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경전 만난 나주 ‘3917마중’ 분위기맛집

강진-영암이 나누고 있는 월출산. 사진은 영암 구정봉 큰바위얼굴
강진-영암이 나누고 있는 월출산. 사진은 영암 구정봉 큰바위얼굴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북으로는 하멜호 선원이 조선의 사위가 되어 히딩크 감독을 닮은 아저씨들이 많이 살았던 ‘네덜란드촌’ 병영면, 남으로는 임영웅이 가고픈 곳으로 노래에 실은 마량면에 이르기까지, ‘피지컬100’ 윤성빈 꿀벅지를 닮은 강진에는 참으로 다양한 매력들이 있다. 그래서 남도답사 1번지 고을이다.

‘고려·조선의 삼성전자’라는 닉네임을 가진 청자생산지, 강한 두 다리 사이 길죽한 강진만 한복판에 있는 섬 가우도, 정약용의 학문과 사랑 우정이 숨쉬는 다산초당, 평민 아낙의 꾸지람을 들으며 인생의 좌표를 다시 세운 다산의 귀양 첫 거처 사의재, 장뚱어의 천국 강진만 생태공원 등도 좋지만, 백운동 별서정원은 국가명승인데다 다산과 이시헌 사제지정 스토리가 많아 꼭 들러야 할 곳이다.

백운동 원림 대숲
백운동 원림 대숲
백운동 원림 대숲의 젊은 여행자들
백운동 원림 대숲의 젊은 여행자들

▶월출산 남쪽 자락에 있는 백운동 정원은 조선중기 처사 이담로(聃老, 1627~1701)가 들어와 계곡 옆 바위에 ‘백운동(白雲洞)’이라 새기고 조영(造營)한 원림이다. 자연과 인공이 적절히 배합된 배치와 짜임새 있는 구성을 이루며 우리 전통 원림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별서이다. 소쇄원,세연정과 함께 호남의 3대 정원 중 하나이다.

백운동이란 ‘월출산에서 흘러 내린 물이 다시 안개가 되어 구름으로 올라가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약사암과 백운암이 있었던 곳으로 전해진다.

월출산 옥판봉 앞, 백운동정원 옆 차밭
월출산 옥판봉 앞, 백운동정원 옆 차밭

백운동에서 보이는 월출산 능선의 기암괴석들은 옥판을 든 신하들이 황제에게 경배하는 모습이라 옥판봉이라 불린다. 백운동 정원은 전형적인 호남전통원림의 형태를 띄고 있으며, 마침 이곳길도 해남부터 시작하는 삼남길이 지나는 길이기도 하다.

다산선생이 1812년 이곳을 다녀간 뒤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친구이자 스승이자 제자인 당대 천재 신학자 초의선사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하고 백운동 원림의 12승경을 노래한 시문을 남겼는데 현재의 건물은 이를 근거로 지어 호남의 유서깊은 전통별서의 모습을 재현하였다.

이담로는 옥판봉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그냥 떠나보내기 아쉬워 아홉 굽이 유상곡수를 만들고 정자를 앉혔는데, 꽃과 나무가 어우러지는 계곡에 눈이 머물다가 봉우리로 시선을 옮기며 경치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백운동 정원의 자연 계곡물이 마당을 들어왔다가 나가는 유상구곡
백운동 정원의 자연 계곡물이 마당을 들어왔다가 나가는 유상구곡

▶백운동 의리와 큰바위 얼굴= 다산 선생이 자신의 집 백운동 정원에 온다는 소식을 들은 9세 소년 이시헌은 급히 의관을 정제하고 나아가 다산일행을 맞았다. 나중에 정식 제자가 되어, 차로서 맺은 신의 ‘다신계’를 결성, 두 사제의 생전 시절은 물론, 죽은 이후에도 오늘날까지 차를 서로 교환하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이 차를 제조하면서 키운 제다의 의리는 이한영이 일제의 갈취 위협을 뚫고 ‘백운옥판차’ 전통을 지켜내는 고리가 되었다. 강진에는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영랑 생가, 풍차와 튤립이 있는 하멜기념관, 주작산 자연휴양림, 용혈암, 생활관광 한옥 푸소 프로그램 등이 있다.

백운동 계곡, 경포대 등을 빚어낸 월출산의 진짜 매력은 이 산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영암쪽에서 올라야 제 맛이다. 땀 흘린 만큼 보람이 매우 크다. 선조들이 그린 동양화가 과장된 것이 아님을 실감한다.

‘남도 금강산’ 월출산 최고봉 천황봉 정상에는 300여명이 한꺼번에 앉을 수 있는 평평한 암반이 있다.

천황봉 남서쪽 제2봉, 구정봉에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자연산 큰바위 얼굴이 달마대사 같은 모습으로 내려다 본다. 미국 사우스다코나주의 러시모아 큰바위 얼굴은 인공인데도 최근 크게 훼손됐는데, 이제 전세계 교과서는 ‘영암 큰바위얼굴’로 단원을 바꾸어야 한다.

구절폭포, 용추폭포를 지나 조금씩 아래로 내려가면서 폭포수가 무려 일곱 차례나 연거푸 떨어지는 칠지폭포와 은천폭포·대동폭포의 합창 소리도 요란하고, 방향에 따라 국보-보물 백화점 도갑사와 무위사 등에 이르게 된다.

