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로닉 DJ 하임 인터뷰

K팝·클래식·국악에서 재즈까지

장르와 경계 넘나는 협업의 달인

롯데콘서트홀, 파격적 송년음악회

두 시간 내내 무대 지키는 호스트

오프닝부터 라벨 ‘라 발스’ 협연까지

“이질적인 장르를 엮어낸 음악은

호기심이 빚은 또 하나의 창조물” 

전공자로 피아노를 놓은 지는 오래지만, 지금도 하임은 “마음을 다스리고 싶을 땐 바흐를 연주한다”고 했다. 정교하고 완벽한 바흐의 음악이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상섭 기자
전공자로 피아노를 놓은 지는 오래지만, 지금도 하임은 “마음을 다스리고 싶을 땐 바흐를 연주한다”고 했다. 정교하고 완벽한 바흐의 음악이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상섭 기자

동글동글한 전자음이 반짝거리며 굴러다니다(브라운아이드걸스, ‘이상한 일’), 지글거리는 소리 위로 통통 떨어지더니 (하임, ‘9.9’), 이내 거대한 대우주의 고요(하임, ‘그래비티’) 안으로 잡아끌고야 만다. 장르의 경계는 진작에 초월했다. 밟지 못할 땅은 없고, 건너지 못할 다리도 없었다. 서서히 확장된 그의 음악은 때로는 만물을 끌어안고, 때로는 모든 것을 놓아버린다.

DJ 하임(HAIHM, 본명 김하임)의 이력은 독특하다. 주전공은 일렉트로닉인데 동방신기·브라운아이드걸스·가인 등 K팝은 물론 재즈, 국악관현악, 클래식까지, 경계를 뛰어 넘어 견고한 음악세계를 구축한다.

“세상엔 너무나 많은 음악이 있고, 다양한 장르가 있어요. 그런 점에서 보면, 중요한 것은 자기 색깔을 갖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자기 고유의 색을 가지고 있으면 어떤 장르가 들어와도 그 안에 분명히 내가 존재하게 돼요.”

하임은 요즘 공연계에서 가장 바쁜 디제이 중 한 명이다. 적당히 섞는 것이 아닌, ‘또 하나의 창조물’을 만드는 ‘협업의 법칙’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롯데콘서트홀에서 만난 그는 “두 개의 색깔을 섞어 중간색이 아닌 다른 결과물이 나오도록 고민한다”고 말했다. 이질적인 장르를 엮어낸 음악은 낯섦 속의 기묘한 익숙함으로 다가온다.

12월의 마지막 날엔 하임에게도 특별한 무대가 기다리고 있다. 롯데콘서트홀 송년음악회를 통해 클래식과 일렉트로닉 음악의 만남을 시도한다. 클래식 공연장에서 하우스 일렉트로닉 음악이 들린다는 것 자체가 유례없는 시도다. 하임은 “잘 묻어가는 것이 목표”라며 웃었다.

하임과 클래식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8년 클래식 공연기획사 크레디아와 함께 대중음악과 클래식의 만남을 시도했고, 이후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함께 야외 무대를 꾸민 적도 있다.

“프로그램을 보면서 라벨, 쇼스타코비치 같은 작곡가와 제 이름이 나란히 놓인다는 것이 감격스럽더라고요. (웃음) 기분이 이상했어요.”

사실 그는 누구보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이해가 높은 디제이다. 일찌감치 ‘정통 클래식’ 코스를 밟았다. 예원, 서울예고를 졸업했고,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그 때는 ‘피아니스트’가 꿈이었다.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Salzburg Mozarteum) 국립음대 피아노 연주자 과정까지 마쳤지만, 뒤늦게 다른 길을 갔다.

“일렉트로닉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특이한 소리 때문이었어요.” 2008년 솔로 여성 싱어송라이터 최초의 ‘일렉트로닉 음반’을 냈다. 노래도 직접 불러, ‘가수’라는 타이틀도 붙었다. 이후 음악활동은 서서히 확장됐다. 게임, 다큐멘터리, 현대무용은 물론 음악 장르간 협업도 많았다.

지난해 발매한 음반 ‘노웨어(Nowhere)’는 하임 안에 체화한 음악의 총체다. “클래식 음악을 비롯해 그동안 들어온 많은 음악들이 제 음악의 자양분이 됐어요.” 평균 5~6분, 최대 15분 이상되는 긴 곡을 일관성있게 전개하는 힘, 추상적인 음악세계 안에서도 기승전결의 큰 그림을 그려놓은 탄탄한 구성은 클래식 음악의 구조적 특징과 닮았다. 그가 딛고 선 땅과 그 땅을 넘어선 음악은 ‘어디에도 없지만’, ‘어딘가에 있을 것’같은 ‘미지의 신호’처럼 다가온다.

“첫 음반과 지금의 음악을 비교하면 굉장히 달라요. 그 때 당시엔 제가 컴퓨터로 구현할 수 있는 최선의 장르를 표현했어요. 이후엔 점점 더 실험적인 장르로 나아갔고요. 항상 그랬던 건 아니지만, 음악은 제겐 도피처가 될 때가 많았어요. 제 안의 울분, 슬픔, 여러 굴곡진 감정과 힘든 시간을 표현하는 방식이기도 했어요.”

한 사람의 음악가로만 봐도 ‘극적인 변화’다. 10여년을 클래식을 전공하다, 일렉트로닉으로 새 길을 모색했다. 그러다 여러 음악 장르와 협업하며, 다시 클래식과 만났다. 전공자로 피아노를 놓은 지는 오래지만, 지금도 그는 마음을 다스리고 싶을 땐 바흐를 연주한다.

“바흐의 음악은 굉장히 정교하고, 그 정교한 부분들이 너무나 완벽해서 마음이 편안해져요. 바흐의 음악엔 큰 줄기 안에 각각의 요소들이 독립적이면서도 존재감을 가진 주인공으로 자리해요. 그들이 모여 완벽한 조형이 만들어지는데, 그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하고 편안해지더라고요. (웃음)”

좋은 길로 나아가는 ‘협업의 힘’은 믿음이다. ‘사용하는 악기와 장르는 다르지만 결국 음악하는 사람들’이라는 공통분모가 가진 힘이다. “상대의 장르에 대한 호기심과 호감이 있다면 어떤 만남도 어렵지 않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이번 송년음악회에선 하임의 역할이 특히 많다. 음악회의 오프닝을 장식하고,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각각의 곡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라벨의 ‘라 발스’는 하임과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하는 곡이다.

그는 “클래식과 만났을 때 일렉트로닉이 할 수 있는 부분은 리듬적인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며 “익숙한 비트와 신나는 박자, 풍성한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신나는 분위기를 만들지만, 기존의 정해진 틀을 벗어나 보고자 하는 마음도 있다”고 말했다.

송년음악회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밤’이 될 이날의 무대에서 하임은 두 시간 내내 무대를 지키며 이 공연을 이끄는 ‘호스트의 역할’을 한다. 이 무대를 위해 화려한 조명과 미러볼도 마련됐다.

“일렉트로닉 음악이라고 하면 대중에겐 댄스음악(EDM), 클럽 음악이라는 인식이 클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일렉트로닉 음악 안에도 수많은 장르가 있어요. 관객들이 지난 선입견을 버리고, 일렉트로닉 음악이 이런 분위기도 낼 수 있구나, 오케스트라와도 잘 묻어날 수 있다고 느낀다면 제겐 성공일 것 같아요.”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