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일본 대학계에 문부과학성이 국립대학의 문계(인문사회계 학부)를 폐지하려 한다는 소문이 퍼져 충격을 주었다. 몇 달간 미디어가 들끓었다. 산업계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문계 학부는 폐지시킨다는 소문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국립대학의 현실을 보여준 사건으로 숙제를 남겼다.
근대 이후 일본 문화에 대한 독보적인 연구자로 알려진 일본의 석학 요시미 순야는 이 사건을 계기로 ‘문계 학부 폐지의 충격’(소명출판)을 집필, 일본 대학이 근대화 과정 속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해왔는지 유럽의 대학과 비교 검토하며 현재의 고민과 향후 대학의 모습까지 종합적으로 짚어냈다.
일본은 20세기 초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치르면서 대학을 전시 산업 기술 개발의 요람으로 구축, 지원군으로 삼았다. 전후 50,60년대 고도경제성장기엔 이공계 중심 정책이 더 강화된다. 경제성장을 위한 과학기술 진흥이라는 산업계의 바람에 응하는 형태로 학생 수와 연구 예산을 늘렸다. 자민당 정책 역시 국립대의 문계를 억제하고 이공계에 힘을 실어주는 쪽에 방점을 뒀다. 심지어 마쓰다 다케치 문부대신은 “국립대는 이공계 중심으로 중심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말해 상당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2015년 문계 폐지의 역사적 근거가 있는 셈이다.
21세기에도 이런 기조는 이어져 2004년 국립대 법인화 과정에서 산업경쟁력이 대학정책의 중심에 놓이게 된다. ‘벌이가 되는 이계’와 ‘벌이가 안되는 문계’구도가 형성됐고, 문계 학부에서 배운 건 취직에 쓸모 없고 돈도 안된다는 상식이 자리잡게 된다. 그런 잠재적 믿음이 국립대 법인화의 최대 문제라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국립대 법인화 이후 이계 학부 중심주의는 더욱 가속화하고 있는데 국립대의 기반이 되는 예산의 중심이 운영비 교부금에서 경쟁적 자금으로 옮겨간 데 따른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연구력과 교육력의 동시 약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연구자가 경쟁적 자금 획득을 위한 서류 작성과 심사 발표 준비에 막대한 시간과 노력을 소비, 본래 해야 할 연구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다.
문계도 개혁의 방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여기서 저자는 문계 학부의 존재적 독자성과 가치를 강조하는데, 인류의 보편성에 기여하는 이계 학부와는 다른 가치를 갖고 있다고 강조한다. 방향과 지속 기간상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저출산 고령화로 대학 존립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위기상황을 헤쳐나갈 방향으로 기존의 갑각류 대학에서 앞으로는 척추동물 대학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개혁을 통해 16세기 전설적인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를 21세기에 맞게 길러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21세기 대학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가치로 보편성, 유용성, 유희성을 꼽는다. 대학의 학문이, 문화의 근본 욕구인 유희성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그의 지적은 대학의 본질을 상기시킨다.
책은 일본 대학의 고민과 과제를 담고 있지만 그대로 우리의 대학 현실과 겹쳐 읽힌다. 산업계가 요구하는 학과 중심으로 개편되고 문과 폐지 얘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공감을 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문계 학부 폐지의 충격/요시미 순야 지음, 김승구 옮김/소명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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