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감해졌지만 위기가 사그라들고 있는 것은 아니다. 둔해진 의식을 틈타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따끔하다.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질 수도 있단 경고다.

비상경영은 올해 내내 이어져야 할 지도 모른다. 기업들은 경상비용 지출과 재고자산을 줄이고 현금자산을 최대한 확보하려 안간힘이다. 이럴 때 기업의 의사결정은 이사회로 초집중된다. 비상일수록 이사회의 권한이 비대해진다. 실제 효율적이고 신속한 의사결정의 필요성은 높아지고 있긴 하다. 강화되는 ESG 추세와는 반대인 것이다.

이제 주주총회 시즌이다. 이사회 중심주의에는 함정이 있다. 주총을 통한 의사결정은 번거롭다.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한마디로 거추장스러운 과정이다. 꼭 필요한 정관변경 등 상법상 주주의 총의를 물어야 할 사항이 아니면 전부 이사회가 결정한다. 심지어 주총의 권한을 이사회가 제한하기도 한다.

주총이 정상 의결기구라면 이사회는 간이 의결기구다. 이 때 CEO인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을 경우 의결은 더 빨라진다. 문제는 전횡이다. 정부기구와 달리 주식회사 등 상법기구의 의사결정은 기본적으로 일방적이다.

그럼에도 전횡은 경계해야 할 문제다. 왜냐. 거기에도 민주주의가 개입된다. ‘자본적 약자’인 소액주주가 다수이기 때문. 절차상 민주적 요구가 분출될 수밖에 없다. 소액주주들도 배당과 같은 경제적 이익 외에도 기업의 바람직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싶어한다.

특히, 사모자본(PE) 투자회사들은 집행임원제를 두는 경향이 짙다. 이사회와 별도로 집행임원은 말 그대로 경영에만 집중하게 한다. 대표집행임원(CEO)의 의사결정권을 배제, 신속한 투자회수를 위한 조치로 보인다.

이 제도에서는 의사결정과 감독기능을 하는 이사회의 이사진 구성을 절반이상 사외이사로 채우게 한다. 이로써 모회사인 PE의 영향력은 확대된다. 사외이사로 채워진 집행임원은 모회사인 PE의 영향력 아래 있기 마련이다. ESG 취지와 배치되는 모순이 생기는 셈이다.

기업의 의사결정이 소수의 지배주주가 낙점한 이사진에 집중될 경우 나머지의 의사는 무시되기 일쑤다. ‘다수의 소외’란 역설을 낳는 것이다. CEO가 이사회 의장인 경우 ‘애자일경영’을 빌미로 한 전횡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대표권 남용도 우려 대상이다. 자본과 경영의 분리, 이를 통한 책임경영 이면에 주주권 침해란 부작용이 도사리고 있다.

이는 종국적으론 주식회사제도 자체를 형해화 할 가능성을 높인다. ESG 중 G(지배구조)는 이를 절제시켜 사회적 지지를 얻으라고 요구하는 항목이다.

약자보호는 어려울 때일수록 긴요해지는 덕목이다. 깊어지는 불황이 주식회사 내 다수의 소외도 심화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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