=240)
![프롬프트의 신법 [‘오늘’에 대한 우리 이야기]](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1/news-p.v1.20260901.203c531a96884d4da174595cad521d59_T1.png?type=h&h=240)
![자산가의 저력은 하락장서 나타난다…위기 속 기회 찾는 ‘힘’ [큰손 따라잡기]](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8/31/news-p.v1.20260831.a0fa168d036d4658b6cb03a0502c0de4_T1.jpg?type=h&h=2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