도갑사
도갑사

▶도갑사와 기찬묏길= 도갑사는 신라 말기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였으며, 조선 전기 1456년(세조 2) 수미(守眉)가 중건하였다. 도갑사 일주문을 지나 100m 가량 들어가면 국보인 해탈문이 나온다. 1473년에 지어진 이문의 좌우 앞쪽 칸에 금강역사상이, 다음 칸에는 보물인 문수동자와 보현동자상이 미소짓고 있다. 우람하고 무서운 상징만 있던 여느 사찰 출입문과 달리 푸근함도 느껴진다.

경내에는 대웅전과 석조 5층석탑 수미왕사비가 있고 절 100m 위 미륵전에는 보물인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오층 석탑에는 저마다의 소원이 적힌 쪽지가 빼곡히 걸려있다. 천불을 만나면, 1000 좌상의 부처가 내 소원을 단체로 들어줄 듯 하다.

조선 세조 3년(1473년) 신미, 수미 두 왕사가 중창했던 곳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총 규모가 966간에 소속된 암자가 12개나 되었으며 상주한 승려 수가 730명에 달했던 적이 있다. 앞뜰에는 5m에 달하는 스님들이 마실 물을 담아 두는 석조의 크기가 도갑사의 옛 사세와 승려 수를 짐작하게 한다.

도갑사 주위에는 1972년 국보로 지정된 월출산마애여래좌상을 비롯하여, 도선이 디딜방아를 찧어 도술조화를 부렸다는 구정봉 큰바위얼굴의 9개 우물, 박사 왕인이 일본에 건너간 것을 슬퍼한 제자들이 왕인이 공부하던 동굴입구에 새겼다는 왕인박사상 등이 있다.

월출산 기찬랜드쪽으로 내려오면 천황봉 자락 맥반석에서 나오는 월출산의 기(氣)와 월출산 계곡을 흐르는 청정 자연수를 활용한 문화,예술,놀이,미식의 토털 파크, ‘기찬랜드’를 만난다.

환경부로부터 삼림욕 건강산책로로 인증받은 ‘기(氣)찬묏길’은 기찬랜드~기체육공원~탑동약수터~천황사 주차장으로 연결되는데, 생태,힐링,배움,오감체험,왕인의 길 사이로, 재잘거리는 개천 소리를 듣는 곳이라 험준한 등산길, 장쾌한 풍광에서 보이던 월출산의 상남자 면모와는 달리, 소프트한 매력을 지닌 훈남의 면모 까지 보여준다.

영암 한국트로트가요센터
영암 한국트로트가요센터

▶“트로트, 니가 왜 영암서 나와?”= 산에서 내려오면 기찬랜드 입구에 2019년 대한민국 최초로 건립된 한국 트로트 가요센터를 빼놓을 수 없다. 국내 대중음악의 대표적 장르인 트로트 음악 부흥을 위해 개관하였다. 1층은 대중가요의 역사와 전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한국 트로트 역사관, 음악다방, 노래방, 근대거리 재현공간, 2층은 영암의 대표가수 하춘화의 60년 가수 활동을 보여주는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200석 규모의 공연장 시설도 갖추고 있다.

민요의 특성도 있는 우리의 근·현대 트로트의 원조를 ‘사이찬미’를 부른 정통 성악 전공자 윤심덕으로 부터 보는 견해도 점차 세를 얻어가는 분위기이다. 그만큼 트로트 자질은 민요,성악적 요소와 뽕기 짙은 남유럽의 기교 까지 갖출 수록 완성됨을 알 수 있다. 송가인은 국악인, 김호중은 성악 출신이다.

트로트가요센터 국민노래방
트로트가요센터 국민노래방

트로트가요센터에서 헤드폰을 끼고 배호의 ‘안개낀 장충단 공원’을 들으면 그가 왜 남성 최고의 트로트가수 인지 새삼 실감하는데, 그는 미8군에서 재즈를 배워 트로트에 접목시켰다. 이난영이 유럽 칸소네 등의 발성을 접목시킨 것과 비슷하다.

트로트 역사를 돌아보다 보면, 1990년대 침체기를 맞았다가 2003년대 장윤정의 ‘어머나’의 대인기로 부활의 신호탄을 올리고, 2019년 송가인, 2020년 임영웅의 경연대회 우승을 계기로 대유행기를 맞았다. 외국인들의 트로트 커버, 트로트 번안도 급증하는 추세이다.

영암·강진은 청정생태-문화예술-인문학을 소재로, 의기를 다지고 감정정화를 도모하기, ‘딱 좋은’ 여행지이다.

나주 3917 마중
나주 3917 마중

▶나주 3917 마중= 나주역 출발 서울행 KTX를 타러가기전 옛 제국 수도 자취가 남아있는 곳 한켠에 들어선 온고지신 문화공간 한 곳을 들른다.

공가가 된 고택, 난파정, 시서헌, 목서원 등 옛 집을 체류형 역사재생 문화공간으로 탈바꿈 시킨 ‘3917마중’은 금성관 서쪽 마을 풍경을 ‘옛것 위 새로운 것’으로, 젊은이들이 자주 오가는 골목으로 탈바꿈시킨 마중물 역할을 했다.

후손들이 떠난 뒤 ‘팔지 않은 공가’와 부지 4000여평을 전주사람 남우진이 매입해 청춘들의 체류형 문화공간으로 재생한 곳이다.

남우진 대표는 “고택과 고목, 문화유산의 가치를 기반으로 정원마다 각기 다른 테마로 역사문화를 즐길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려 한다”면서 “청년 예술가들의 갤러리와 작업공간 등 인프라를 개선하고 다양한 협업도 도모하겠다”고 말했다.


abc@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