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리오갤러리, 김순기 개인전 ‘침묵의 소리’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예전보다는 많이 부드러워졌지. 내 머리를 봐 온통 흰머리야” 호탕한 웃음과 함께 김순기(77)작가는 작업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1997년 ‘주식거래’ 라는 제목으로 프랑스에서 처음 발표 된 뒤 매번 다른 형태로 바뀌는 영상 설치작업에 대해서다. 외환위기 때는 세계 환율 변동에 따라 비디오를 편집했고, 광우병 문제가 터졌을 때는 황소를 찍은 사진을 삽입했었다. 2023년엔 새벽 타종소리와 만나 ‘주식정원-템플’로 변했다.
세계 주요 국가의 주가지수가 어두운 바닥에 빛으로 깔리고, 자연을 상징하는 커다란 화분이 놓였다. 벽면엔 작가가 촬영한 실상사의 새벽이 펼쳐진다. 숫자의 변화에 따라 우리는 울고 웃는다. 주가지수와 우리 삶의 실제 관계는 ‘0’에 가깝게 한없이 수렴하지만, 자본주의적 가치에 의존하는 현대인의 관념은 숫자와 삶을 동일하게 놓고 반응한다. 숫자에 지배되는 현대사회와 한국사회에 대한 날 선 비판이다.
이전의 작가는 송곳처럼 찔러댔다면 이제 작가는 한 발 뒤로 물러서 ‘한번 봐봐’라고 권한다. 33번 울리는 종소리가 깨달음을 얻는 순간인 돈오(頓悟)를 은유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할까. 주가지수에 좌지우지되는 삶일까 아니면 자연이나 종교나 경제활동이나 모두 다 한낱 ‘움직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일까. 사진을 줌인, 줌아웃 하듯 시야를 길게 본다면 경중을 따지기가 쉬워진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작가는 ‘빛’에 대한 관심이 늘 많았다고 말한다. “비디오 작품을 시작한 것도 결국 빛을 담고자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국 현대 실험미술의 선구자로 꼽히는 그는 1960년대 후반부터 철학, 예술, 테크놀러지가 어우러지는 실험적 작업을 비디오, 멀티미디어, 사운드, 퍼포먼스, 사진 등 다양한 장르로 선보여왔다. 백남준과의 인연도 이같은 작업영역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영상으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다 했다고 생각했을때, 그는 가장 원초적인 영상인 사진으로 회귀한다. 그것도 가장 원시적 형태의 카메라인 핀홀카메라로.
핀홀카메라는 렌즈도, 셔터도 없지만 내버려 두면 시간과 빛의 효과로 흐릿하고 몽환적인 이미지들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이런 식으로 작업실과 부엌, 여행지에서 만난 풍경 등 일상의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포착했다.전시에 나온 ‘바보사진’ 연작은 작가가 1990년대 작업한 이미지들이다.
과거의 작업을 불러와 재해석한 또 다른 작업도 있다. ‘깡통 통신’은 1990년대 초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전 세계가 미국에서 송출하는 뉴스만을 믿는 상황에서 출발했다. 미디어의 왜곡과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본질에 의문을 던진다. 이라크전은 이미 끝났지만 소통의 왜곡은 여전하다. 와이어에 매달린 깡통은 어릴적 가지고 놀던 ‘종이컵 전화기’처럼 툭하면 소리가 끊길것이다. “(기자)여러분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 하얀 셔츠의 깃을 세운, 꼿꼿한 자세가 품위넘치던 거장의 쓴소리다.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갤러리에서 5월 13일까지 이어진다.
vicky@heraldcorp.com
![앤트로픽 IPO는 시작일 뿐…AI 모델 ‘골라주는 시장’ 커진다 [서학개미 주식회사]](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3/rcv.YNA.20260813.PRU20260813276001009_T1.jpg?type=h&h=240)
![“교과서 미래엔 AI가 있다”…‘AI 공장’된 미래엔 세종공장 [그 회사 어때?]](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2/news-p.v1.20260821.9213ff47283443e4aeec745e2b971c31_T1.jpg?type=h&h=240)
![일본서 사라진 인플레 ‘명목 앵커’…물가·엔화에 중요한 이유 [츠토무 와타나베]](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1/news-p.v1.20260816.209013b3297d4c92ab32710d529f3877_T1.jpg?type=h&h=240)

