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윤미 선임기자]미 노스웨스턴대 정신과 의사인 대니얼 오퍼는 40대 후반 남성 67명에게 고등학교에 입학한 첫 해를 떠올리게 한 뒤 질문을 던졌다. 부모님이 운동을 열심히 하도록 격려해줬는지, 종교가 삶에 도움이 됐는지, 체벌을 받았는지 등을 물었다.
사실 이들은 34년 전 고등학교 1학년 때 대니얼 오퍼에게 똑같은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남성들이 기억하는 청소년기의 삶은 고등학교 1학년 때 했던 대답과 차이가 났다. 부모의 스포츠 활동 권유를 기억한 사람은 40%가 안됐지만, 청소년기에 그런 권유를 받았다고 답한 사람은 60%였다. 또 청소년기에 종교가 도움이 됐다고 돌아본 남성은 25%에 불과했지만 당시 종교의 도움을 받았다고 대답한 사람은 70%였다.
이런 기억의 오류나 왜곡은 왜 발생하는 걸까? 또 어떤 경험은 아예 기억조차 못하고 고통스러운 기억은 반복적으로 기억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샥터 하버드대 교수 “7가지 불안전성 탓에 기억 오류”
오랫동안 기억의 오류를 연구해온 대니얼 샥터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는 ‘도둑맞은 뇌’에서 기억의 불완전성을 7가지로 제시한다.
소멸, 정신없음, 막힘은 기억해야 할 것을 잊는 오류이며, 오귀인, 피암시성, 편향, 지속성은 기억의 오작동에 의한 오류이다. 소멸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억하고자 하는 정보가 사라지는 것이고, 정신없음은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것에 정신이 팔려 기억해야 할 일에 주의를 집중하지 못해 발생하는 기억의 오류이다.
오귀인은 기억의 출처를 잘못 기억하는 것으로 신문에서 본 것을 친구가 해준 말로 기억하는 식이다. 지속성은 지우고 싶은 생각이나 사건이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것으로 우울증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런 기억의 오류는 성가시고 위험에 빠트리기까지 하지만 저자는 이를 단점이라기 보다 인간 정신의 적응성을 보여주는 특징으로 본다.
가령 기억의 소멸은 많은 이들이 우려하고 이를 막기 위한 각종 기억형성법이나 기억력향상제가 개발되고 있다. 실험용 쥐를 대상으로 기억력을 크게 향상 시킨 유전자를 찾아낸 실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걸 기억하는 게 과연 좋은 걸까?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자’로 유명세를 탄 질 프라이스는 24년 동안의 부활절 날짜를 정확하게 맞췄고 그 날 있었던 일을 구체적으로 기억해내 화제가 됐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기억에 대해 “쉬지 않고 계속되고 통제되지 않아 완전히 기진맥진해진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한 연구에 따르면 과잉기억증후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높은 수준의 강박행동을 보인다.
피암시성 활용하면 없던 죄도 자백 가능
건망증을 일으키는 부주의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겪는 일이다. 부주의는 운전이나 타이핑 등 처음에는 수행하기 어려운 활동이 능숙해졌을 때 자동수행 상태가 되면서 일어난다. 문제는 이 자동수행 활동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안경을 둘 것 같지 않은 장소에 둔다든지 손에 들고 있는 자동차 열쇠를 찾겠다고 온 집안을 뒤지는 것 등이 해당된다.
저자는 피암시성을 가장 위험한 기억오류로 지목한다. 법정에서 경찰의 암시적인 질문으로 목격자가 범인 지목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거나 심리치료사의 암시적 행위로 존재하지 않았던 트라우마 사건을 기억해내도록 만들기도 한다. 피암시성을 이용하면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자백하게 만들 수도 있다.
기억은 흔히 카메라 사진처럼 기억 앨범에 저장돼 있다고 여기지만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경험을 있는 그대로 본뜬 장면들을 불러오는 게 아니라 인상적 장면만 저장하고 불러올 때 재창조하고 재구성한다. 그 과정에서 그 이후에 받은 느낌이나 신념, 지식이 추가되기도 한다.
책은 가짜뉴스와 인종편견까지 기억의 오류와 왜곡의 매커니즘, 양상을 다양한 연구 사례와 함께 체계적으로 담아냈다.
도둑맞은 뇌/대니얼 샥터 지음, 홍보람 옮김/인물과사상사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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